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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더니즘문학의 주체’라는 평가를 걷어냈을 때
‘모더니즘문학의 주체’라는 평가를 걷어냈을 때
  • 현순영 전북대 강사·국문학
  • 승인 2017.05.23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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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구인회의 안과 밖』 현순영 지음 | 소명출판 | 492쪽 | 33,000원

『구인회의 안과 밖』은 1930년대 전반기의 문인 모임이었던 ‘九人會’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구인회가 당대 또는 전대 문학의 주요 국면들과 조화를 이루거나 길항했던 양상을 조명해 그 문학사적 의의를 다시 논한 책이다. 지금까지 여러 연구자들이 구인회를 문학사적으로 중요하게 평가하고 그 의의를 논해 왔다. 특히 구인회가 한국문학이 근대문학에서 현대문학으로 옮겨가는 데에 교량 역할을 했고 1930년대 순수문학이나 모더니즘문학을 선도했다는 판단에 많은 연구자들이 동의해 왔다. 그런데 저자는 기존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면서도 회의할 수밖에 없었다. 저자가 구인회를 다시 연구한 이유다. 

많은 연구에서 구인회는 1930년대 문학의 중요성을 증명하는 근거로 다뤄졌다. 즉 1930년대 문학은 모더니즘문학으로서 문학사적 중요성을 지니고 모더니즘문학을 했던 구인회를 통해 ‘1930년대 문학은 모더니즘문학’이라는 판단을 뒷받침할 수 있다는 논리가 통용됐다. 그런데 10년 단위로 시대를 구분해 1930년대 문학을 모더니즘문학으로 개념화하는 것은 문학사의 연속성을 간과하고 당시 문학의 다양하고 복잡한 면모들을 지나치게 많이 捨象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또 구인회를 모더니즘문학의 주체로만 보는 것 역시 구인회의 다양하고 복잡한 면모들을 간과하는 일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구인회를 1930년대 모더니즘문학의 증거로 다루지 않고 ‘단체(집단)’로서의 구인회의 안팎을 연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1930년대 전반기 문학의 단면을 그려 보려 했다.  

결성-소멸까지 조명 … 조용만 회고에 의문 던져 

요컨대, 저자가 구인회를 연구한 중요한 이유는 구인회라는 ‘단체’를 규명하기 위해서였다. 기존의 구인회 연구들은 대개 구인회 ‘주요 회원’에 관한 연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인회가 근대문학을 현대문학으로 이끌었다거나 1930년대 모더니즘문학을 주도했다는 판단도 구인회 회원이었던 몇몇 시인과 작가들만을 연구한 결과다. 1930년대 전반기, 당대의 내로라하는 문학 예술인들은 왜 구인회를 만들었고 구인회에 모여들었는가? 그들은 구인회에 모여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왜 그들은 구인회에서 빠져나갔는가? 저자는 이 물음들에 답함으로써 구인회라는 단체의 실체 및 전모를 파악하려 했다. 

구인회를 연구한 또 다른 이유는 기존 연구 내용에 오류가 많기 때문이다. 연구자들이 자료 확충의 노력을 아끼고 적잖은 자료를 잘못 해석해 왔다는 점을 오류의 원인으로 들 수 있다. 이미 알려진 자료들의 원전을 정독하고 새로운 자료를 찾을 필요가 있었다. 이와 관련해, 조용만의 ‘구인회 회고담’을 주요 논거로 삼는 연구 관행이 지속돼 왔다는 사실은 특기할 만하다. 조용만의 회고담에는 석연치 않은 내용들이 많다. 같은 사안을 회고담에 따라 다르게 적은 경우도 많고 어떤 사안을 구인회 존립 당시의 자료들과는 다르게 적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도  연구자들은 조용만의 회고담 중 특정한 것들을 자의적으로 취해 논거로 삼아 왔던 것이다. 

구체적 자료를 토대로 ‘단체’로서의 구인회를 밝힌 내용이 책의 1부에 담겼다. 첫째, 저자는 구인회의 결성·활동·소멸의 경위를 구체적으로 밝혔다. 그중 구인회의 결성 과정을 알려주는 유일한 자료인 조용만의 회고담들을 면밀히 비교·대조해 그 신빙성에 문제를 제기한 것, 구인회 결성 과정의 의의를 논한 것, 구인회의 두 차례 문학 강연회에서 행해진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 구인회의 회원 변동 양상 및 과정과 구인회가 암묵적으로 견지했던 회원 입·탈회의 조건을 밝힌 것은 기존 연구에는 없는 내용들이다. 둘째, 구인회가 당대 문학의 다양한 국면들과 조화를 이루거나 길항했던 양상을 밝혔다. 우선, 카프 퇴조 후에 구인회가 등장했다고 보는 기존 연구들과는 달리 구인회와 카프는 공존하면서 상호작용했다고 보고, 그 공존과 상호작용의 방식 특히 구인회가 카프에 대응했던 방식을 논했다. 또, 구인회가 당시 문학의 중요한 환경으로 대두된 저널리즘의 상업성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하려 했는지 논했다. 셋째, 구인회가 이전 시대 문학을 수용하거나 거부하면서 문학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 갔던 양상을 이태준과 박태원, 김기림과 이상을 통해 조명했다.  

그런데 1부의 내용 중 구인회의 결성에 관해 말한 부분은 미진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조용만의 개인적 회고담을 근거로 삼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또, 기존 연구와 달리 구인회가 카프를 의식하면서 결성됐다는 점을 짚었는데 그 점에 대한 실증도 부족했기 때문이다. 즉 구인회가 카프 퇴조 후에 문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세우며 산뜻하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카프를 의식하는 주체들에 의해 ‘결성’됐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구인회를 비롯한 1930년대 전반기 문학이 앞 시기 문학과 연결되는 지점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저자는 애초에 구인회의 결성을 발의하고 도모했던 김유영, 이종명, 조용만을 주목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들이 구인회를 만들려고 했던 이유나 의도를 파악한다면 구인회를 문학사의 흐름 속에서 재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목적주의 문학과 저널리즘에 대응했던 한 방식

저자는 세 인물 중 김유영을 가장 먼저 연구했다. 김유영은 이종명, 조용만과는 달리 영화인이었고, 무엇보다 조용만이 김유영을 회고한 내용이 석연치 않았기 때문이다. 조용만은 김유영이 카프에서 탈퇴한 뒤 순수예술을 지향해 이종명, 조용만과 함께 구인회 결성을 도모했고, 정작 구인회 결성 뒤에는 모임을 주도하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느껴 곧 탈퇴했다고 회고했다. 조용만의 그런 회고는 두루 받아들여져 왔다. 특히 김유영이 카프에서 탈퇴한 뒤 순수예술을 지향해 구인회를 만들려 했다는 조용만의 회고는 카프와 구인회를 배타적으로 보는 관점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는 증거로 활용돼 왔다. 그러나 저자는 조용만의 회고를 납득하기 어려웠다. 조용만의 회고를 따른다면, 김유영은 짧은 기간 동안에 카프 탈퇴, 구인회 결성, 구인회 탈퇴의 행보를 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 예술가가 예술적 행보를 그토록 쉽게 자주 바꿀 수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김유영이 카프에서 탈퇴했다면, 그 까닭은 무엇인가? 그의 카프 탈퇴는 순수예술로의 전향을 뜻하는 것이었는가? 그가 구인회의 결성을 발의하고 도모한 것은 순수예술을 향한 의지 때문이었는가? 그는 구인회에서 왜 탈퇴했는가?  

책의 2부가 이 물음들에 대한 답이다. 저자는 2부에서 김유영이 1927년 영화계에 입문한 뒤 1940년 타계하기까지 걸었던 길을 추적했다. 그리고 김유영이 영화계에 입문한 뒤 구인회의 결성을 도모하기 전까지 벌였던 그 어느 활동에서도 그가 순수예술 쪽으로 선회했다고 판단할 근거는 없음을 확인했다. 김유영은 제2차 카프 검거 사건이라 불리는 ‘신건설 사건’의 재판 과정에서 전향 서약을 할 때까지 일관되게 프롤레타리아영화운동의 길을 걸었다. 저자는, 여러 자료들을 통해, 심지어 김유영이 구인회를 결성하려 했던 의도―물론 그 의도가 구인회에서 구현되지는 않았다―와 거기서 탈퇴한 이유마저도 그가 전개했던 프롤레타리아영화운동의 맥락에서 찾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단체’로서의 구인회는 모더니즘문학의 주체라기보다는 1930년대 전반기에 목적주의문학과 문학을 도구화하는 저널리즘에 대응했던 하나의 방식이었다. 또 새로운 문학을 지향하는 움직임이었다. 그 움직임을 모더니즘으로만 개념화하기는 어렵다. 선입견을 버리고 구인회 회원이었던 작가와 시인들을 다시 연구해야 한다. 그것이 인간과 시대와 문학을 깊이 이해하고 우리 문학사를 좀 더 촘촘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일이라 생각한다. 

 

현순영 전북대 강사·국문학 
2010년 고려대에서 「구인회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여름, <서정시학> 신인상(평론 부문)을 받아 등단했다. 문학사 및 소설 연구와 시 비평을 병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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