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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4호 새로나온 책
874호 새로나온 책
  • 교수신문
  • 승인 2017.04.11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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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신간

젊은 날에 지녔던 정의감, 신념 그리고 정열은, 반드시 있다고 믿었던 ‘고향’을 당장에라도 밟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게 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낙관이 체념으로 변하지는 않았으나, 낙관이 그저 낙관을 위한 자기변명이 아니라 생명력 있는 낙관이 되기 위해서는 긴 과정과 많은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게 됐다. 한마디로 절제할 줄 아는 낙관주의이다. 나는 이를 은유적으로 ‘불타는 얼음’이라고 부른다.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떠오르고 있는 ‘메탄히드라트’는 얼음처럼 생겼지만 새파란 불길을 지피면서 고열을 낸다. 가스가 오랜 시간의 인고 끝에 고체가 되고, 이것이 다시 열을 뿜어내면서 다시 대기 속으로 사라진다. 나의 ‘불타는 얼음’은 희망과 절망 그리고 또 희망, 낙관과 비관 그리고 또 낙관의 열린 과정이다.”
송두율 재독학자, 『불타는 얼음: 경계인 송두율의 자전적 에세이』(후마니타스, 2017.3) 중에서

 

■ 교육독립선언: 백 년을 생각하며 묻는다, 희망철학연구소 지음,현암사, 240쪽, 13,000원

“왜 지금 교육 독립이 필요한가?”, “향후 백 년간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무엇이 바뀌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에서 출발한 책. 이른바 제4차 산업혁명이 다가오지만, 우리 교육 제도는 예전 모습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 더구나 최근의 국정 역사교과서 파동에다 각 지방 교육청과 심한 마찰을 빚은 누리과정 예산 지원 논란, 대학 재정지원 사업 파행 등으로 교육계 안팎의 불신이 고조된 상태다. 철학 교수들의 모임인 희망철학연구소가 출간한 이 책은 한국 현대사의 분기점을 이루는 촛불집회 이후 우리가 나아가야 할 교육의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교육독립선언문’은 “교육은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어떠한 권력에 봉사하는 것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예컨대 교육의 목표를 경제적 기능인 양성에 두는 어떠한 시도도 거부해야 한다. 기능인으로서의 인간상은 인간의 자기실현이라는 궁극적인 목적에 기여할 때만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 동아시아담론의 논리와 지향, 고성빈 지음, 고려대출판문화원, 729쪽, 38,000원

저자는 동아시아 발 비판이론의 모색이라는 큰 주제를 네 가지 세부적인 주제로 나눠 토론을 시도했다. 이것들은 각각 독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의 연결선을 달리고 있다. 이 책은 지식의 무경계, 탈공간적 적용에 공감하고 있다. 첫째, 근대의 계몽기획과 탈근대적 문제의식을 접목한 이중과제를 비판의 준거로 삼기위한 근거를 칸트와 하버마스의 사유에서 찾아본다. 실제로 저자가 인용한 비판이론가들은 양자의 철학에서 심대한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둘째, 주변부시각에서 진단한 동아시아적 상황을 참조해 강조했던 인문학적인 개념들의 유효성을 따져보고, 대표적으로 수평주의적 사고를 비판이론의 논리로 전환시킬 수 있는가에 대해 토론해 본다. 셋째, 주변부 시각에서 동아시아 소수자문제를 초국적 정의론을 자원으로 삼아 조망해 본다. 넷째, 서구의 신비판이론의 개념을 참조하면서 동아시아담론이 제시하는 논지를 동아시아의 정당한 지배를 위한 비판의 준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전망해 본다.

 

■ 동화와 배제: 일제의 동화정책과 내선결혼, 이정선 지음, 역사비평사, 528쪽, 32,000원

제국 일본은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가족국가를 표방하면서, 조선인과 일본인의 결혼을 조선인의 동화의 궁극적인 수단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내선결혼은 다른 한편으로 일본인과 조선인의 법제적·문화적·혈연적 경계를 흔드는 식민통치의 위험 요소이기도 했다.?서로 지위가 다른 일본인과 조선인의 결혼은 양 집단 모두에게 문화적·혈연적 혼효를 야기하고, 그 부부와 자녀를 어느 집단에 포함시킬지 혹은 배제할지를 결정해야 하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내선결혼 정책은 조선인에 대한 동화정책인 동시에 일본인과 조선인의 경계에 관한 정책이었다.?일제시기 가장 사적이면서 정치적인 문제였던 내선결혼을 둘러싸고 민족, 계급, 젠더의 권력관계들이 맞물리는 양상을 살펴보는 것은 해방으로 법제적 평등을 얻은 국민국가에 여전히 존재하는 실질적 차별을 성찰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또한 그 가운데 동원된 포섭과 배제의 논리들은 ‘다문화’ 사회에서의 차이와 차별의 관계를 생각할 단서도 제공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 북한녀자: 탄생과 굴절의 70년사, 박영자 지음, 앨피,  640쪽, 28,000원

기존 북한 사회 및 젠더 연구는 ‘수령제’라는 북한 정권의 특수성에 초점을 맞추느라 정권의 여성정책 및 담론 분석에 치중된 감이 없지 않다. 그러나 이런 연구들은 권위주의적 국가권력이 ‘性의 불평등한 배치’로 여성 권리를 제약하는 권력의 성불평등한 지배 방식과 그로 인한 여성들의 고통 등을 드러내는 데는 유의미하지만, 역사 주체로서 인간이 지닌 의식과 행위 발전을 간과하게 되어 정작 현실 속 여성들의 세계는 놓칠 가능성이 높다. 기존 북한 연구들이 가부장적 사회문화에 근거해 여성 문제를 주제별로 다뤘다면, 이 책은 해방 이후 당-국가 체제 수립부터 전쟁과 산업화, 1990년대 중반 이후 선군정치-시장화-3대 세습으로 이루어진 현재까지의 북한 젠더 시스템의 역사를 다뤘다. 북한의 사회주의적 근대와 젠더 전략이 시대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통시적 역사와 함께, 해방-전쟁-산업화-시장화-선군정치-3대 세습이라는 각 시대 공간에서 펼쳐지는 공시적 역사를 아울러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생명과학, 신에게 도전하다: 5개의 시선으로 읽는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 김응빈·송기원 외 지음,동아시아, 292쪽, 15,000원

이 책은 유전자가위와 합성생물학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충실히 전달하고, 동시에 윤리, 철학, 종교, 정책의 측면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다양한 내용을 담고 있다. 논의의 장을 열기 위한 질문의 책이라 할 수 있다.?1장에서는 합성생물학을 다룬다. 새롭게 등장한 합성생물학이라는 학문의 내용이 무엇인지 구체적 설명부터 합성생물학 경진대회인 ‘아이젬’, 지역공동체 실험실인 ‘커뮤니티 랩’ 등 합성생물학 대중화 추세를 말한다. 2장에서는 크리스퍼 유전자가위와 유전자 편집을 다룬다. 유전자 편집을 둘러싼 입장 차이는 앞으로 더욱 논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며, 독자들의 세심한 판단이 필요한 부분이다. 3장에서는 합성생물학의 연구가 현재 어디까지 진행됐는지 그 현황과 국내외 정책을 다룬다. 4장에서는 다시 생명을 질문하며, 과학과 철학의 관점에서 이야기한다. 

 

 

■ 현대건축: 비판적 역사, 케네스 프램튼 지음,송미숙 옮김,마티, 840쪽, 33,000원

이 책이 다른 현대 건축사와 다른 점은 서술의 기조에도 드러나지만, 현대 건축이 전 세계로 확산돼나가는 과정과 ‘비판적 지역주의’라는 저자의 입장에서 가장 두드러진다. 진보적 요소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근대화에 비판적인 건축, 지역의 자의식을 강조하는 건축, 형태보다는 축조를 중시하는 건축, 지역의 환경에 친화적인 건축, 시각만큼 촉각적인 것을 강조하는 건축, 보편화에 저항하는 건축 등을 옹호하는 저자의 입장은 1980년대 이후 전 세계에 걸쳐 대단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한국의 여러 건축가들도 ‘비판적 지역주의’를 자신의 모토로 삼기도 했다. 즉. 현대 건축을 이해하는 하나의 중요한 틀로 확고히 자리매김한 것이다. 2000년대 초에 집필된 이 책 3부에서 주목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가’ 다수가(파울루 멘지스 다 호샤, 페터 춤토르, 에두아르도 소투 드 모라, 이토 도요, 알레한드로 아라베나)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프리츠커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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