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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문닫는 대학가 교수벤처 늘어난다
[초점] 문닫는 대학가 교수벤처 늘어난다
  • 교수신문
  • 승인 2003.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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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 그만둬야할지 고민이다.” 실험실 바이오 벤처를 창업한 지 3년 돼 가는 ㄱ대학의 손 아무개 교수가 무겁게 말문을 열었다. 이렇다할 자본없이 기술만 믿고 지금까지 버텼지만 앞으로 계속될 자금난에는 속수무책이라는 것. 정부의 지원을 바라고 있지만, 그것도 그리 녹록치 않게 됐다.

최근 기획예산처에서 발표한 내년도 벤처기업 지원 계획에 따르면, 손 교수와 같이 정부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벤처 기업들은 더욱 설 자리가 없게 됐기 때문이다.

2001년에 절반이상 문닫아

벤처 기업에 대한 직접적인 자금지원에 치중했던 정부의 지원책이 내년부터 기업환경개선과 안정적인 투자 인프라 마련 등 간접지원 방식으로 크게 바뀌게 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옥석을 가린다는 것. 이에 따라 2001년 후반 벤처 거품 현상이후 나타나기 시작했던 교수 벤처들의 중도탈락이, 내년도를 기점으로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지난 해 대학산업기술지원단이 전국 2백94개 교수벤처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기업의 명맥을 유지했던 곳은 1백23개(41.8%)에 불과했으며, 정부의 추가 지원이 없으면 회사가 문닫을 수밖에 없다고 응답한 곳이 85개 업체였다. 또한 중소기업청이 제공한 ‘교수·연구원 출신 벤처 현황’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에 적어도 73개의 교수 벤처가 문을 닫았다.

중소기업청 벤처지원국의 한 관계자는 “정확하게 얼마만큼의 교수 벤처가 실패했는지 집계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도 “전체 벤처 기업수가 지난 해에 1만1천5백여개에서 올해 9천6백여개로 급감한 것에 비추어본다면, 자본금 없이 기술력만 갖춘 교수 벤처가 실패한 벤처 가운데에 상당수 끼어 있을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교수벤처라고 예외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표면화된 벤처거품현상이 코스닥 시장의 폭락으로 이어졌고, 벤처와 관련된 비리 사건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투자자의 불신과 함께 벤처 시장이 위기를 맞게 됐다는 것이다.

올해 초 벤처를 그만둔 ㅁ대학 박 아무개 교수의 실패도 냉랭한 시장의 여건, 경험부족과 무관치 않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99년 반도체소자 부품 개발 전문 업체 A회사를 차린 박 교수(전자공학과)는 “문제가 생기면 신속하게 해결해야 하는데, 조금씩 지연되자 걷잡을 수 없이 상황이 악화됐다”라면서 실패의 원인으로 여윳돈이 없는 취약한 재정 구조, 조직관리와 마케팅 미숙, 시장개척과 자금조달 능력의 부족 등을 꼽았다.

시장성이 있는 고도의 기술집약형 상품을 눈에 띄게 개발하더라도 능수능란한 회사 경영 능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교수가 벤처에 성공할 수 없다는 것도 벤처 업계의 중론이다.

‘기술’만 믿다가는 낭패보기 일쑤

항생제·항암제 등을 개발하고 있는 아트만바이오사이언스의 대표 홍순광 명지대 교수처럼 전문경영인 영입을 적극 고려하는 업체도 많다.

내년 8월에 겸직 가능 기간이 만료되는 홍 교수는 경영을 다른 이에게 맡기고 향후 연구개발에만 몰두할 예정이다.

홍 교수는 “당장의 수익을 위해 건강식품 등을 개발해 상품화하는 방향으로 바이오 벤처 기업들이 어려움을 회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지만, 바이오벤처 가운데 절반 이상이 넘는 대학의 랩 벤처들이 기업의 생존을 무시한 채 시장성 없는 기술 개발에 매달리는 것도 문제”라며 연구·경영 분리를 고려해야한다고 조언했다.

재정악화에 시달리고 있는 경북대의 W업체가 최근 전문경영인을 영입한 것도 홍 교수의 생각과 궤를 같이한다. W업체의 ㅎ교수는 애완견의 순수혈통보존을 위한 유전자지문혈통서를 개발하고 있지만, 난국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경영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경영인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경영학과)는 “각종세제지원, 자금지원 등 ‘퍼주기식 벤처 정책’에 많은 교수들이 돈도 없이, 치밀하게 준비하지 않은 채 벤처에 뛰어들었다”라면서 “교수신분이 부여하는 안정감과 둔감함, 창업보육센터의 취약성, 자금순환이 안 되는 벤처 시장, 도덕적 해이 등이 교수 창업의 걸림돌”이라는 의견을 제시했다.

연구·경영 분리로 살 길 찾는 벤처들

또 한 교수는 “저인권비를 활용하는 창업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교수가 연구·교육에 소홀한다는 것부터가 ‘모럴 해저드’”라면서 대학원생과 교수의 수직적 구조를 경계함과 동시에 교수로서의 본분을 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식기반사회로의 이행’이라는 김대중 정부의 정책하에 교수 벤처 기업의 활성화가 이뤄졌다고 하더라도, 상아탑 외부에 관심을 가지는 교수들의 벤처 창업이 과연 누구를 위한 활동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문제로 남는다. 교수의 창업이 대학의 수익을 창출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도 교수의 본분이 ‘대학재정문제의 해결사’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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