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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만의 '기능적 분화' 개념에 대한 최근의 역사사회학적 분석
루만의 '기능적 분화' 개념에 대한 최근의 역사사회학적 분석
  • 김건우 독일 빌레펠트대 박사과정.사회학
  • 승인 2017.03.28 17: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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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대학은 지금_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과의 어떤 문제의식

지난, 3월 1일 빌레펠트대 사회학과가 주관하는 ‘역사사회학과 사회학적 과정연구’라는 문제의식에서 ‘역사적 과정에 대한 사회학적인 분석’을 주제로 근대사회의 분화의 역사를 조망하는 행사가 빌레펠트대 사회학과에서 개최됐다. 이 행사는 기능적 분화의 역사적 과정을 독일의 경험을 중심으로 검토하면서 루만의 체계이론을 일반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수준에서 검증, 검토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발표는 오전 9시 반에 시작돼, 저녁 6시까지 6명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됐다. 발표된 논문은 「19세기 예술 장에서의 분화과정들: 교회 예술가협회의 상반된 역할에 대하여」(유타 칼스타인, 라이프치히대), 「프러시아의 다양한 형태의 근대로의 이행을 통해 본 사회학적인 거대내러티브에 대한 역사적-경험적 조사」(요하임 렌, 뮌스터대), 「로마 제국에서 중심/주변과 계층의 분화형식들 간의 관계에 대하여」(볼프강 R. 쉬나이더, 오스나브뤽대), 「탈분화-근대 분화이론의 범주?」(울리히 바흐만, 하이델베르크대), 「과정으로서 분화?」(라이너 슈차이첼. 빌레펠트대), 「전쟁과 기능적 분화」(볼커 크루제, 빌레펠트대) 등이다. 

‘전쟁과 기능적 분화’ 발표

이글에서는 가장 주목을 받았고, 토론이 활발했던 볼커 크루제 교수의 「전쟁과 기능적 분화」 발표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그는 전쟁, 특히 바이마르 공화국과 직후 나치의 경험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 사회의 사회적 분화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에 주목했다. 전쟁이 사회적 분화구조에 끼친 영향에 대해 검토하기 위해 그는 일반적인 수준에서 생각할 수 있는 다음 네 가지 가능성을 제시한다. (1)전쟁은 분화구조의 질과 과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고 그에 반해서 발생한다. (2)전쟁은 분화과정을 질적으로 변화시키기보다는 가속화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3)전쟁은 고유한 분화구조들, 즉 전쟁이 종료된 이후에는 사라지는 분화구조들을 산출한다. (4)전쟁은 고유한 분화구조들을 산출하는데, 이 구조들은 부분적일지라도 전쟁이후에도 실제로 지속된다. 

이 가능성들에 공통되는 것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군사적이고 정치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조건은 특정한 결정구조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전쟁이 발발하던 시점에는 이 전쟁이 장기전으로, 전투가 아니라 대전쟁으로 전화할 것이라고 예측한 참전국은 없었다. 하지만 단기적인 결정과 달리 군사적으로 교착상태가 지속되면서 의도하지 않은 무기, 탄약, 전쟁원료의 수요가 급증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 초기인 1915년 영국과 러시아처럼 전쟁과 비전쟁의 구별 없는 절차를 결정구조로 한 국가의 경우 군사적으로 패배하고, 이러한 패배의 결과로 권력이 중앙에 집중되면서 그곳이 전체를 조절하는 것으로 구조가 전환됐다. 반면 독일은 전쟁에서 중요한 원료들을 선별적으로 요구하고 배분하며, 또한 전쟁에서의 중요성에 따라 개별 기업들을 전쟁에 배치한 국방부의 전쟁원료분할에 근거해 전쟁을 수행하는데, 이는 무기 생산 및 탄약생산의 급격한 증가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프랑스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역시 유사한 결정구조를 갖게 된다. 이런 점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수행한 다섯 국가인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러시아는 전쟁시작과 함께 결정권력이 집중되는 독재적인 정치-군사적인 정점을 형성하는 경향을 갖게 된다. 이른바 ‘총력전’을 위한 사회의 결정구조의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전쟁사회’의 기능과 포함과 배제의 메커니즘

루만의 기능적 분화와 관련해서, 이는 세계전쟁 과정에서 사회는 중심의 조절을 요구하는 하나의 정점을 갖는 사회가 됐으며 전쟁의 전개와 더불어 권력이 정점에 집중하는 현상이 더 증가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근대적인 대전에서는 ‘중심에서의 조절(zentrale Steuerung)’이 ‘기능적으로’ 강제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발표에서 크루제 교수는 이를 ‘전쟁사회(Kriegsgesellschaft)’ 라고 명명하면서, 이 사회에서는 중심에서의 조절과 독재적인 경향을 갖는 정점이 서로 구조적으로 연결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전쟁사회들을 특징짓는 중요한 성격은 그것이 ‘애국적인 공유화‘를 형성하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에밀 레더러(Emil Lederer, 1882~1939. 제1차 세계대전이 야기한 독일의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구조변동과 연동된 근대국가의 성격을 해명하기 위해, 전쟁 발발 직후인 1915년 『세계대전의 사회학(Zur Soziologie des Weltkriegs)』을 썼다) 역시 이미 1차 세계대전 중에 ‘국가의 이중적인 본질’로 관찰한 것처럼, 전쟁 전에 사회를 특징지었던 대중적인 계급투쟁은 전쟁과 더불어 갑자기 사라지면서 전쟁사회에서는 애국적인 공유화의 한 부분으로 인정되는 자는 전쟁사회에 포함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는 배제되는 포함과 배제의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이런 맥락에서 전쟁 이전에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 배제된 집단인 노동자는 전쟁사회에서는 애국적인 공유화의 부분으로 포함되지만, 이전에 인종적인 소수자들로 포함됐던 집단은 이제 ‘적’으로 규정되고 배제되는 것이다.

이는 포함과 배제의 메커니즘에 대한 루만의 기능적 분화 이론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더욱 풍성하게 하는 것이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의 자기조절메커니즘은 정치-군사적인 정점에 의해 중심에서 조절되는 사회로 전환하는데, 크루제 교수는 이를 ‘전쟁사회적인 근대(kriegsgesellschaftliche Moderne)’ 라고 명명한다. 하지만, 이런 구조변동은 기능체계들이 전쟁수행의 목적을 위해 정치-군사적인 정점에 의해 ‘도구화’된 것이지, 기능적 분화가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능체계들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도구화되지 않은 경역에서 자기지시의 성격, 그리고 자기조절을 재생산하는 것으로 후퇴하는 것이다. 포함과 배제의 메커니즘과 관련해서도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에서는 각 기능체계들에 포함되는지의 여부가 문제였지만, 전쟁사회에서는 자율적인 기능체계들이 아니라 ‘애국적인 공유화’에 포함되는지의 문제가 결정적이다. 이를 통해, 전쟁 전과 전쟁 중 또는 전쟁 이후 포함과 배제의 메커니즘에 역전이 발생하는데, 이는 포함의 엔진으로서 전쟁이 근대사회 안에서 작동하는 한 양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설명은 레더러가 “국가와 군대는 국가권력의 증가와 군대권력의 증가가 서로 맞물린 방식으로 상호작용하며, 이는 그 사회의 기반으로부터 탈각된 것이다”라고 하는 것의 체계이론적인 해명이 될 수도 있다. 즉, 기능체계들의 자율성과 반성이 아니라 ‘애국적인 공유화’는 그 통합의 외양과 달리 거꾸로 이미 사회의 기반으로부터 탈각된 것이라는 체계이론적인 관찰이 가능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기능적으로 분화된 구조가 전쟁 중에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전쟁 이후에 전쟁사회의 구조 역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체계이론적이고 역사사회학적인 이론화가 가능하다. 이런 맥락에서 동아시아의 근대성과 근대사회의 메커니즘을 기능적 분화의 맥락에서 이론화할 수 있는 여지가 확보될 수도 있다.

에밀 레더러와 마찬가지로 제1차 세계대전과 근대사회의 내적인 연관을 이론화하려는 시도에서 1914년 『법치국가과 복지국가(Rechtsstaat und Wohlfahrtsstaat)』을 쓴 퇴니스는 역시 전쟁 중이던 1917년 『영국국가와 독일국가(Der englische Staat und der deutsche Staat)』에서 ‘공동체와 사회’의 구별에 기반하지만, 이를 이행의 문제에서 국가 유형의 문제로 확장한다. 즉, 이 시점의 독일을 이념형이 아닌 역사적인 실재로서 ‘복지국가’로 이론화하고, 영국을 ‘계약국가(Vertragsstaat)’로 이론화하는 방식으로 공동체와 사회를 국가와의 연관 속에서 두 개의 상이한 민족적인 실체로 개념화한다. 그는 민족공동체(Volksgemeinschaft)를 설명하면서, “근대 독일의 국가이념의 본질은 국가의 민족의 동일성에 입각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사회의 기능적 분화를 초월해 있는 ‘애국적인 공유화’의 원형인 이런 국가이념은 사회 안에 국가를 위치지우는 것이 아니라, 사회 외부의 초월적인 심급에 국가를 위치지운다는 점에서 역시 근대사회의 기반으로부터 구조적인 연결이 해체된 것이라고 체계이론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근대적인 삶의 복잡성과 우연성은 통제될 수 없다는 사회학적 사실, 그리고 독점적인 정점에서 권력을 잡아 찢는 것이 근대사회의 다이나믹에 내재돼 있는 것을 이론화하는 것 뿐 아니라, 사회의 근대적인 기능성과 가능성들을 탈각하는 것이라는 체계이론적인 작업 역시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만 체계이론의 현재화 작업과 이론적 역설

독일의 역사를 루만의 체계이론, 특히 기능적 분화 개념을 중심으로 사회학적으로 분석하는 시도를 보면서, 루만 이론이 추상적이고 난해하기만 한 사회학 개념들의 콜라쥬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수준에서 역사사회학을 풍성하게하고, 새롭게 발굴된 의미론을 확장시킬 수 있는 단단한 이론적 기반들과 개념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사적 과정이 복잡할수록, 역사와 사회, 사회와 역사는 구별 불가능한 질료로, 또 역사적인 삶으로 추상화되고 일반화돼 이론적인 접근의 무용성을 정당화하거나, 풍부한 삶을 개념이라는 추상으로 재단한다고 냉소하기 쉽다는 점에서 ‘이론적 비관주의’에 빠질 수 있다. 

하지만, 이번 학술행사는 이러한 이론 허무주의에 대해 오늘날 사회학 이론이 도달한 가장 추상적인 이론인 루만의 체계이론을 통해 역설적으로 가장 구체적인 수준에서 역사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고 이렇게 형성된 역사에 대한 이론화를 유지할 수 있다는 이론의 역설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근대성의 다이나믹을 고려할 때, 근대사회 안에서 펼쳐지는 역사에 형식을 부여하는 지식사회학적인 작업은 새로운 이름을 부여할 수 있고, 동시에 이를 유지할 수 있는 견고한 사회학적인 이론과 개념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기능적으로 분화된 사회는 정치를 파괴할 때만, 정치로 집중될 수 있다”라는 루만의 문장을 전쟁과 기능적 분화라는 일견 극단적인 근대사회의 메커니즘을 역사적으로 그리고 사회학적으로 이론화하는 작업은 이처럼 사고실험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행사는 역사와 사회의 관계를 고민할 때, 그리고 그 관계를 이론화하고자 할 때 루만의 체계이론이 갖는 현재성과 그 잠재성을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김건우 독일통신원/빌레펠트대 박사과정·사회학

이번호부터 새롭게 ‘해외통신원’으로 기고하게 된 필자는 서울대 대학원에서 「루만의 ‘사회적 질서’ 문제의 해명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했다. 현재 독일 빌레펠트대 사회학과 박사과정에서, 칼 슈미트와 니클라스 루만의 국가이론과 공법이론을 비교, 종합하는 작업을 통해 민주주의와 국가의 내적인 연관을 사회학적으로 조명하는 국가사회학을 연구하고 있다. 루만의 저작 『근대의 관찰들』과 『체계에서의 권력』 등을 번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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