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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통치성' 구체적 분석 ...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라"
'식민지 통치성' 구체적 분석 ... "그들의 눈으로 바라보라"
  • 최대희 대구가톨릭대 다문화연구원
  • 승인 2017.03.28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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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규정과 지배: 원주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마흐무드 맘다니 지음 | 최대희 옮김 | 창비 | 244쪽 | 15,000원

『규정과 지배: 원주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Define and Rule: Native as Political Identity)』(2012)는 아프리카를 비롯한 19~20세기 식민지 지배구조 분석을 통해 현대의 종족적·인종적 갈등의 뿌리를 파헤치는 책이다. ‘아프리카의 역사를 세계사의 맥락에서 해석해내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이론가’로 평가받는 인류학자 마흐무드 맘다니(Mahmood Mamdani)는 인도에서 아프리카 대륙에 이르기까지 식민지배의 이론과 역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탈식민적인 아프리카의 현실을 폭넓게 들여다보게 하는 탁월한 시야를 제공한다. 그는 정치적 정체성으로서 원주민성의 형성과정을 추적하면서 19세기 후반부터 대두된 ‘간접지배’라는 새로운 식민지 경영 방식이 원주민과 이주민의 차이를 규정(define)하고 그 차이에 기반한 지배(rule)로 귀결됐음을 날카롭게 드러낸다. 

맘다니는 간접지배를 ‘식민지 통치성(colonial governmentality)’의 한 형식으로 간주한다. ‘식민지 통치성’은 데이비드 스콧(David Scott)이 푸코의 ‘통치성’ 개념을 식민지 분석에 적용시켜 만들어낸 개념으로 식민지 권력이 가능하게 만든, 다시 말해 유럽인이 피식민지인의 삶 속으로 밀어 넣은 새로운 형식의 ‘주체성’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인도에서는 1857년 세포이 항쟁의 여파 속에서 직접지배, 문명화 사명 그리고 식민지 엘리트를 중심으로 한 동화주의적 기획을 대신해 간접지배가 들어섰다. 저자는 헨리 메인(Henry Maine)에게서 간접지배라는 새로운 근대적 지배기술을 식민지국가에 처음으로 도입한 자를 확인한다. 간접지배는 동화를 목적으로 추구한 직접지배와는 달리 관습으로서 ‘차이’의 재생산이었다. 메인이 간접지배를 이론적으로 ‘차이’에 대한 이해 및 관리에 관한 것으로 규정했다. 

인도의 식민지권력은 실제에서 간접지배를 통해 원주민과 정착민 사이의 차이를 형성하거나 나아가 차이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했다. 만다니는 제국주의자들이 식민지 경영에서 간접지배라는 새로운 통치성을 끌어들이는 과정은 피식민지인의 주체성을 새롭게 주조하는 과정과 맞물려 있음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 통치성이 ‘주민’을 동질적인, 차별화되지 않은 개인들로 간주했다면, 식민지 통치성은 관습 또는 카스트의 ‘원초적’ 범주를 인지하고 그 위에 구축됐음을 강조한다. 직접지배가 문명화 사명을 수단으로 엘리트집단을 동화하려는 목표를 세웠다면, 간접지배의 야망은 전체 주민의 주체성을 새로 주조하는 것이라는 논지를 펼친다.

간접지배는 배제의 언어(문명인 vs. 비문명인)로부터 포섭의 언어(다원주의 및 문화적 차이)로의 변화를 내포했다. 법은 간접지배 기획의 가장 핵심적 위치를 차지했다. 저자가 지적하듯이, 식민지 권력은 차이를 관리하기 전에 차이에 대한 규정(define)에 착수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 무슬림과 힌두교도는 새로운 법적 규제를 획득했고 소수집단 권리는 제도화됐다. 그로 인해 유동적인 전통적 정체성은 고정된 정치적 정체성으로 변형됐다. 이와 같은 새로운 근대적 지배 기법은 ‘차이’를 인정할 뿐만 아니라 ‘차이’를 주조하고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맘다니는 그것이 피식민지인 절대 다수를 몇몇 정치적 소수파로 효과적으로 파편화시키는 방식으로 국가에 의해 강제된 내적 차별 시스템을 만들어내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정치적 기획 기제는 법, 인구조사, 역사서술이라는 세 가지 도구의 효과적인 배치에 달려 있었다. 그것은 인도에서는 종교와 카스트를 토대로 정의된(defined) 주민을 만들어냈다. 저자는 아프리카 식민지국가에 대한 분석을 통해 식민주의자들이 인종과 종족을 구분하고 나아가 종족들을 원주민과 비원주민으로 구분하는 식으로 식민지 경영을 했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새로운 형식의 식민지 경영은 ‘정치적 정체성’으로서 ‘원주민’에 기반 해 있었다. 그것은 1857년 인도의 세포이항쟁과 1860년 자메이카의 모란트 베이 항거라는 두 가지 사건에 대한 반응이었다. 두 사건이 수습되자 기존의 식민주의적 ‘문명화 사명’은 위기에 봉착했고 그러한 위기에 대한 반성 작업이 식민의 사명을 문명에서 보전으로, 진보에서 질서로 재정의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메인이 피식민지인이 ‘원주민(native)’이라는 사고를 제시한 것은 바로 이런 문맥에서다. 저자의 표현을 따르면 원주민은 ‘지역적 관습을 따르는 것이지 보편적 관념이나 이념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원주민을 문명화하려는 오리엔탈리스트, 나아가 식민지 권력의 노력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저자는 여기서 문화 개념이 비서구사회와 서구사회에 각기 달리 적용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비서구사회에 적용된 ‘문화’는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고 식민지 사회를 재조직하는데 활용됐는데, ‘사방이 벽으로 둘러쳐진, 고립된, 그리하여 변하지 않는 사안’으로 개념화됐다. 반면 서구사회에 적용된 것은 ‘변용적인(transformative) 문화’로, 서구사회의 본성과 역동성을 설명해주는 개념으로 이해됐다. 맘다니는 바로 이러한 문화 개념의 구분을 통해 우리에게 ‘진보적인 서구’와 ‘정태적인 비서구’라는, 진보이론의 낡은 이항대립을 확인시켜준다. 

맘다니는 이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원주민성의 실제를 검증한다. 그는 19세기 후반 식민지 권력이 정당화 위기를 겪고 난 뒤 식민지 기획의 언어가 신학적인 것으로부터 세속적인 것으로, 다시 말해 개종으로부터 법적 지배의 강제로 이동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법은 피식민지인을 일련의 ‘종족들’로 구분하는데 활용됐다. 저자의 논지에 따르면, ‘부족’으로서 원주민은 다른 곳에 기원을 두고 있는, 즉 ‘인종’으로 간주되는 사람들과 구별됐다. 식민지 국가는 “단 하나의 유일무이한 특성, 즉 기원에 주목하는 것이며, 거주를 포함한 모든 연속적 발전을 완벽하게 무시”했다. 맘다니는 바로 이러한 구분이 향후 피식민지의 역사적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즉 인종-부족 사이의 구분은 식민지 지배자와 피식민지인 사이의 구분을 강조하지 않고 오히려 토착민과 외래인을 정치적으로 구분함으로써 단일한 범주인 피식민지인을 갈라놓았고, 그럼으로써 식민지 해방 이후 아프리카에서 국민국가 건설에도 악영향을 끼쳤다는 것이다. 

저자는 마지막으로 탈식민주의의 이론과 실제를 탐색한다. 나이지리아의 역사학자 우스만(Y. B. Usman)을 통해 서구 사회의 아프리카 식민정책과 이에 저항하는 탈식민운동의 방향을 분석한다. 특히 탄자니아 대통령 니에레레(M. J. Nyerere)의 탈식민전략이 서구의 ‘규정과 지배’에 맞서 어떻게 효과적으로 저항했는지를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대목은 주목할 만하다. 식민지기구의 존재 자체를 없애버리자는 레닌 식 ‘국가소멸론’ 전략이 아프리카 식민지에서는 옳은 전략이 아니었으며, 그보다는 ‘지속적이면서도 평화적인 개혁을 통해 간접지배 구조를 벗어나려는 시도’가 충분히 가능하고 도리어 적절하지 않겠느냐는 그의 일침은 귀기울일 만하다. 

『규정과 지배』는 아프리카의 정치사, 식민지 유산 그리고 현대의 종족적-인종적 갈등의 뿌리를 이해하는 데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저자는 아프리카의 인종화와 종족화가 독립 후 아프리카의 민주화를 크게 방해했다는 주장을 펼친다. 전체 주민의 정체성을 완전히 새로 주조하고자 했던 간접지배의 야망은 지금의 아프리카, 남아시아 등의 국가들이 민주적으로 재편되는 데에 여전히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맘다니가 서문에서 이 책을 쓴 동기와 관련해 밝히고 있듯이 독자로 하여금 세계를 아프리카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유도한다. 그렇다고 이 책이 단순히 탈식민 시기 아프리카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수행하는 데 그치는 것은 아니다. 옮긴이가 보기에 이 책의 보다 중요한 의미는 맘다니가 지배적인 서구 역사학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판을 토대로 간접지배의 정교한 장치를 분석함으로써 그것이 인종적 편견과 객관성이란 겉치레에 기반해 있음을 들춰냈다는 점에 놓여 있다. 

맘다니는 탈식민 시기 아프리카 연구가 앞으로 식민지배의 역사를 거울삼아 새로운 주체를 생성해낼 가능성을 찾아보자고 당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주민과 정착민(이주민)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 정착민이 원주민이 되는 날은 언제일까? 필자는 이와 동일한 질문을 이미 1998년 케이프타운대학 취임연설에서 제기했는데, 그것은 절대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답도 함께 내놓았다. 정착민과 원주민을 해방시킬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은 양자 모두가 정치적 정체성으로서 존재하길 그만두는 것이다. 그것은 이항대립적 식민주의의 정치적 기획에서 벗어나는 것이기도 하다. 정착민과 원주민의 세계를 거꾸로 뒤집어엎는 방식을 가능하지 않으며, 정착민과 원주민은 함께 가야 한다는 것이다. 원주민 없이 정착민이 존재할 수 없으며 반대의 경우도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다.(9~10쪽)

최대희 대구가톨릭대 다문화연구원.역사학
필자는 서울대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구가톨릭대 다문화연구원에서 이주사회를 연구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역사의 섬들』, 『역사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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