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 유례없는 평화적 혁명, ‘촛불’이 밝혔다
세계사에 유례없는 평화적 혁명, ‘촛불’이 밝혔다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7.03.20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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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호 계간지 리뷰
▲ 봄호 계간지. 왼쪽부터 <창비> 175호, <문학과학> 89호, <황해문화> 봄호, <역사비평> 118호, <오늘의 문예비평> 104호

한 시인은 오래 전에 ‘겨울나무에서 봄나무에로’ 노래를 불렀다. 2016년 겨울과 2017 봄 사이에 한국사회는 ‘탄핵열차’가 달렸다. 이제 봄이 온다면, 희망의 노래를 새롭게 지펴 올리게 될 것이다. 

긴 겨울을 지나온 봄 계간지들이 각자의 목소리를 한 보따리씩 들고 나타났다. 가장 먼저 <창비>175호가 특집 ‘촛불혁명, 전환의 시작’으로 말문을 열었다. 이어서 <문화과학> 89호가 국정농단의 단적인 사례이자 ‘인권 침해’ 증거가 된 ‘블랙리스트’를 특집에서 분석했다. <황해문화>는 ‘야만의 시대, 학문과 지성의 현주소’를 짚었다. 이들은 ‘야만의 시대’보다 ‘학문과 지성’의 문제에 더 붓끝을 겨눴다. <역사비평>118호는 재야 사학의 변질된 일부 ‘사이비 역사학’이 자주 논거로 기댔던 ‘僞史-僞書’ 문제에 집중했다. <오늘의 문예비평>104호는 ‘혐오스러운 노동자’를 특집으로 내걸면서 진열을 다졌다. 

‘촛불혁명, 전환의 시작’을 다룬 <창비> 봄호에는 세 편의 글이 실렸다. 「‘촛불’의 새세상 만들기와 남북관계」(백낙청), 「기로에 선 세계경제와 우리의 선택」(유철규), 「민주주의는 어떤 ‘기분’인가: 김금희와 황정은의 최근 소설들」(황정아). 각각의 글 성격은 특집 주제에 포괄될 수 있지만, 백낙청의 글이 정곡에 와 닿는다. 

백낙청은 이번 촛불집회가 기존의 어떤 혁명이나 항쟁과도 다른 새로운 시민혁명이라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그것을 ‘촛불혁명’으로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평화시위를 집단지성의 전략적 선택으로 파악하며, 세계사에 유례없는 평화적 혁명으로 새세상 만들기를 희망한다. 분단상황의 인식에 바탕해 한반도·동아시아의 평화를 도모하며, 박정희 모델의 극복과 이면헌법의 폐지로 새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특히, 촛불의 세계사적 의의를 평가한 부분은 경청할만하다. 

“민주주의 퇴보 속에 대세 거스른 시민혁명”

“2016~2017년 한국의 촛불혁명에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세계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시기에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소련과 동유럽의 독재정권들이 무너지던 대세를 탄 ‘벨벳혁명’이나 6월항쟁 등 일련의 변화와는 대조적이다. 그때 이후 자본주의 세계체제는 기후변화를 비롯한 생태계의 위기가 더욱 심화된 한편, 세계적인 자본 과잉, 인공지능·자동기기 등의 획기적 발전에 의한 일자리의 경향적 축소, 국제질서를 관리하던 국가간체제의 쇠락에 따른 국지전의 증대와 난민의 대량 발생 등을 감당할 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이로 인한 대중의 불만은 더러 ‘점령하라(Occupy)’  같은 민주적 개혁운동을 낳기도 하지만,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이나 유럽에서의 극우 정당 득세에서 보듯 파시즘에 가까운 형태를 띠기 일쑤인데, 바로 그런 대세를 거스른 시민혁명이 한국에서 일어난 것이다.”

제때에 얼굴을 내민 <문화과학>이 소문 속에 존재하다 실체를 드러낸 ‘블랙리스트’를 다룬 데는, 이것이야말로 “박근혜 통치 권력의 역사적 유산인 ‘유신 공안정치’의 실체를 가장 분명하고 적나라하게 드러낸 준 것”이기 때문이란 인식이 작동한다. 이들은 지혜롭게도 이 심각한 문제를 ‘문화예술계만의 문제’로 재론하지 않고, “이 언표가 역사적 유신 정치의 징표이자 그 종말을 가장 함축적으로 표상하고 있”다는 것을 좀더 정치하게 분석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유신의 공안정치가 지금까지 지속되는 동안 노동자, 농민, 빈민, 학술연구자, 진보적 정당 정치인의 신체에 낙인찍은 인장이다. 지금 탄핵 국면에서 우리가 상대할 것은 형식적인 정권교체만이 아니라 우리를 낙인찍은 블랙리스트 유신정치 그 자체다.” 

이 특집에는 「블랙리스트와 유신의 종말」(이동연), 「블랙리스트와 예술검열 실태 분석: MB정부에서 박근혜 정부까지」(강정석), 「현대 한국 검열의 계보학: 박정희 정권 시기의 검열과 문예진흥정책을 중심으로」(천정환), 「박근혜 정부 문화융성정책의 실체와 문제점」(박소현), 「블랙리스트 예술검열에 저항하는 예술운동의 실천과 전망」(이원재) 등 다섯 편의 글을 담았다. 특히 이동연은 블랙리스트가 형성되는 시간 계열과 블랙리스트의 전달체계를 분석하면서 역사적 히스테리의 산물인 블랙리스트가 역설적이게도 유신의 종말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말한다. 강정석 역시 흥미로운 분석을 전개했다. 그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이론을 언급하면서 가치중립적인 듯한 관료주의의 언어들 속에는 정치적 책임에서 벗어나려 하는 관료들의 ‘악의 사회성’이 깃들어 있다고 비판한다.

인천의 새얼문화재단이 발행하는 <황해문화>가 들고나온 특집은 사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에 논의된 것이었다. 이들의 말을 들어보자. “처음의 문제의식은 아주 단순했다. 인문학 강좌가 이 사회를 유행처럼 온통 뒤덮고 있는 데도 왜 이사회는 좀더 나아지지 않는가. 왜 이 사회의 모습은 더불어 사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는커녕 오히려 퇴보하는 것인가. 결국 이런 의문이 여전히 학문과 지식이 구성되는 주된 장소로 간주되는 대학의 위기, 그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는 지식인의 빈곤 등 진부한 것처럼 보이지만 놓을 수 없는 문제들과 연결되면서 전체적인 특집의 상이 만들어졌다.” 이 와중에 이들은 ‘광장의 촛불’이 구성되는 동안, 충청북도에서 왔다는 중년을 넘긴 한 여성 청중의 질문에 자극을 받았다. 교수들이 적지 않게 ‘국정 농단’ 사태에 연루돼 있다는 것, 어떻게 교수들마저 타락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황해문화>가 오래된 주제인 ‘지식인과 대중’의 관계를 다시 따지는 특집에 손댄 것은 이 때문이다.

특집에는 「지식의 식민주의로부터 어떻게 벗어날까: ‘우리가 아는 세계’의 전환」(차승기), 「대학의 상업화와 학문·지식의 사유화」(배성인), 「학술논문 국가관리체제와 지성·지식의 소외」(김영수), 「문제는 교양이 아니다: 대중인문학과 교양의 사유화」(박권일), 「증오, 폭력, 고발: 반지성주의적 지성의 시대」(서동진) 등의 글이 묶였다. 

특집은 아니지만, 꼭 일독할 글이 하나 있다. 원로정치학자인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가 기고한 글 「한국 사회과학 발전에 관하 하나의 숙고: 학문레짐의 자율성과 학문자유를 향하여」다. “오늘의 학문레짐이 국가권력에 대해 그 자율성을 상실하게 된 것은 민주주의가 만들어낸 엄중한 부정적 문제로 이해된다. 따라서 민주주의는 그것이 창출한 문제를 해결해야 할 과제를 떠맡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제 그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최대 과제로 나타났다. 이 과제를 위해 가장 중요한 문제는 한국사회에서 자유의 가치를 뿌리내리도록 하는 노력이다.”

“이승만 박정희 시대 실증적 연구 다시 시작해야”

특집 ‘위사와 위서’를, 그리고 연속기획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을 마련한 <역사비평> 봄호의 문제의식은 박태균이 쓴 「책머리에」에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지난 30년간 계속된 1987년 체제가 그 끝을 향해서 가고 있다면, 역사학계도 이제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장기적으로는 1987년 체제의 문제를 해결하고 뛰어넘기 위해서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 시간 동안 넋 놓고 쳐다만 볼 수는 없다. 이제 그 이후를 준비해야 할 때다. 어디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가? 우선 자성이 필요할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국정교과서와 같은 소모적인 논쟁이 다시 시작됐는가? 둘째로 2000년까지 진행됐다가 멈춘 논쟁도 이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셋째로 이승만 박정희 시대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체계적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진영 논리나 정치 논리로 성급하게 평가하고 재단했던 방식에서 이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후 새롭게 시작될 사회에서 역사학이 어떻게 공헌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특집에 실린 글은 「‘고대사파동’과 식민주의 사학의 망령」(조인성), 「『환단고기』의 성립 배경과 기원』(이문영), 「‘벨레스서’로 본 러시아의 위서와 21세기 유라시아 역사분쟁」(강인욱), 「위서 비판에서 위서 연구로: 일본 위서의 검토 및 한국 위서와의 비교」(김시덕), 「위서(僞書)를 말하다」(박지현) 등이다. 연속기획 「‘과학대통령 박정희’라는 신화?」에는 「박정희 정부 시기 과학기술을 어떻게 볼 것인가?」(김근배), 「최형섭과 ‘한구형 발전모델’의 기원」(임재윤·최형섭) 두 글이 묶였다.

‘노동자 혐오’를 특집에 다룬 <오늘의 문예비평> 봄호는 ‘다시, 창간하는 마음으로’라는 다짐을 던지고 있다. 재정난에 시달려왔던 <오늘의 문예비평>봄호는 이달 중순께나 얼굴을 내밀 것이다. 출판사가 바뀌었다. 산지니가 아니라 ‘도서출판 오문비’다. 사연이 깊어 보인다. 이건 다른 지면이 필요할 듯하다. ‘지역 공공재’로서의 자기 인식이 확고한 <오늘의 문예비평>은 의외의, 그러나 깊이 경청해야할 문제의식을 하나 제기한다. “새로운 정치를 모색하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노동문제가 등한시되고 있다!”라고 이들은 말한다. “오늘날의 정치상황을 낳게 한 정치적 무의식은 노동과 노동자 문제에 대한 재검토가 이뤄지지 않는 한 드러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만큼 작금의 노동자 혐오 현상은 분석과 진단이 요청되는 상황이라 하겠다.” 

이런 문제의식에 마련된 특집에는 「거울 속의 타자, 노동자」(장귀연), 「나쁜 노동자는 늙지도 않는다」(엄상준), 「노동시의 반격: 노동 혐오의 정치경제학 비판」(박형준) 등이 실렸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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