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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세계’를 향한 작가의 지향과 그 파탄 과정까지 해석
‘새로운 세계’를 향한 작가의 지향과 그 파탄 과정까지 해석
  • 교수신문
  • 승인 2017.03.2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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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김사량과 일제 말 식민지문학』 곽형덕 지음 | 소명출판 | 543쪽 | 38,000원
김사량 문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해 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석사 1학년 무렵(2006년)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훌쩍 지났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에서 김사량으로의 전환은 대학원 세미나를 거듭하면서 더 공고해졌다. 김사량과 장혁주의 일본어 소설을 대학원 세미나에서 다뤘을 때, 조선인 작가들의 일본어 소설은 인지상정 나를 사로잡았다. 일본에서 나온 『김사량전집』을 읽으며 ‘고향’과 ‘어머니’에 대한 글에 감동하기도 했고, 첨예한 현실 인식과 대처를 보면서 감탄했으며, 그의 최후에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었다. “나라에 돌아감에 우리는 무 논리다”라고 했던 김사량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와 조건은 많이 다르지만 이국땅에 와있다는 감정의 뼈아픈 반영이었을 것이다.

그로부터 김사량을 촘촘하게 읽으며 내가 찾은 것은 ‘민족작가’라거나 ‘항일작가’라는 수식어 등이 풍기는 결연한 모습이라기보다는 고뇌와 좌절을 안고서 문학으로 시대를 과감하게 헤쳐나가는 청년의 모습이었다. 그런 모습은 그가 1941년에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될지 지구가 어떻게 될지 우주가 어떻게 될지 도저히 알 수 없을 것 같아. 그래도 자네의 문학이 우리들의 문학만이 더욱 위대한 시련의 꽃을 피울 수 있지 않겠나”라고 가장 친하게 지냈던 일본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모습은 평양고보에서 학내 스트라이크를 일으켜서 퇴학을 당한 후 사가고등학교를 입학할 무렵에 현해탄 저편이 ‘천국처럼 느껴’졌다는 절실함에 그대로 드러난다. 물론 이는 사가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고뇌를 안 사람이다”라는 구절에도 잘 드러나 있듯이 복잡한 인식으로 전환해 갔다.
 
‘작가론적’ 접근으로 구체적인 작가상 포착
이 책은 김사량의 작가상을 일원화해 정립하는 것보다는 구체적으로 포착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민족작가’나 ‘항일작가’, ‘반식민주의 작가’ 등의 레테르가 김사량에게 붙어 있지만, 결과론적인 규정보다는 그에 이르는 과정(디테일)이야말로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선행 연구가 흘리거나 떨어뜨린 이삭을 줍는 방법론을 택하고 있다.

김사량 문학은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어와 일본어로 창작됐고, 해방된 이후에는 평양에서 조선어로 창작되면서 한국문학사 뿐만이 아니라, 일본문학사, 그리고 북한문학사에도 포함되는 등의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김사량의 작가상이 쉽게 포착되지 않는 이유는 그와 관련된 사진 자료 등이 거의 전무한 것뿐만이 아니라, 그의 문학이 어느 문학사 안에도 흔들림 없이 포함될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조선어와 일본어로 양분된 창작과, 지역적으로는 평양, 경성, 규슈, 도쿄, 가마쿠라, 베이징, 태항산 등 동아시아에 걸친 활동영역은 그의 문학의 내실을 바꾼 함수들이다. 그렇게 본다면 김사량의 문학 활동은 초기 습작기라 할 수 있는 1930년대 초반에서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전개한 1940년 전후, 그리고 조선으로 송환된 1942년 이후에서 중국 망명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폭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물론 그 안에서 고향/식민지에 대한 끝없는 애착과 하위주체(subaltern)에 대한 휴머니즘에 입각한 ‘同憂者’ 의식이라는 공통항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토성랑」(1936)에서 『노마만리: 연안망명기1-9』(1946-1947)에 이르는 10년 사이의 변화는 격변기에 걸맞게 격렬했다.

이러한 김사량의 작가상을 포착하고 그가 남긴 작품을 체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박하기는 하지만, 문학연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작가론’적인 접근이 유효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낭만주의적으로 초월적 개인(천재)을 칭송하기 위함이라기보다는, 한 시대와 정면으로 대결한 작가(인간)의 삶과 문학을 수평적으로 들여다보기 위해서다. 미셸 푸코가 정의하고 있는 것처럼 작가를 어떠한 언설(discourse)의 양태를 특징짓는 존재로 놓고 볼 때, 작가가 시대와 고투하며 산출해 낸 언설에 이르는 과정을 탐구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재일조선인문학가들이 편집한 『김사량 전집1-4』(김석범·김달수·김시종·임전혜 편)과 『김사량 평전』(안우식 지음, 심원섭 옮김)은 언설만이 아니라, 그러한 언설에 이르는 과정에 집중한 저작물이다. 남과 북 양쪽에게 이해받지 못 하던 재일조선인작가들이 당시만 해도 양쪽 모두에서 금기였던 김사량문학을 ‘복원’하려 했던 것은 유일사상을 거부하고 문학의 자율성을 증명하려는 것임과 동시에, 자신들과 유사한 상황 하에서 문학의 꽃을 피운 김사량 문학을 典範으로 삼아서 시대를 돌파하려 했던 의지의 표명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해방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의 재일조선인문학과 김사량 문학은 불가분의 관계였다. 『김사량 평전』은 1970년대 일본 사회를 살아가는 재일조선인 안우식의 사상성이 농후하게 반영된 책이지만, 일본에서 김사량의 작가상을 정립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 중에서도 김사량과 관련된 많은 자료를 섭렵하고 녹여냈다는 점에서 현재 김사량 문학 연구의 토양을 제공한 소중한 논고라 할 수 있다.

김사량의 작가상을 포착해 내는 것과 함께 집중한 부분은 김사량 문학을 일제 말 일본문단의 흐름 안에서 읽어내는 것과, 김사량 작품의 개작 과정(조선어와 일본어)을 면밀히 검토하는 것, 그리고 해방 이후의 김사량 작품을 내 나름의 시각으로 위치 짓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목표로 삼은 것은 작가상의 포착과 개작 과정 연구라 해도 좋을 것이다. 전자는 김사량의 작품 중 아직 소개되지 못한 자료를 도서관 등에서 찾아내는 것과 그의 발자취를 최대한 따라가는 것에 집중했기에 보이는 성과보다는 훨씬 많은 시간을 필요로 했다. 후자는 김사량문학에 관해 100편을 훌쩍 넘기는 선행 연구가 이뤄졌음에도 개작 과정에 대한 연구가 거의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촉발된 것이다. 식민지 조선이 다이글로시아(Diglossia, 사회적 차원에서의 이언어二/異言語 사용 구분) 언어 환경이었음을 감안한다면 김사량문학의 개작 과정은 조선어에서 일본어로의 직선적인 번역 과정이 아니라, 문예 미디어나 독자와의 상호 관계 속에서 창출된 것이다. 그렇기에 언어에 따라서 각기 달라지는 용어 선택(창작 전략)을 찾아내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분석했다. 이러한 방법론을 통해서 이 책은 김사량이 일본 제국과 고향/식민지 사이에서 했던 고뇌, 그리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작가의 지향과 그 파탄 과정을 최대한 1차 자료에 근거해 해석했다. 하지만, 김사량문학의 해학과 풍자를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것과, 해방 이후 북한에서 발표한 전 작품을 아직 분석하지 못 했다는 한계를 지적해두지 않을 수 없다. 그 시기까지를 다 검토해야지만 온전한 김사량문학론은 ‘완결’된다고 할 수 있다.
 
‘냉전적 사고’ 넘어서야 온전한 이해 가능
일제 말, 김사량은 세계대전이 확산돼 가는 가운데 조선과 일본만이 아니라 중국과 관련된 문제를 진지하게 사유했다. 김사량은 이를 편협한 민족주의라는 범주에서 논의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대면서 일본 제국주의의 불합리한 정책을 상대화해 비판했다. 이는 김사량의 중국 망명의 내적 동인이 되기도 했다. 망명기에 쓴 문학에 조중연대를 바탕으로 반제국주의적인 시각에 입각해 세계를 인식하고 있는 것은 이를 극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는 ‘해방’ 이후 김사량이 북한의 체제에 입각한 통일론으로 나아간 사상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적 경향은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김사량 문학에 대한 온전한 이해를 가로막는 요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구도로서의 동서 ‘냉전’은 종식됐다고 하지만, 냉전적 사고방식이 의식을 옥죄고 있는 이 땅에서 김사량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남북 사이의 평화 체제가 확립되고, 남과 북을 사람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는 날 김사량 문학은 남과 북 모두에서 ‘냉전적 사고’를 넘어 이해될 날이 올 것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이뤄져 온 김사량 문학 연구의 성과를 자양분으로 삼아 나온 이 책이 앞으로 계속 이어질 연구에 작은 디딤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곽형덕 카이스트 연구교수·일문학
필자는 와세다대 문학연구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근대 일본문학 속의 ‘타자’라 할 수 있는 재일조선인문학과 오키나와문학과 관련해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아쿠타가와의 중국기행』, 『장편시집 니이가타』, 『긴네무 집』, 『김사량, 작품과 연구1-5』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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