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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주도적 자본주의 축적체제가 초래한 한국의 변화
금융주도적 자본주의 축적체제가 초래한 한국의 변화
  • 임운택 계명대.사회학
  • 승인 2017.02.16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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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전환시대의 논리: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중위기 속의 한국사회』 임운택 지음 | 논형 | 768쪽 | 33,000원

전 세계적으로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지이자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념적 기수 역할을 하는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는 ‘민주주의는 왜 실패했는가?’라는 주제를 2014년 3월 1일자 표지기사로 다루면서 세계 도처에서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협과 도전에 직면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이 기사에서 신자유주의의 정론지답게 ‘작은 국가’와 정부권한의 규제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센스를 잊지 않고 있지만, 현재의 민주주의의 위기가 자본주의의 위기(금융위기), 그리고 이러한 위기를 초래하고 관리하는 테크노크라트들의 정치적 영향력의 증대와 긴밀한 관계 속에 있음을 인지했다는 점에서 시사적이다.

냉전이 종식된 이후 자본주의의 전반적 위기는 다시 ‘체제의 내부’에서 발생하고 있다. 2008년 대침체(great recession)는 금융시장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심연을 보여주었다.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 경제위기로 인해 중산층이 일자리에서 쫓겨났고 이들의 삶이 붕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벌) 대기업과 투자기관의 수익은 오히려 비약적으로 상승했으며, 이들의 탐욕은 멈추지 않고 있다. 화폐자본이 유가증권의 형태로 실물경제를 대체하면서 증식될 수 있다는 물신주의적 생각은 거품만 만들어냈으며, 이는 국민경제의 근간을 심각하게 훼손했다. 국가의 적극적인 구제금융조치를 통해서 겨우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지만, 정당, 노조, 시민운동단체와 같은 사회조직들이 금융시장을 제어하지 못하면서 근대의 주체는 스스로 자신의 저항과 행위력을 신뢰하지도 못하면서 노동, 정치, 교육에서 더 많은 자기책임을 강요받고 있다. 사회의 자율적 공간이 축소되고,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는 주된 원인은 ‘사회의 광범위한 경제화’에 있다.

 

FTA를비롯한각종신자유주의 정책의설계자는유감스럽게도 이세대의엘리트관료와 대학교수들로, 이들전문가집단은 “자신이제공하는서비스에대한 필요의창조자로서사제의역할” (이반일리치)을수행하면서 신자유주의의기능적지식인으로 전락했다. 

 

이 책은 한국사회의 변화와 발전 동력을 이와 같은 국제정치경제학적 배경에서 파악하려는 정치사회학적 연구로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한 성찰의 결과물이다. 첫째, 한국사회의 발전을 세계사회 혹은 국제정치경제의 발전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둘째, 비판적 사회이론은 이러한 발전에 어떤 대안의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까? 첫 번째 질문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발전의 문제를 경로의존성의 논리(한국사회의 사회경제적, 정치적 특수성)에서 벗어나 전지구적 자본주의 발전의 보편성, 즉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중위기’ 속에서 파악하려는 문제의식이며, 두 번째 질문은 이러한 이중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대안적 담론의 논리를 모색하려는 시도이다.

21세기의 한국사회는 여타 자본주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19세기말 격동의 시기에 비견될 만큼 거대한 전환의 기로에 서있다. 한편으로는 디지털화로 대변되는 기술의 비약적 발전, 생산과 자본시장의 네트워크화, 글로벌 수준에서의 사회화(Vergesellschaftung)가 진행되고 있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빈부격차의 심화, 노동시장에서 상당수의 생계노동자들이 배제(노동의 프레카리아트화)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민국가의 권한이 이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화되는 반면, 초국가적 정치형태(글로벌 거버넌스)의 영향력은 강력해지고 있다. 필자는 오늘날 이러한 변화가 무엇보다 금융주도적 자본주의의 축적체제와 이 체제의 위기에서 발생한다고 보고 이러한 축적체제를 동반한 새로운 근대화의 동력이 기존의 규범적 사회과학이 근거했던 사회경제적 조건(포디즘적 축적체제와 민주적 자본주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에서 변화의 총체성을 ‘전환시대의 논리’라는 이름으로 파악하고자 했다. 전환시대는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전환(transformation)을 의미하지만, 칼 폴라니의 ‘이중운동(double movement)’개념을 빌어서 말하자면 사회제도와 정치체제의 전환도 포함된다.

이중운동으로서 자본주의 전환의 논리는 냉전 이후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공존(포디즘적 축적체제에서 민주적 자본주의)이 오늘날 점차 결별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필자는 콜린 크라우치(Colin Crouch)의 ‘포스트 민주주의’ 혹은 볼프강 슈트렉(Wolfgang Streeck)의 ‘민주적 자본주의의 위기’ 테제의 연장선에서 국내외에서 목격되는 민주주의의 위기가 비록 국가별 양상은 다를지라도 기본적으로 자본주의의 위기, 그리고 이를 관리하려는 자본주의의 권위적 발전경향 속에서 보편적 특성을 지닌 것으로 파악한다. 필자는 이를 ‘민주적 자본주의’로부터 ‘권위적 자본주의’로의 전환으로 분석한다.

신자유주의와 함께 가속화된 금융자본 주도적 축적체제는 탈산업화(제조산업의 서비스화), 생산기지이전, 노동의 디지털화를 통해 노조권력 혹은 진보정당의 약화를 초래했으며, 무엇보다 노동시장에서 생계노동자들을 점차 배제함으로써 민주주의의 ‘보편주의적 핵심세력’(하버마스)을 해체시키고 있다. 이로써 사회는 점점 더 소수자를 억압하는 엘리트 민주주의의 방향으로 발전하게 됐다. 승자는 사회적 책임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고, 사회적 몰락을 위협받게 되는 계층은 하위계층의 최하위층을 배격함으로써 자신의 위안을 추구한다. 사회적 배제는 이제 노동자 권리를 위한 역사적 투쟁의 최종적 결과로서 등장한 민주주의의 기반을 침식해가고 있다. 이른바 ‘민주화세대’로 대변되는 80년대의 학생운동세대(협의의 운동권 세대를 넘어선 광의의 80년대 세대)는 서구의 68학생운동에 비견되는 사회적 문화혁명도, 노동과 지식인의 연대도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채 엘리트화된 이 세대 지식인의 일부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기술자로 재등장했다. FTA를 비롯한 각종 신자유주의 정책의 설계자는 유감스럽게도 이 세대의 엘리트 관료와 대학교수들로, 이들 전문가집단은 “자신이 제공하는 서비스에 대한 필요의 창조자로서 사제의 역할”(이반 일리치)을 수행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기능적 지식인으로 전락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촛불혁명을 촉발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서도 재확인되고 있다.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이중위기에 대한 비판적 사회이론의 전망과 관련해 필자는 두 가지 측면에서 대안을 모색하려고 했다. 우선, 현재의 권위적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사회경제 체제를 지향하는 새로운 자본주의의 전환 논리를 탐색하는 것이다. 대안적 사회경제 체제에 대한 논의는 오늘날 더 이상 진보정치만의 고유한 콘텐츠가 아니다. 2008년 경제위기를 극복하려는 시도 속에서 한때 신자유주의를 추동했던 국제기구 혹은 주요국가에서 조차 ‘지속가능한 사회’, ‘공정무역’, ‘생태친화적 경제’, ‘산업 4.0’ 등의 이름으로 대안적 경제체제가 논의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는 권위적 신자유주의, 금융주도적 축적제체를 탈피하는 보다 급진적인 ‘사회생태친화적’ 경제체제의 가능성을 탐색하려고 했다.

또 하나의 시도는 비판적 사회이론의 전망이다. 1980년대부터 한동안 비판사회과학의 이름으로 주류 사회(과)학의 요새를 뒤흔들었던 마르크시즘은 오늘날 실천적 담론뿐만 아니라 학술적 담론에서 조차 소수로 전락하고, 기껏해야 스티글리츠, 샌더스, 코빈의 영웅적 레토릭에 수줍은 희망을 품어야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이는 최소한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마르크시즘이 다시 학술적 담론의 주류로 뛰어든 서구 학술계와도 매우 대조적이다. 필자는 경제성과 마르크스주의의 내재적 방법론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성 개념의 재구성을 시도하고 이에 대한 실천적 영역으로 노동의 프레카리트화, 청년실업문제, 노동의 디지털화에 대한 대안적 지평 등을 모색했다.

임운택 계명대·사회학과

독일 필립스대학교(마부르크)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저서로 『문화, 환경, 탈물질주의 사회정책』(공저), 『현대사회와 베버패러다임』(공저) 등이 있으며, 역서로 『현대사회를 진단한다』(공동번역)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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