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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위기는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문학 위기는 정책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2.12.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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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의 연재로 인문학 위기론의 지난 과정을 되돌아봤다. 대체로 위기론의 비효율적이고 과장된 수사적 측면에 대한 지적이 두드러졌다. 위기론 자체가 추상적 수준에서 전개됐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었고, 생산적인 각론을 위해 총론을 접었다는 진단도 나왔다. 학자들이 한 목소리를 낸 부분이 있다면 제도 인문학의 고질적 모순들이었다. 이 부분에 대한 해결 없이는 위기가 갈수록 심화되리라는 예상이다.

인문학에 대한 제대로 된 정책적 접근의 부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높았다. 이와 관련해 최근 국무총리 산하 인문사회연구회는 1999년부터 추진해온 인문정책 관련 연구의 종합결과물을 내놓았다. 지난 6일 열린 한국정책학회 동계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이종수 한국교육개발원 부연구위원의 ‘한국 인문학문의 위기와 정책적 대응 방향’이란 논문이 그것이다. 여기 실린 정책적 방안들은 그 수준이 매우 구체적이고 목소리도 강렬하다는 점에서 귀기울여 볼 만하다.

먼저 쇠퇴와 그 원인분석. 필자는 인문학 쇠퇴의 사회적 결과를 △학문의 자생적 발전능력이 확보되지 못한 채 학문의 대외 종속성 심화 △민족 정체성의 보존과 계승의 문제점 △사회의 규범적 토대 붕괴와 공동체의 유대의 단절 △창조적 능력과 새로운 산업분야의 경쟁력 저하 등 네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이의 원인으로는 △전통적 가치관의 몰락과 서구의 실용주의 및 물질주의의 지배 △중등교육에서 인문교육의 취약 △대학교육 목적의 실용화와 인문학 교육의 위기 증대 △학부제 실시에 따른 전공선택의 편중 △응용학문 분야와 기초학문 분야의 단계적 체계의 미구분 △교양과목 비중의 약화 및 인문학교육분야에 대한 지원 미흡 등으로 나타난다고 정리했다.
인문학의 실태에 대한 종합적 보고가 이어진다. 세계경쟁력연감 등 각종 지표를 통해 한국의 인문경쟁력을 세계 30~50위권으로 추산하면서, 그러한 추계가 인문연구 평가결과와 인문특성화 정책의 부재로 인한 것이라는 잠정 결론을 내리고 있다. 분야별 실태를 보면 첫째, 인문계 인력수요(39%)가 대학의 인력공급율(43%)에 비해 낮고, 인문계 대졸자의 취업확률(46%) 또한 사회(60%), 자연(72%)에 비해 낮다고 제시된다. 둘째, 인문학 관련 학회 및 연구기관의 숫자도 비교 열세에 놓여있다. 학회는 4백27개로 사회부문 4백86개보다 뒤지며, 국립국어연구원, 국사편찬위원회 등 인문학 관련 8개 연구기관 중 인문정책 연구기관은 전무하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셋째, 정부 지원 부분에서 학술진흥재단이 2001년 사업부터 인문사회와 자연계열 지원비율을 5:5로 재조정하긴 했지만, 인문분야 20%, 사회분야 30%, 자연계열 50% 내외로 배분돼, 연구자 및 학과별 수와 대비해 불균형적이라고 문제제기했다. 또한 앞으로 3년간 3천여억원을 한시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일시적인 대증요법적 접근이라며 한계를 지적했다.
이런 분석을 바탕으로 이종수 연구위원은 정확한 현실진단을 통한 장기적인 정책적 대안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즉, ‘코리아 휴매니티즈2012(Korea Humanities 2012)’(가칭)라는 인문학 장기육성 계획을 입안 추진해 인문정책과제 개발과 정책연구 지원사업의 점진적 확대를 꾀하고, 인문학연구자와 소비자의 창출 시스템을 제도화하자는 것이다. 이것의 기대 효과로는 인문학과 주변학문간 연계체계의 강화를 유도해 인문학의 실용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 연구지원사업과 인문학술행사 지원을 통해 국민적인 관심을 제고할 수 있다는 점이 제시되고 있다.

프로젝트의 구체적 내용으로는 △학제적 연구기반 강화와 인력의 양성을 위해 학과이기주의 및 정부부처이기주의를 극복하고, 동일계열의 학점인정과 정부연구개별체제의 통합관리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감성개발 프로그램의 연구가 활성화돼야 한다. 고전과 자국 고유문화의 유용성, 재생적 측면과 현대 문화와의 조화적 측면 개발할 필요가 있다 △인문학의 사회적 요구 수용 시스템의 개발과 파급효과 분석, 학술문화 향수 경향, 문화 참여, 정서문화, 교양학부 진학비율, 범죄율과의 관계, 생활만족도의 증가여부, 도시질서와 자율성 정도 측정 등의 작업을 수행해야 한다 △한국문화 및 한국인문학 원류 규명작업으로 문화원형 콘텐츠화사업 소스를 제공하는 작업이 요구된다 △인문학의 소프트웨어 측면으로서 교과과정의 개편이 필요한데, 국제인력 양성을 위한 다국어 교육의 강화, 특히 한국문학의 해외번역소개를 위한 교육지원체제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 △디지털 인문학제연구원의 설치인데, 핵심적인 사항은 문화콘텐츠의 주요 내용을 이루는 음악, 방송, 게임, 캐릭터, 애니메이션, 영화, 출판 등의 소재가 중요하다는 내용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이상의 정책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법으로 ‘인문학진흥법’을 제정하고 △인문진흥기금 확보와 인문정책연구원을 설립하며 △인문학연구소 중점 지원 강화 및 한국인문지원재단을 설립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울러 이에 대한 과도기적 접근으로 영국 AHRB(인문·예술학문분야 지원을 위한 임시위원회)에 대한 벤치마킹을 제안했다.
정책적 대안이 인문학 위기의 모든 것을 해소해 줄 수는 없어도, 그를 향한 가장 기본적인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 이번 연구결과는 좀더 많은 전문가들의 논의를 거쳐 가능한 부분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연합체가 구성돼 입법화 추진에 나서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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