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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로컬’ … 전통으로의 귀환이 향하는 곳은?
결국엔 ‘로컬’ … 전통으로의 귀환이 향하는 곳은?
  • 장세룡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부교수
  • 승인 2017.01.25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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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글로벌 모더니티: 자본주의 시대의 근대성』 아리프 딜릭 지음 ┃ 장세룡 지음 ┃ 에코리브르 ┃ 254쪽 ┃ 16,000원
우리는 지난해 신자유주의 전지구화의 발안자이고 첨병인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탈퇴하는 ‘브렉시트’와 미국에서 보호무역을 강조하는 트럼프가 당선되면서 신자유주의의 이름으로 관통된 자본의 절대지배에 반대하며 인류의 공생을 모색하는 반세계화가 아니라, 자국 중심주의에 인종주의까지도 가세한 우익 반세계화의 승리를 목격한다. 그들은, 우리 민중들이 세계화의 물결에 휩쓸려 큰 고통을 겪었는데 도리어 자신들이 손해를 보았다고 으름장을 부리니 참으로 뜬금없이 가혹한 현실이다.  이 현실은 어디서 비롯한 것일까. 마침 국내에 번역본 『포스트모더니티의 역사들: 유산과 프로젝트로서의 과거』,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눈뜨기』로 잘 알려진 아리프 딜릭의 이 책은 서구의 사회과학자나 문화비평가들과는 결이 다르게 아시아 출신이며 아시아 전공 역사가의 입장에서 전지구화를 설명하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현대 중국사를 호출해 설명과 분석을 제공하며 대안을 모색하기에 흥미롭다. 그는 전지구화는 근대 식민주의와 함께 시작됐다가 이미 절정에 도달해 쇠퇴 단계에 돌입했고 그 개념 자체가 유로-아메리카 중심주의의 형성과 붕괴의 산물이란 이중성을 함축한다는 도발적 진단으로 현실을 재성찰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 책에서 딜릭은 지식 세계에서 첨예한 논쟁의 대상인 전 지구화, 초국적주의, 트랜스로컬리티, 국민국가 심지어 지역-국민국가 개념을 정리하고, 이들 개념을 적용할 대상으로서 도시 공간과 장소의 위상을 검토한다. 그 전제는 이것이다. 첫째, 전 지구적 시장과 전 지구적 소비사회가 사회발전과 민주주의를 빙자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일상적 상해를 입히는 경제적·문화적·정치적 폭력을 자행한 결과 민주주의와 사회정의는 물론 삶과 생계 조건 자체를 파멸로 이끈다. 둘째, 전 지구적 근대성은 생성과 구성 양식에서 식민지 근대성 개념과 밀접한 관계다. 딜릭은 전지구화를 자본주의의 문제로 다룬 데이비드 하비나 프레드릭 제임슨 등과는 다른 맥락에서 근대성 형성에 일정하게 기여한 식민지 근대성 문제가 여전히 당면 해결과제라고 부각시킨다. 그리고 국가와 자본의 식민주의에 맞서는 투쟁의 전지구적 확산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이 책의 지향점은 바로 이것이다. 그는 식민주의 개념이 민족해방 투쟁을 강조했지만 실제로는 근대국가 개념과 너무 밀접하게 결합하면서 국가주의 정당화에 동원됐고, 식민지 근대성론이 식민지를 근대 역사의 탈선이 아닌 정상 궤도로 수용하는 오류를 자행한다고 비판한다.
 
식민지 근대성론 비판과 제3의 선택지
그러면 제3의 선택지가 있는가. 전망이 모호한 상황이 사회정의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계속된 투쟁 문제에 중요한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당면 과제를 해결할 전망은 밝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현재의 학술세계와 지적 세계를 형성하는 우리 자신의 지적·제도적 맥락들 자체가 기본적으로 식민지 근대성의 수혜자이며 구성 요소인 탓이다. 딜릭이 호미 바바를 비롯한 탈식민주의 논의가 변절한 문화주의자들의 행보라고 신랄하게 비판한 이유가 여기 있다. 예컨대 소수자와 타자의 관용을 강조하고 식민주의를 교정하는 수단으로 보이는 탈식민 전지구화와 디아스포라적 혼종화의 전망도 사실은 식민주의의 유산을 크게 수용해 전제로 삼는다. 그 결과 전 지구적인 정치적·이념적 쟁점으로서 식민지 근대성과 대적할 필요성은 물론 역량이 약화되는 난관에 직면할 가능성에 직면한다. 따라서 많은 이들의 투쟁을 추동하는 공포와 희망을 파악하기 어렵다. 현재의 지적 세계가 반식민적 투쟁을 성취하는 데 실패할 것이라는 우울한 진단도 떠오른다.

이 책에서 딜릭은 탈근대주의나 탈식민주의 담론을 평가할 때 서구의 지적 생산물인 여러 개념들을 일정하게 ‘낯설게’하며 재점검하고 원용한다. 탈근대주의의 경우 유럽중심주의 근대성의 서사와 담론을 급진적으로 비판했지만 사실은 그것도 ‘정체성의 정치’에 기반을 둔 지극히 서구적 현상의 하나일 뿐, 근대성과 자본주의를 혼동하는 탈역사적 재현 방식에 다름 아니다. 그 결과 불평등한 권력관계에 이데올로기 구실을 하며 유럽중심주의를 비롯한 기존 질서 유지에 기여하고 사회적 실천에 무관심을 확산시킨다. 딜릭이 거의 혐오하는 수준인 탈식민주의 담론의 경우 정치경제학적 의제를 문화나 언어 및 표상이라는 이름으로 패권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지워버린다. 그 결과 호미 바바 식의 탈식민성은 방법론으로 추상화돼 식민지 관련 논의 자체와는 거의 무관하게 됐다. 심지어 탈식민주의 비평에는 기존의 전 지구적 질서를 공고화하는 ‘반혁명’ 부역의 혐의까지도 발견한다.

주목할 점은 딜릭이 근대성과 탈근대성, 전 지구화와 로컬화 문제를 천착하면서 전지구화에 실천적 저항과 대안을 모색하는 비판적 공간이론을 데이비드 하비 등의 저술을 원용하며 제시한 것이다. 그는 탈근대성 개념의 역사를 검토하면서 역사학의 새로운 방향으로 탈중심화된 복수의 ‘역사들(histories)’을 모색할 필요성을 성찰하고 전 지구화가 호출한 로컬(local)이 전지구화-국가-로컬의 관계에서 변화하는 양상에 주목했다. 특히 전지구화에 맞서 토착주의와 ‘장소를 기반으로 한 사회운동’, ‘아래로부터의 전 지구화’의 가능성을 점검하면서 로컬에서 전개되는 ‘장소의 정치’(place-based politics)로서 사회운동의 실천적 양상에 관심을 기울였다. 첫째, 이주, 노동, 여성 등 다양한 풀뿌리 사회운동의 실현가능성, 둘째 사회생태 문제에 관심의 환기에 유리한 이 ‘장소’는 결코 폐쇄적인 독자 생존 공동체가 아니라 상호협조가 실현되는 개방된 공간이다. 과거에 불평등과 압박이 자행된 장소로 한정되지 않고 근대성이 작동해온 모든 지역들이며, 자본주의 근대성이 침투 못한 잔여 영역이 아니라, 자본주의 작동 공간에 위치하면서도 전 지구화의 장밋빛 전망에 맞서 일상적인 삶의 우선권을 재확인하는 민주적 대안 공간이다. 이것은  로컬을 인간의 가치가 새롭게 긍정되는 토대로서 ‘주체적인 공간 생산의 장’으로 호출한 것이다.

그러나 아시아에서 유럽중심주의적인 전 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선 대항 전략으로서 로컬의 전략적 가치를 강조한 것은 ‘전통으로의 귀환’을 출현시켰다. 중국에서 공자, 서아시아에서 이슬람, 인도에서 힌두교가 박물관에서 걸어 나왔다. 딜릭은 이것을 사회적 맥락과 이념적 주장에 의존하는 로컬적 활용이긴 하지만, 동일한 세계 상황의 산물이며 결코 긍정적 현상은 아니라고 본다. 탈근대주의 및 탈식민주의가 ‘차이의 정치’ 자체만을 목적으로 삼거나, 로컬과 로컬의 연대 혹은 네그리와 하트 식으로 ‘다중’이라고 불리는 민중의 연대를 강조하는 것 역시 전 지구화 된 세상에서 자기식대로 긍정적 가능성을 읽어내려는 ‘독단’에 불과하다. 필요한 것은 총체화하지 않으면서도 ‘다양성 가운데 통일성’을 확보할 세계 인식 방법과 ‘구성적 서사(formative narrative)’의 생성이지만 그것은 딜릭이 지향하는 하나의 정치적 전망에 가깝다는 비판을 받을 여지도 있다.
 
국가의 역할과 민주주의 회복의 긴급성
그럼 국가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딜릭은 국가를 여전히 정당성의 원천이고  제국주의에 맞서는 저항에 중요성을 인정한다. ‘전 지구적 시민사회’ 혹은 ‘디아스포라적 공공 영역’에 관한 많은 추상적 담화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여전히 국가를 준거삼지 않고는 생각할 수 없다. 문제는 국가 건설에서 식민지적 계기와 불가피하게 결합한 것은 민주주의의 기원 바로 그 자체에 치명적 결함을 함축한다. 최근 국민-국가의 식민(계급적) 성격은 국가들이 초국적 자본과 동맹을 맺으며  사회유지 책임을 최소화하고, 자본의 작동(재정, 생산, 노동 및 시장)을 위한 전 지구적 공간의 창조를 추구하며 더욱 악화됐다. 국가는 노동자를 통제력을 상실한 전 지구적 시장에 내던져놓고 초국가적 계급에게 주도권을 제공한다. 딜릭은 예상한다. 고통 받는 시민들은 자본의 이익 안에서 곧 노동예비군에 불과해진 결과 영구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 딜릭은 다시금 탈식민적 국가의 거의 불변하는 식민지적 외양을 폭로하며 급진 정치의 의제에 민주주의 회복의 긴급성을 지적하고 사회적·경제적·환경적 정의를 위한 투쟁을 촉구한다.

이 책 후반에서 딜릭은 현대 중국을 애증을 뒤섞어 조망하고 중국이 과연 전지구화의 대안 견본이 될 수 있는지 광폭의 지적 탐색을 시도했다. 그는 1960년대 문화혁명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대한 열정뿐 아니라 탈식민 해방운동에 대한 열정도 있었고, 제3세계의 대두도 있었지만 그것도 사라진 듯한 현실을 가슴 아프게 인정한다. 현실은 소수 엘리트 수중에 권력과 부가 집중되면서 혁명은 불가능해졌지만, 그래도 생존을 위한 근본적 변혁의 필요성은 여전히 유효하며 사회주의 혁명은 중국 사회의 중요한 부분이며 관련 기억은 아직도 상실되지 않았다고 평가한다. 곧 문화혁명의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어 새로운 전망을 모색할 여지가 충분하다는 자세다.  ‘전 지구적 남반부(Global south)’라는 용어로 제3세계를 새롭게 호명하고 제3세계 해방의 기회를 탐색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딜릭은 사회주의의 몰락과 신자유주의 전 지구화의 압도적 관철을 목격하면서도 서구이론가들과는 또 다른 맥락에서 현실을 제어하고 이상을 지향하며 세계의 재구성과 지도 재작성을 도모하는 실천적 역사가이고 이 책에서 자신의 지향점을 간명하게 정리했다.
 
장세룡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부교수
필자는 영남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에는 「앙리 르페브르의 국가론」, 「기업주의 도시 로컬리티의 타자성-푸코의 통치성 개념과 연관 시켜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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