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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쩌허우 철학과 미학의 체계성을 보여주는 역작
리쩌허우 철학과 미학의 체계성을 보여주는 역작
  • 조송식 조선대·미술학과
  • 승인 2017.01.25 1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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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화하미학(華夏美學): 중국의 전통 미학』 리쩌허우 지음 | 조송식 옮김 | 아카넷 | 495쪽 | 33,000원
“심리 본체가 내포하는 중요한 것은 인성적 감정이다. 그것은 이성이나 자식, 집단에 대한 애정과 같이 생물적 본능에서 오는 자연의 생리를 기초로 한다. 그러나 그것이 인성이 되는 까닭은 바로 그것이 인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의 인생 여정에서 역사적이고 구체적으로 생장하고 배양돼 나타나며 풍부해지고 발전하는 데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와 인생의 여정이 없다면, 바로 인성의 생성과 존재도 없다.” ―본문 중에서
 
『화하미학』(1988)은 유가 사상을 주체로 한 중국의 전통 미학을 논술한 것이다. 기존에 중국의 전통 미학을 다룬 책이 여럿 있지만, 이 책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의미는 매우 강렬하다. 오늘날 동아시아 전통을 연구하거나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과거와 현재 사이의 괴리에서 온다. 전통을 단지 훈고학적으로 접근하거나 현대의 입장에서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구체성이나 현실감이 없어 식상하고 공허해지기 일쑤였다. 리쩌허우(李澤厚)의 『화하미학』은 이 한계를 극복해, 현재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하면서 가장 근원적인 것에 뿌리를 두고 역사적으로 살펴보되, 그의 철학과 미학의 ‘체계성’을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저서다.
 
마르크스·칸트와 만난 ‘주체성 실천철학’
리쩌허우 사상의 ‘체계성’을 이루는 철학적 기초는 주체성 실천철학이다. 이것은 이미 1980년대 이후 중국 현대미학의 흐름을 형성했는데, 마르크스의 ‘실천’과 칸트의 ‘주체성’을 결합한 개념이다. 리쩌허우는 현대 마르크스 발전 과정의 두 가지 오류로 ‘실천론’에서 벗어나 결정론으로 전락하거나 ‘역사유물론’에서 벗어나 객관성이 부재하는 경우를 지적하면서 “역사유물론과 실천성은 하나”라고 지적했다. 리쩌허우에게 “역사유물론이 실천론이다. 실천론이 표출한 주체의 객체에 대한 능동성은 바로 역사유물론에 의해 표출된, 생산력과 생산도구를 상징으로 하는 인간의 객관세계에 대한 정복과 개조다.”

리쩌허우는 칸트의 최대 공적을, 처음으로 인간의 주체성의 문제를 전면적으로 제시했다는 데 있다고 보았다. 다만 칸트의 약점은 주체성의 확립과 신장이 반드시 실천의 기초 위에서 세워져야 함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즉 인류의 생성, 인성, 개인, 자유 등과 같이 인류 총체와 개인의 많은 문제가 선험적 본성이 아니라 ‘전체 세계사의 성과’임을 몰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쩌허우는 마르크스의 실천 관점으로 칸트의 주체성 이론을 풀어내어 인류학적인 입장에서 그의 주체성 개념을 확립했다.

리쩌허우는 이 주체성 실천을 마르크스 『1844년 경제학-철학수고』의 ‘자연의 인간화’를 받아들여 두 가지 측면, 즉 외재적 공예-사회적 구조와 내재적 문화-심리 구조로 새롭게 규정했다. 전자가 물질적인 사회의 역량 혹은 사회적인 물질의 역량으로 인간이 도구와 과학기술을 장악해 생산 활동을 해나가는 현실을 말한다면, 후자는 인류 총체 혹은 역사 전체의 성과로서 존재하며, 이러한 인류 집단적인 사회의식 활동으로서 인간과 동물을 근본적으로 구별함을 말한다. 특히 巫術禮儀, 생산 실천 활동 및 교육을 통해 개인의 심리에 축적된 인류의 문화심리 구조는 ‘이성의 내화(지력 구조)’, ‘이성의 응취(의지 구조)’, ‘이성의 적전(심미 구조)’을 이룬다. 그것은 보편적 형식으로서 인류 집단의 초생물적인 것이며, 개인의 심리로 구체화돼 ‘자유 직관(지)’, ‘자유 의지(선)’, ‘자유 체득(미)’이 된다.
 
‘자연의 인간화 과정’에 따른 미와 심미의 구별
리쩌허우의 미학은 이 주체성 실천미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그는 미와 심미를 인류의 실천 역량의 성과로서 자연의 인간화 과정과 관련해 해석했다. 미를 외재적 자연의 인간화 과정인 공예 구조에, 심미를 내재적 인간화 과정인 심리 구조에 관련시켰다. 미가 인간의 목적과 자연의 법칙에 맞는, 즉 합목적적이며 합법칙적인 형식이라 한다면, 심미는 외재적 인간화에 상응해 그 결과가 마음에 축적돼 형성된 심리구조다. 이 내재적 인간화 과정은 감관을 인간화하고, 정욕을 인간화한다. 따라서 인간의 감정은 인간화된 것으로서, 비록 감성적, 개인적, 생물적인 근원과 생리적인 기초를 가지지만, 그 속에는 이성적인 것이 ‘축적’되어 있고 풍부한 사회적 내용이 담겨 있다.

여기서 특기할 만한 것이 ‘축적[積澱]’이라는 개념이다. 주체성 실천철학의 또 다른 핵심 개념인 축적은 사회적인 것, 이성적인 것, 역사적인 것을 개인적인 것, 감성적인 것, 직관적인 것에 누적하고 침전하는 원리로 ‘자연의 인간화’ 과정을 통해 인류의 역사에서 실현된다. 또한 이 용어는 ‘자연의 인간화’ 과정인 ‘공예사회 구조’와 ‘문화심리 구조’를 서로 연결해주며, 인류의 물질문명의 실현인 ‘외재적 자연의 인간화’에 상응해서 인류의 정신문명의 실현인 ‘내재적 자연의 인간화’의 형성을 설명한다. 이것이 ‘신감성’이다.
 
“중국 전통 미학의 특징은 非디오니소스적인 것”
『화하미학』은 주체성 실천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축적설’의 구체적인 역사다. 『화하미학』은 ‘자연의 인간화’의 성과인 ‘신감성’이 외화된 ‘의미 있는 형식’ 즉 예술이, ‘축적’에 따라 감각의 인간화에 관련되는 ‘형식층(원시 축적)’, 정욕의 인간화와 관련되는 ‘감정층(예술 축적)’, 예술의 형식에 최고의 정신세계가 형성돼 있는 ‘의미층(생활 축적)’을 이룬다고 보았다. 리쩌허우는 『화하미학』에서 형식층을 장자 철학, 감정층을 굴원 전통, 의미층을 선종 사상으로 규정하고, 이를 역사적으로 발전적 입장에서 전개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화하미학』은 주체성 실천미학을 바탕으로 하여, 중국 미학의 ‘정수와 영혼’인 장자, 굴원, 선종 사상을 역사적으로 축적돼 형성된 문예심리 구조(감정 본체)로 보고 논증한 것이라  할 수 있다.이러한 논증을 통해 리쩌허우는 중국 전통 미학의 특징을 非디오니소스적인 것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그가 중국 미학의 특징을 ‘선과 미의 조화’로 본 것과 연결되기도 한다. 감정에는 인류의 총체적 성과인 사회적인 것이 축적돼 있고, 유희적 본능에서 출발한 예술에는 사회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이성적인 것과 감정적인 것이 서로 조화를 이룬다. 이 때문에 중국 전통 미학은 감정을 강조하지만 이 감성에 대한 자기반성과 통제를 중시하고 또한 감성이 과도하게 즐거움에 흐르는 것을 배척하는 ‘비디오니소스적’ 특질이 있다고 보았다.

기존의 『화하미학』이 원문에 충실한 노작임에도 불구하고, 오역과 난삽함으로 독자가 읽어나가기가 힘들었다. 이번 번역에서는 이러한 것을 시정하려고 함과 동시에 몇 가지 염두에 둔 점이 있다. 무엇보다 리쩌허우의 주체성 실천철학과의 연관성을 살리면서 원문과 번역의 간격을 메우면서 보다 자연스러운 우리말을 사용하려고 했다. 또한 주석을 풍부히 달아 이해를 쉽게 함과 동시에, 100여 점의 도판을 컬러로 실어 지은이의 논의를 시각적으로 충실히 따라갈 수 있게 했다. 아울러 리쩌허우의 주체성 실천철학과 『화하미학』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권말에 해제를 붙여, 리쩌허우의 주체성 실천철학과 미학을 안내하는 길잡이 구실을 한 것은 이번 번역본의 장점이라 할 수 있겠다.
 
조송식 조선대·미술학과
필자는 서울대 대학원 미학과에서 동양미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태동고전연구소(지곡서당)에서 한학을 연수했다. 주요 저서로는 『산수화의 미학』, 『상상력과 지식의 도약』(이하 공저),  『미학의 역사』 등이 있고, 역서로는 『역대명화기(상·하)』, 『표암유고』(이하 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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