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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죄악이 만든 역사의 상흔 … 문학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가?
거대한 죄악이 만든 역사의 상흔 … 문학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가?
  • 김정훈 전남과학대·일본근대문학
  • 승인 2017.01.1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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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산의 『군함도』를 읽다
작가 한수산의 역작 『군함도』(전2권, 창비, 2016.5)가 뜨겁다. 한수산이라고 한다면, 그 특유의 감수성이 빛을 발했던 작가다. 그런 그가 역사소설을, 그것도 창비에서 내놨다. 그게 2016년 5월이었다. 일제강점기 재일조선인 징용공들에게 지옥섬으로 불리던 하시마(瑞島), 일명 軍艦島를 배경으로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피폭 문제를 다룬 역사소설이다. 그는 지난해 11월 8일 전북 전주시청 강당에서 열린 강연에서 “일제강점기의 여러 참상과 고난을 직면한 우리 소설, 영화가 몇 편이나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과거사를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질타하기 전에 우리부터 문화적으로 이를 형상화하고 기억하려는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연 이 소설, 어떻게 읽어낼 수 있을까?
 
여기 이 역사소설과 관련한 한 편의 논문이 눈에 띈다. 김정훈 전남과학대 교수(일본근대문학)가 <한일민족문제연구>31호(한일민족문제학회, 2016.12)에 발표한 「조선인 징용갱부의 시점에서」가 그것이다. 김 교수는 근래 징용 관련 문학에 관심을 갖고 작업하던 중에 일어판과 한글판 『군함도』를 만나 자극을 받은 게 집필 동기라고 말한다. 그는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공동대표(2014~2015)를 역임한 후 자문위원으로 활동 중, 근로정신대 시민모임 임원들과 함께 ‘한수산 초청강연’을 추천했는데, 이게 2016년 8월 12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 광주의 35개 시민단체 주최 한수산 광주초청강연(전남대 박물관)으로 결실을 맺었다. 김 교수는 이런 움직임에 탄력을 받아 연구를 진행해 논문을 집필했다고 귀띔했다. 주요 대목을 발췌해 구성한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작가는 주인공 ‘지상’의 탈출계획과 탈출과정 장면을 구체적으로 그리면서 항상 무엇을 위한 탈출인가를 독자에게 환기시킬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탈출 전야 마음가짐을 새롭게 다지는 주요인물의 성장을 새김과 동시에 탈출의 의미와 그 근거를 중요한 메시지로 독자들에게 발신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수산은 징용갱부인 지상을 살기 위해 맹목적인 탈출을 시도하는 인물이 아니라 조국애에 눈떠가는 발전적 인물로 그림으로써 더욱 고차원적 지점에서 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탈출에 성공한 지상은 일본인 노부부의 도움을 얻어 그 노부부의 사위가 근무하는 나가사키조선소로 잠입하고 ‘우석’은 지하공장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게 된다. 그런데 작가는 주요 인물들의 행동을 좇는데 초점을 맞출 뿐만 아니라 태평양전쟁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고자 한다. 동시에 악조건 하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고뇌하면서 귀향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며 생을 향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는 그들의 모습을 그린다. 지상과 우석이 나가사키에 정착해 연명하고 있을 때 일본은 미국의 공습으로 태평양 섬을 차례차례 빼앗기고 오키나와까지 침공 당했다.
 
미국 공습으로 지하 건설 중인 터널에서 노동하던 우석도, 나가사키조선소의 조선인 징용자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던 지상도 결국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피폭을 피할 수 없었다. 나가사키 건물이 파괴됐고 거리는 폐허로 변했으며 여기저기에 사체가 널리는 처참한 광경을 지상과 우석은 목격하면서도 어찌할 수가 없었다. 결국 우석은 피폭으로 부상 입은 몸의 상처가 악화돼 목숨을 잃는다. 지상은 ‘아끼꼬’를 업고 병원을 찾아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 지상이 공포와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고향으로 간다. 내 상처투성이 나가사키여, 잘 있거라”라고 마음 속으로 되뇌인 뒤 고향을 향해 발길을 내딛는 곳에서 작품은 막을 내린다.
 
소설이지만 실존인물 설명 등 역사 곳곳에
이쯤에서 작품 특징을 형식과 내용으로 나눠 생각해보자. 우선 작품의 장소가 지상의 자택, 군함도=하시마, 서형의 친정, 나가사키조선소, 터널공사장, 원폭 현장으로 옮겨짐과 동시에 그 장소가 중심인물의 눈을 통해 3인칭으로 그려진다는 점이 눈에 들어온다.
 
주인공은 지상과 우석으로 볼 수 있지만 장면이 바뀜에 따라 때로는 명국이, 때로는 서형이 이야기를 이끌고 나아간다. 바꿔 말하면 장면 전환과 함께 시점인물도 그 장소에서 이야기를 주도하는 인물로 바뀌며, 이런 형식이 스토리 전개에 입체적 효과를 주고 있는 점을 거론할 수 있다.
 
둘째, 이 작품의 시간은 스토리 전개상 지상과 서형, 우석과 금화 등의 인물이 때때로 과거의 일을 회상하는 형태로 서술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현실에서 과거를 되돌아보는 장면이 펼쳐진다. 하지만 파격적인 시간 전환은 보이지 않고, 대체로 사건 진행에 따라 스토리가 순차적으로 전개된다. 태평양전쟁의 전황도 점차 미국군의 공습이 격렬해져 결국 원폭투하로 이어진다. 원폭이 나중에 투하되는 일도 없거니와 그 피해의 양상이 미리 전개되는 일도 없다.
 
셋째, 소설이라고 하지만 내용 곳곳에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나 배경, 혹은 실존인물에 대한 설명이 그대로 게재돼 있는 점을 특징으로 들 수 있다. 예를 들면 스토리가 전개됨에 따라 군함도의 배경이나 나가사키 군수기업의 실체, 태평양전쟁의 전황, 원폭투하 배경과 피해양상 등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이 픽션이 아니라 사실적 내용으로 소개된다. 물론 작가의 장기간에 걸친 조사와 자료수집으로 수록된 내용이지만 독자 입장에서 보면 그 내용이 스토리와는 확연히 구분돼 있어서 어느 것이 사실적 내용이고 어느 것이 스토리의 전개인지 확실히 구분해 읽어낼 수 있다.
 
넷째, 조선의 속담, 우스갯소리, 속어 등이 풍부하게 등장하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이미 관련 평가가 있으며, 필자 또한 이에 공감한다. 갱부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물론, 가정이나 작업현장에서 주고받는 살아 있는 용어가 적재적소에 배치돼 있고, 그에 따라 작품의 재미가 배가되고 있다. 조선인 갱부들은 고통스런 일상 속에서도 풍자와 해학 넘치는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조선인 서민들에게 익숙한 화제를 떠올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것이 긴박한 상황 속에서도 조선인 특유의 여유를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독자와 텍스트 내의 거리를 좁히기도 하며 독자에게 또한 현장감 넘치는 효과를 안겨준다. 인물들의 대화 속에 유머 풍부한 표현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아서 독자는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읽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주제는 무엇일까. 전쟁이 초래한 조선인 징용자의 비극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작가는 일본어판 『군함도』에서 「일본의 독자에게」라는 제목을 붙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역사의 어두운 상흔은 지워지지 않으며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그저 사람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을 뿐입니다. 저는 이 소설에서 조선인 피폭자의 결코 잊어서는 안 되고, 잊을 수도 없는 ‘그 시대’를 복원하려고 했습니다. 이 소설 속 이야기가 망각의 벌레들에게 잠식되고 있는‘그 시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바치는 한 송이의 꽃이기를, 그들에게 바치는 한 가닥의 향기이기를, 저는 소설을 쓰는 동안 잊지 않았습니다.”
 
작가 한수산은 너무나도 잔혹한 역사적 비극이 그저 과거의 기억 속으로 사라져가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그는 일본제국주의의 억압과 전쟁의 비극을 징용자들의 인생과 원폭 참상을 통해 사실대로 묘사함으로써 두 번 다시 전쟁이 재발돼서는 안 된다고 선언함과 동시에 평화와 인간애의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말하자면 작가는 나라와 언어를 빼앗긴 조선인 징용갱부들이 군함도에서 어떠한 생활을 했고, 미쓰비시 회사 측의 권력 억압에 어떻게 저항했는지를 구체적인 증언과 자료에 근거해 기록해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나가사키로 탈출했지만 설상가상으로 나가사키에서도 피폭의 몸이 돼버리는 모습과 원폭 현지의 처참한 광경을 고발한다. 징용과 원폭이라는 테마를 염두에 두면서 조선인의 비극적 상황을 담담하게 서술하는 작가는 그들의 “역사를 문학과 기억으로 바로 세워야 하는 일”(한수산 광주초청강연 「『군함도』, 나는 왜 이 소설을 썼는가」, 이하 강연)에 필사적이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취재 당시 도움을 받은 징용피해자 서정우 씨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 작가의 고백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시사한다. “누가 저 15살 소년을 병들고 지친 70대의 남루한 노인으로 만들었는가. 일본인인가. 조선인인가. 역사인가. 제 눈에 눈물이 흐르고, 그분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됐을 때 저는 결심하게 됩니다. 이건 꼭 쓴다. 이건 재현이 아니라 복원이다. 이분들의 역사를 문학과 기억으로 바로 세워야 한다.”(강연)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다만 유의하고 싶은 것은, 작가가 『군함도』를 통해 결코 특정 대상에 대한 증오나 혐오와 같은 그런 표면적 묘사에 중점을 두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독자에 대한 메시지를 남기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한수산은 직접 “저는 우리들 개인의 삶 하나하나를 파괴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대상(일본, 일본인, 그리고 친일파)이 아니라 그들 뒤에 도사린 제도, 환경, 집단 등 거대한 죄악이라는 불가해의 덩어리로 보고, 그것을 그려내려 했습니다.”(강연)라고 강조했다. ‘작품’= ‘수면 위에 떠 있는 얼음’이라고 비유하며 수중에 잠겨있는 보이지 않는 얼음에서 인간성을 말살하는 ‘거대한 죄악’의 실존을 확인하는 논리다. 다시 말하면 수면 위의 작품을 통해 수면 아래의 대상을 독자에게 환기시키려는 의도를 명확히 하려는 시도, 작가에게는 그것이야말로 진실의 복원이었음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독자는 이 작품을 통해 한일의 불행한 역사를 회고해봄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역경을 겪던 당시에도 ‘창조적 재생을 추구하는 인물들’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삶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쟁, 평화, 자유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라는 의문 앞에 놓이게 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 작품 『군함도』는 태평양전쟁 당시에 일본에서 인류에게 있어서는 안 될 일이 어째서 일어났는지를 묻고 있기 때문이다.
 
▲ 군함도 출간 후 광주에서 열린 한 초청강연회에 참석한 작가 한수산. 사진제공= 김정훈 교수
작가 한수산은 각기 다른 환경과 성장배경을 지닌 조선인들이 일본으로 건너가 곤경에 처한 삶을 지탱하면서도 조국애와 인간성 회복에 눈떠가는 과정을 묵묵히 작품에 새겼다. 한수산에게 이러한 조선인 징용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죽음, 신음소리, 무념, 분노에 물들은 ‘한’의 나날”(일본판 『군함도』 「일본의 독자에게」)을 하나도 빠뜨림 없이 묘사하는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군함도’에서의 중노동, 미쓰비시광업 관계자들에게서 받은 차별, 동료들의 죽음, 이것이 조선인 징용갱부들의 일상이었다. 주목하고 싶은 것은 한수산은 그와 같은 내용을 작품 속에 형상화했다고는 하나 결코 피해자 조선인대 가해자 일본인이라는 구도나 그런 각도에서만 표현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조국을 강탈당한 인간들의 애환을 그림과 동시에 조선인끼리의 갈등이나 신분의 격차도 그려 넣었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리얼리티와 생동감 넘치는 묘사에 독자가 공감하는 것은 그와 같은 이유 때문이리라.
 
피폭지에서의 작가의 시선은 조선인 사체수습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궁극적으로 국경과 신분을 초월해, 조선인과 일본인이라는 통상적인 관념을 초월해 인간의 본질적 가치를 묻는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 조선인 징용자들의 피폭자 구원이나 피폭지의 피해수습 장면에 감동하는 것은 그와 같은 시선에서 초래된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한수산은 인간성을 상실하고 자유를 추구하는 징용갱부의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했음은 물론, 우리 인류를 파멸의 수렁으로 몰아넣은 용서할 수 없는 비극적 상황에 대해서도 메스를 들이댔다. 이처럼 인간의 본질을 추구한 작가의 기록이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평화의 울림으로 들리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韓·日 간의 뼈저리게 아픈 기억과 참혹한 전쟁의 상흔을 그대로 들추어내 모든 이에게 그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도록 각성을 요구하는 작품 『군함도』가 동아시아평화에 공헌하는 작품으로 널리 읽히기를 바란다.
 

김정훈 전남과학대·일본근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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