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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은 더럽기만 한가? … 원래 동아시아에선 안 그랬어!”
“똥은 더럽기만 한가? … 원래 동아시아에선 안 그랬어!”
  • 김홍근 기자
  • 승인 2017.01.02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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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_ 『동아시아 농업사상의 똥 생태학』 펴낸 최덕경 부산대 교수
전경수 서울대 교수(인류학과)가 2002년 펴낸 책 한 권이 당시 큰 화제가 됐다. 부제 ‘인류학자의 환경론’이란 부제를 단 『똥이 자원이다』(통나무 刊)라는 책이었다. 부제에서 엿보이듯 ‘환경론’의 관점에서 접근한 책이었다. 그의 본의는 아니었지만 전 교수는 이 책으로 오랫동안 ‘똥’ 연구자로 회자됐다.
 
그리고 다시 여기 ‘똥’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 등장했다. 최근 똥을 경제학·농학·생태학을 비롯해 역사적인 관점에서 융합적으로 두루 살펴 『동아시아 농업사상의 똥 생태학』(세상출판사, 2016.12)을 발간한 최덕경 부산대 교수(사학과)다. 그는 흔히 “더럽다” “냄새 난다”고 인식하는 바로 그 똥이 역사학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역설한다. 동아시아에서 그것은 폐기물이 아닌 자원으로 활용됐으며 거름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황금으로까지 인식됐다는 것이다. 최 교수 역시 전 교수처럼 똥을 자원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정리한 것이다. 좀더 나갔다면, 그것을 ‘생태학’의 측면에서 짚어냈다는 점일 것이다.
 
그가 똥을 연구하게 된 계기에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다. 아시아인들은 일찍부터 측간을 만들어 똥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지혜를 갖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근대화 과정에서 스스로 폐기하고 기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반면 똥을 폐기물로만 취급하던 서양인들이 오히려 아시아인들의 전통적 지혜에 놀라며 연구를 활발히 하기 시작했다는 데서 그는 자괴감에 휩싸였다고 한다. 이에 자극받아 아시아인들은 어느 시점부터 똥오줌을 비료로 사용했으며, 왜 기피의 대상이 됐는지에 대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며 집필을 시작했다는 최덕경 교수. 아직도 똥을 “더럽다”라고만 생각하고 있다면, 여기 그의 얘기를 한 번 들어보자.
 
정리 김홍근 기자 mong@kyosu.net
 

△똥의 역사를 연구한다는 것 자체가 생소하다. 연구를 시작한 특별한 계기가 있다던데.
“똥의 연구가 생소하다는 것은 오늘날 입장에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전통시대에는 사실 똥만큼 친숙하고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집 마당이나 가축우리에는 항상 소, 돼지, 닭과 개똥을 볼 수 있었다. 똥을 저장하는 측간 역시 오늘날 수세식과는 달리 안방에서 약간 떨어진 별채에 위치했을지라도 대·소변 하는 장소와 그것을 퍼서 이용하는 공간이 달랐기 때문에 지금보다 그 규모도 컸다. 20세기 초 동아시아를 여행했던 F.H.킹이 가장 놀랐던 것은 바로 똥을 자원으로 이용했던 지혜였다. 똥이 폐기물이 아닌 비료로 이용해 토양의 건강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했던 것도 놀랄 일이지만, 이를 넘어 삶의 환경과 위생까지 보전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근대화과정에서 동아시아는 도시에서부터 똥이 폐기물로 인식되면서 점차 화장실구조가 바뀌었으며, 그러한 인식이 점차 농촌에까지 영향을 줬다. 그 결과 서구가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던 아시아인의 전통적인 지혜를 우리 스스로가 폐기했으며, 아울러 똥은 배설과 동시에 물과 함께 멀리 떠나 보내버리는 혐오스런 물건이 돼버렸다. 하지만 서구인들은 이런 놀랄만한 아시아인들의 지혜를 매우 경이로운 눈으로 보면서 점차 똥을 부숙시켜 거름을 만들어 생활에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상의 지혜를 과감하게 청산해버렸는데 반해, 서구인들은 오히려 그것을 이용하고 있었다. 똥을 연구의 주제로 삼은 것은 바로 이것에서 오는 자괴감 때문에서다.”
 
△똥이 토지를 비옥하게 만든다는 것은 우리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그러한 것을 동아시아에서 먼저 알아냈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얘기다.
“가축과 사람의 똥이 어느 것이 먼저 비료로 이용됐느냐는 알기가 쉽지 않다. 중국의 경우 이미 갑골문에도 똥을 이용한 흔적을 볼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다만 사료 상 출현빈도가 많았던 것은 가축 똥이 많은 것을 보면 사람 똥보다 먼저 자원으로 이용됐을 가능성이 크다. 똥이 영양가가 있고 거름 효과가 있었다는 것은 동식물이 먼저 알았다고 볼 수 있다. 신선한 똥을 누는 주위에는 항상 개나 돼지가 있었다. 기원전후의 한대 明器에 등장하는 화장실의 구조를 보면 측간 아래에 돼지우리가 있는 것도 이를 말해준다. 그리고 배설물에 섞여 나온 씨앗이 다른 작물보다 잘 자란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똥이 농작물의 거름으로 사용됐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똥오줌의 수요가 확대된 것은 10세기를 거치면서 벼농사와 뽕나무 및 채소재배가 본격화되는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그 후 똥은 수요가 증가되면서 황금으로 인식될 정도로 소중한 비료로 자리 잡게 된다. 그 덕택에 地力이 개선돼 오랜 休閑을 극복할 수 있었으며, 아울러 생산력의 증가로 많은 인구를 부양하고, 그 경제력으로 훌륭한 문화를 창조할 수도 있었다. 아시아인들이 일찍부터 측간을 만들고 똥을 농업자원으로 활용했다는 것은 대단한 지혜라고 볼 수 있다. 당시 폐기물로 인식한 서구사회는 똥으로 인한 폐해가 막심했다. 똥을 아무 곳이나 폐기하면서 지하수와 하천은 오염되고, 거리에는 온통 똥 천지이고 냄새가 진동했다. 물론 19세기에는 근대화과정 속에서 북경이나 서울과 같은 대도시가 하수처리시설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인구가 급증하면서 외부인의 눈에는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더러운 도시로 보였을 것이다. 당시 농촌은 똥이 부족한 상태였는데, 급작스런 도시화가 똥 처리능력을 상실했던 것이다. 결국 도시 위생과 청결의 이름으로 화장실이 개조되고, 똥은 점차 자원으로서의 위치를 상실했던 것이다.”
 
△『동아시아 농업사상의 똥 생태학』은 무려 600페이지가 넘는다. 왜 하필 ‘똥’인가?
“똥은 절대 단순한 것이 아니다. 똥은 각종 농작물의 비료로 활용돼 작물의 생산력을 높이고, 그 생산력이 문화를 창조하는 힘이었으며, 그러한 생태계의 순환은 天地人 합일의 사상적 근간이기도 했다. 똥이 자원으로 활용된 사례는 이런 아시아적 생태순환관계를 잘 보여준다. 책의 ‘들어가는 말’ 속에는 본서를 집필하기 위해 필요한 열 가지의 질문을 던져서 그것에 따라 목차가 구성돼 있다. 따라서 책의 내용에는 사료 속에 등장하는 糞의 의미가 어떻게 변천돼갔으며, 똥에 대한 인식변화의 원인과 똥이 토양을 치료하는 糞藥으로 이용되면서 생산력은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1차적으로 살폈다. 그리고 똥이 비료로 정착하면서 저장의 필요성에 따른 측간구조의 변화와 어떤 방식으로 똥오줌을 구입했는가를 밝히고, 나아가 다른 비료와 어떤 조화를 이루었는가를 검토했다. 특히 당시 똥오줌 비료가 다른 비료에 비교해 얼마나 가치 있는 존재였는가도 살폈다. 그런가 하면 똥은 비록 좋은 비료이면서도 저장, 취급 및 운반이 곤란하다는 한계성을 갖고 있다. 이전에는 취급에 큰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지만 명대 후기에 이르면, 고용노동자들의 생활여건이 좋아지면서 양질의 노동조건을 요구하거나 태업을 일삼아 똥거름에 대한 변화의 길을 모색한다. 취급이 용이하고 적은 양으로 비료효과가 좋은 비료를 모색하게 된 것이다. 이때 등장한 것이 바로 糞丹으로 똥에 곡물과 광물질을 농축한 융복합비료를 만들었던 것이다. 당시 분단이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지만, 똥거름에 대한 변화가 요구됐다. 이런 상황에 부합돼 등장한 것이 바로 깻묵비료였다. 그렇지만 여전히 똥이 최고의 비료였음을 淸初의 사료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이런 똥거름의 변화는 중국에만 나타난 것이 아니고 조선과 일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된다. 특히 일본의 경우 전국시대 말부터 똥거름이 이용됐으며, 에도시대에는 점차 그 수요가 늘어났으며, 19세기가 되면 사람 똥을 ‘비료중의 으뜸’(『農稼肥培論』) 또는 ‘세계 최고의 비료’(『培養秘錄』)라고 극찬하고 있다. 그래서 똥을 거래하는 중간상인조직이 폭넓게 존재했다. 온돌생활을 하는 조선의 경우도 중국과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특징적인 비료는 초기부터 똥과 재를 이용한 똥재糞灰를 효율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이 주목되며, 한양의 똥을 근교에 팔아 거부를 축적하기도 했다. 동아시아에서 똥이 가장 큰 굴절을 겪는 것은 근대화과정에서였다. 서양인의 눈에 비친 북경과 서울의 모습은 똥이 아무 곳이나 버려져 냄새가 진동하고 위생적으로도 매우 좋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갑작스런 도시인구의 증가로 도로와 하수처리시설이 미비해, 농촌에의 똥오줌 수급이 원활하지 못한 것에 기인한다. 게다가 똥거름으로 인한 기생충 감염도 똥을 멀리하게 된 원인으로 작용했다. 결국 근대화과정에 똥은 위생과 청결의 이름으로 도시에서부터 점차 멀어졌으며, 이것이 농촌에까지 영향을 미쳐 화장실구조가 수세식으로 변하고 농약과 화학비료가 분뇨를 대신하게 됐던 것이다. 끝으로 본서의 내용 중에는 측간의 시설이 커지면서 그 속에 廁神이 산다는 민속신앙도 언급했다. 측신의 유래와 이 같은 신앙이 중국 내지로 확산되는 과정을 살핀 것은 물론, 그 신앙이 가족 내에서 어떤 기능을 했는가를 검토했다. 나아가 한국과 일본에 남아있는 측신을 통해 단순한 신앙의 전파 경로를 넘어 水田의 보급과도 밀접하게 관련됐음을 구명했다. 이 책은 똥의 이용을 역사적인 흐름에 따라 검토하고, 나아가 그것을 농업경제의 발전과 생태민속학의 변화를 동시에 살핀 종합적인 연구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똥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으며, 많은 분량이 필요했던 이유도 이 때문이다.”
 
△연구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똥을 연구하면서 흥미로웠던 몇 가지를 언급해본다. 우선 근대화 이전에 중국에도 서구의 화학비료와 같은 복합비료가 실험실에서 연구됐다는 점이다. 서구화에 밀려 이 비료가 빛을 보지는 못했지만, 전통적인 비료는 취급이 곤란하고 운반 등에 많은 경제적 비용을 지불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해 똥과 각종 곡물을 농축해 糞丹을 만들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명대 徐光啟의 사료를 통해 이와 같은 사실을 드러냈다. 그리고 일본 연구를 위해 일본농서를 전부 뒤져 똥 관련 자료를 찾아봤다는 점도 개인적으로 의미 있었다. 중국도 마찬가지였지만 일본에서도 똥을 역사적으로 분석한 연구는 많지 않았으며, 종합적으로 고찰한 연구는 찾지 못했다. 아울러 본서의 완결성을 위해 청초와 근대 일본의 소설까지 활용했다. 특히 청초의 『굴신갱간귀성재주掘新坑慳鬼成財主』란 소설은 중국문학상 측간을 소재로 한 작품으로 청초 강남지역 한 마을에서 공동측간을 만들어 똥을 비축해 재부를 축적한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했다. 농업사 연구와 관련해 학생을 지도할 때 어려운 문제는 50년 전에는 상식적이었던 내용을 지금은 잘 모른다는 사실이다. 중·고등학교에서 쉼 없이 공부했을 것이지만, 자연생태에 대한 이해가 거의 없고, 간단한 농기구나 곡물의 이름조차 모른다. 과거사실을 공부하는 역사학도들이 과거 생활에 대한 기본이 돼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직 책을 통해서만 이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물론 현대사회의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 앞만 보고 달려도 수용하기 힘든 세상에 살고 있고, 또 사회가 그렇게 몰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종종 지금이야말로 역사학과에 생활 자료실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연구자들 중에도 농업사가 역사연구 중에서 가장 어려운 분야라고들 한다. 물론 과학기술 및 농학과 같은 자연과학이 결합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에는 일반적이었던 지식이었는데, 오늘날 농업의 비중이 감소하면서 농민과 농업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줄어들고, 따라서 이 분야에 대한 지식이 소원해져 생긴 현상일 것이다. 게다가 농업의 비중은 점차 줄어들어 상당한 농산물은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이웃나라들은 농업을 전략산업을 넘어 생명산업, 제6차 산업으로 설정해 농업진흥을 가속화하고 있다. 때문에 농약이나 화학비료에 대한 위험이나 유전자조작식품에 대한 위해危害도 감시가 철저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농업에 대한 관심이 높지 못하고, 관심을 갖는 자가 줄어들면서 생명까지도 국가정책에 맡겨 생명주권까지 포기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역사연구는 현재적 상황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역사해석의 시점은 물론 흥미를 촉발하는 것도 현재적 상황이기 때문에 농업을 진흥할 수 있는 정책과 배려가 중요할 듯하다. 이는 곧 농업사 연구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똥’이 동아시아인들의 지혜 속에서 그 가치를 발했지만, 오히려 요즘 동아시아에서는 폐기물로 취급받고, 서양에서 재조명됐다는 것이 흥미롭다. 이처럼 선조들의 지혜로 가치가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잊고 있는 것들이 많을 것 같다.
“요즘 잊혀져가는 것이 특히 많다고 생각된다. 溫故知新보다 棄故知新이다. 15년 전쯤 중국 교수들로부터 한국 학생들이 매우 예의 바르고 인간적이라는 말을 들었는가 하면, 북경대 어떤 교수는 한국을 지금까지 동아시아 문화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국가라고 했다. 하지만 그 후 우리는 빠르게 이런 무형의 문화를 잃어가고 있다. 아니 의도적으로 버리는 듯하다. 강의실의 달라진 분위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때로는 유교나 전통적인 것을 봉건적이고 구태의연하다는 이유로, 때로는 변화하는 시대에 부적합하다는 이유로 멀리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 자신의 가치에 대해 자긍심이 좀 약한 듯하다. 물론 기존의 문화를 토대로 더 좋게 변한다면 재론의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아쉽다. 가장 큰 문제는 先己後共, 즉 공동체보다 자신의 이익을 강조해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어지면서 생긴 현상인 듯하다. 여러 가지 이유로 공동체문화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좁게는 가정의 제사, 절기의 풍속에서부터 농촌의 노동공동체 활동에 이르기까지 점차 빛이 바래지고 있다. 수천 년간 지속된 가족의 전통과 민간의 풍속이 최근 급작스럽게 퇴색하고 있다. 10년이 지나면 모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지도 모르겠다. 대신 지연과 학연이 권력화하고 있다. 변화의 요인은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도 있지만, 배타적인 이익 때문이 아닐까 한다.”
 
△기존에 활발히 진행된 연구 외에 우리 주변에서도 다양한 연구 소재들을 찾을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것들을 발굴할 수 있는 안목 또한 중요해 보인다. 강단에 있는 교수로서, 제자들이나 학문후속세대들에게 조언해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최근 인문학의 인구가 급감하고 있다. 제도적으로 공학이나 자연계와 연계나 방향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인문학이 취업이나 돈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그뿐인가, 역사학에 있어서도 연구영역이 편중돼 크게 보지 못하고 수공업적 연구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연구자의 숫자가 적어 생긴 현상일 수도 있지만, 그 때문에 우리가 연구하지 않는 부분은 대부분 국외학자들의 연구성과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지식을 수입한다는 의미다. 농업사 연구가 최근 특히 주목받지 못하고 있다. 역사의 대상이 과거이고, 과거 기간산업은 농업이었다. 때문에 사회경제에 대한 이해나 정치기반의 변화나 문화발전의 토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농업사가 필수적이지만, 작금 한국 한계의 농업사 연구자의 수는 이웃 중국과 일본에 비하면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여전히 연구가 정치나 법제도사에 매몰되고 있다. 더구나 최근 산업에서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면서 농과대학은 폐지, 축소되거나 이름까지 바꿨으며, 덩달아 농업사 연구자조차 크게 감소했다. 이렇게 되면서 농업사는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분야로 남게 되고, 많은 부분 외국학자의 연구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차세대 연구자들은 유행하고 화려한 분야를 쫓는 것도 좋지만 작은 분야이지만 최선을 다해 화려한 성과를 거두고자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할 것이다. 사실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들이 배출될 때 비로소 역사연구의 폭과 깊이가 더해져 역사도 바른 모습을 갖게 된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새롭게 떠오르는 많은 영역이 있으며, 다른 분야와 융합되면서 분야는 더욱 넓어졌다. 다소 노력을 투자하더라도 후속세대들은 겉보기에 화려한 분야보다 가려진 분야의 역사를 밝히는데 도전하기를 권한다.”
 
△앞으로의 연구계획이나 집필계획은?
“연구의 방향은 한편에서는 중국의 농서를 번역 소개하는 작업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농업사의 연구영역을 확장하는 일이다. 초기 농업사 연구는 주로 생산력을 밝히는데 국한됐지만, 지금은 농업 · 농민 · 농촌의 환경과 생활의 문제로까지 확장을 시도하고 있다. 농서번역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은 십 수 년 전부터 이 작업이 시작돼 지금도 지속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미 『농상집요』, 『보농서』, 『진부농서』 3권의 농서를 역주해 출간했으며, 2년 내에 당대의 『사시찬요』와 위진남북조시대의 『제민요술』을 출판할 예정이다. 그리고 한편에서는 그동안의 연구성과를 모아 ‘콩의 기원과 전파’에 대해 저서를 계획 중에 있으며, ‘중국음식문화의 형성’, ‘한중 경제생활사’도 구상 중에 있다.”
 
 
최덕경 교수는 부산대 학부를 나와 석사학위를 한 뒤 건국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중국 농업사 연구자로 『중국 고대농업사 연구』, 『중국고대 산림보호와 생태환경사 연구』를 출간했으며, 역주 작업으로는 『농상집요 역주』, 『보농서 역주』와 『진부농서 역주』를 편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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