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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증하는 파시즘화 …“시간이 촉박해요, 촉박해!”
점증하는 파시즘화 …“시간이 촉박해요, 촉박해!”
  • 교수신문
  • 승인 2016.11.1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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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말, 말

알랭 바디우 스위스 유럽공동대학원(EGS) 르네 데카르트 석좌교수

“내가 앞서 언급한 여러 이유로 젊은이들은 세상의 벼랑 끝에서 이 세계가 자신에게 무엇을 제안하는지 묻습니다. 그들은 내가 전형적이라 칭한 세 개의 형상 중 어디에도 안주할 생각이 없습니다. 그들은 서구의 찬가를 부를 생각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런 영광의 욕망에 좌지우지되지도, 거기에 따라 자신의 운명을 설계할 마음도 없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죽음의 허무주의에 빠질 생각도 없습니다. 자신에게 다른 전략적 제안이 제시되지 않는 한 그들은 본질적 방황을 계속할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그들이 단순 소비자-임금노동자의 이항식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순간 모든 주제를 흩트리는 기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런 제안이 가능하고, 또한 새로운 사유를 통한 수혈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현대적 파시즘을 종식시킬 것입니다. 국가의 비열한 전쟁은 그 어떤 긍정적인 것도 보장하지 않습니다. 점증하는 파시즘화를 해소하고 무력화시킬 수 있는 능력은 뭔가 다른 제안입니다. 우리는 네 번째 전형적 주체성을 창출할 것입니다. 그것은 ‘서구적 욕망’의 죽음의 화신인 허무주의에 결코 안주하지 않고, 글로벌 자본주의의 지배를 넘어서려는 주체성입니다. 이것이 본질입니다. 이를 위해 특별한 동맹을 창출해야 합니다. 다른 차원을 사유해야 합니다. 자식인들, 상이한 구성의 젊은이들이 먼저 국지적 경험을 통해, 이어 보다 보편적인 경험을 통해―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유기적으로 동맹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 그들은 유목 프롤레타리아를 향해 행동하고, 길을 만들고, 한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절박합니다. 모두에게 안겨진 전략적 절박함입니다. 하나의 과제이자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입니다. 사유의 과제이자 새로운 길입니다. 즉 우리가 말한 다른 길이 무엇인지, 그것이 진정 무엇인지 찾는 일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길의 사유, 사상, 관점을 성찰해야 하고, 인류의 운명의 전략적 비전 속에 당신을 함께 각인해야 합니다. 이 사유는 기울어진 인류의 역사가 방향을 바꾸고, 인류가 매몰돼 있는 어두운 불행에서 벗어나도록 힘쓸 사유입니다.
나는 불굴의 낙관주의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런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허나 시간이 촉박합니다. 시간이 촉박해요…….“

2015년 11월 23일, 오베르빌리에 시립극장에서 알랭 바디우가 발표한 특별 세미나 전문을 담은 『우리의 병은 오래전에 시작되었다: 11월 13일 참극에 대한 고찰』(이승재 옮김, 자음과모음, 2016. 11) 중에서


 

김현택 한국외대 교수(노어과)

“(슬라브학의 미래를 새롭게 정립하고 설계하기 위한) 최우선 과제는 우리에게 슬라브학이 갖는 의미를 재정립하는 일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한반도와 동북아의 미래에 대한 구상에서 미국, 중국, 일본 등과 함께 러시아를 중요한 변수로 고려하는 일과 오랫동안 해양 쪽으로 치우쳤던 시선을 유라시아로 돌리고 그 시야를 넓히기 위해 이 지역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 연구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을 체계화하고 확산하는 일 등을 들 수 있다.


문화적 측면에서는 역사를 통해 러시아를 비롯한 슬라브 문화권이 창조한 인류 공통의 정신적·문화적 자산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이 높은 성취를 향유해 새로운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 슬라브학의 임무다. 이를테면 얼마 전 세계적인 관심사로 떠오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영토 분쟁 관해 그 전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국제정치적 요인 외에 역사적·문명사적 요인을 고려하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위기에 처한 한국 슬라브학의 새로운 방향은 이처럼 연구자가 주도적으로 실천하는 학문의 존재 이유에 대한 지속적인 탐색 과정을 통해 마련할 수 있다.


활발한 학술 활동과 함께 슬라브학 연구자가 추진해야 할 도 하나의 과제는, 현재 대학의 교과과정이나 지식인에게 등한시되고 있는 슬라브학을 대조와 비교의 맥락에서 담론의 장에 진입시키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는 일이다. 왜냐하면 냉전체제의 대결 구도로 인해 서구로부터 고립돼 합당한 학문적인 조명을 받지 못한 슬라브 문화권의 특수성만을 강조하는 노력은 자칫 다른 문화권과의 비교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이나 보편성에 관한 논의를 제한하면서 슬라브학 자체의 고립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슬라브학,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한국 슬라브학 30년사: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로 향하다』(김현택·송준서 엮음, 한울엠플러스, 2016.11)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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