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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거물 경제학자들은 왜 윤리강령을 채택했을까?
미국의 거물 경제학자들은 왜 윤리강령을 채택했을까?
  • 교수신문
  • 승인 2016.11.10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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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부자는 어떻게 가난을 만드는가』 김광기 지음|21세기북스|280쪽|16,000원

생각해보라. 당시의 경제학자들이 정말로윤리적이었다면 대공황 발발을 예측하지
못했겠는가.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양심적인 지성인 부재 문제는 특히 월가와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는 경제학계에서 두드러진다. 정치권력과 월가의 금권이 주는 떡고물에 푹 빠져 학자의 본분과 이성적 실천에 위배되는 짓을 얼굴에 철판을 깔고 서슴없이 자행하는 자들이 미국 경제학계에는 수두룩하다. 그 결정적 증거는 미국의 중산층은 물론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중산층의 평온했던 삶을 송두리째 흔들리게 했던 그 전대미문의 2008년 금융 위기를 예견한 경제학자가 없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금융 위기 발발의 원흉으로 월가를 겨냥해서 일침을 놓거나, 치유책으로 월가 규제를 담대히 부르짖은 사람이 내가 제시한 몇 사람 빼고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는 것도 그 결정적 증거다.

미국 경제학자들은 이와 관련해 철저하게 무능한 ‘식물학자’로 남아버렸다. 아니 부패한 악덕 지식 기술자로 남아버렸다. 그래서 나는 이들 지성계가 바로 미국 중산층 몰락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본다. 미국 경제학계에 행동하는 지성인, 아니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양심적 지성인만 있었더라도 금융 위기 발발은 충분히 예측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미국 경제학계는 왜 이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나는 앞서 미국의 정치권을 우리 식의 진보/보수 프레임으로 봐서는 안 됨을 누차 강조했지만 미국 학계, 특히 경제학계를 바라볼 때도 같은 시각이 필요하다. 미국 경제학계에서의 진보/보수 구분은 단지 명목상의 구분일 뿐 실제적인 학문 활동에 있어서는 학자들이 개인적 이익 추구에만 충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미국 경제학자가 케인시언(keynesian: 케인스 학풍에 속한 경제학자)으로 분류된다고 그를 진보로 쉽사리 간주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하이에키언(Hayekian: 하이에크 학풍에 속한 경제학자)으로 분류된다고 그를 보수로 여겨서도 안 된다.

2012년 1월 미국경제학회(AEA)는 시카고에서 열린 연례 총회에서 ‘경제학자 윤리 강령’을 채택했다. 이 윤리 강령 제정은 이미 100년 전부터 끈질기게 학회 차원에서 요구되던 사안이었다. 그러나 월가를 비롯한 대기업으로부터 이런저런 식으로 장학금(?)을 받아 배를 불린 양심 불량 경제학자들(대부분 거무륵ㅂ이다)의 방해 공작에 의해 번번이 좌절되던 것이 드디더 채택되기에 이른 것이다.
덴버대학 조지 드마티노(George DeMartino) 교수의 저서 『경제학자의 선서: 프로 경제학자 윤리 강령의 필요와 내용(The Economist’s Oath: On the Need for and Content of Professional Economic Ethics)』을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1929년 11월 시카고 상공회의는 미국 경제학회 회장에게 경제학자의 윤리 강령으로 어떤 조항이 있는지 문의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에 경제학자는 다음과 같은 답장을 했다. “우리 경제학자들의 별명(middle name: 의역)이 ‘윤리’라는 것을 당신들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정도로 윤리적이라 윤리 강령 같은 것을 따로 두고 있지 않습니다. 따라서 당신들의 문의에 응할 길이 없군요.”

생각해보라. 당시의 경제학자들이 정말로 윤리적이었다면 대공황 발발을 예측하지 못했겠는가. 문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상황이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드마티노 교수에 따르면 이러한 미국 경제학자들의 후안무치한 태도는 1세기 동안 지속돼 윤리 강령 제정은 매우 요원한 일로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경제학자 윤리 강령’이 채택된 직접적인 계기는, 짐작하겠지만 2008년에 발발한 금융 위기다. 미국 경제학자들 중 아무도 금융 위기의 징후를 포착해 예견한 사람이 없었고, 오히려 그런 위기를 만드는 데 일조한 사람만 있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윤리 강령 채택을 가능케 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적지 않은 수의 거물급 경제학자들이 월가의 대형 금융회사 및 대기업과 밀접히 연계돼 있었기 때문이다.

□ 저자는 경북대 사범대 일반사회교육과 교수로 있다. 현대사회학 이론과 근대성, 지식사회학, 현상학 등을 전공했으며, 보스턴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뒤르켐&베버: 사회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방인의 사회학』, 『다시 읽는 막스 베버』(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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