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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적 시간 담론 당위성에 맞서기 혹은 희망 여행
지배적 시간 담론 당위성에 맞서기 혹은 희망 여행
  • 이 원 인천가톨릭대·문화예술콘텐츠학과
  • 승인 2016.11.10 11: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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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시간적 인간: 시계 없는 삶을 위한 인문』 이원 지음|지식의 날개|56쪽|13,000원
▲ 근대적 산업사회의 시간을 다룬 영화 「모던타임즈」의 한 장면.

이 책은 시간의 참다운 의미를 찾아가는 여행이다. 이 여행은 현대사회의 지배적인 시간 담론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곳에서 시작한다. 이 출발점은 이 여정이 결코 쉽지 않을 것임을 미리 암시한다. 지배적인 시간 담론은 오랜 시간을 거쳐 우리 시대에 깊이 공고하게 뿌리내리고 있다. 이 담론은 시간이 인간의 삶 밖에 있는 객관적 대상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인간을 배제한 채 시간을 논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이 담론은 ‘시간이 돈’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시간적 경쟁과 효율성을 강조하고 시간이 성공을 위한 관리의 대상이라고 말한다. 이 담론은 지금 이 순간에도 책으로 신문으로 방송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게다가 이 담론은 단순히 말과 글의 세계에만 머물지 않고 사람들의 몸에 체화돼 행동으로 실천되고 제도로 집행되고 있다. 결국 이 담론은 사람들을 권력의 질서에 순응하는 피동적인 인간으로 만들어 버리고 부조리한 사회의 질서는 계속 유지된다. 

왜곡되고 감춰진 시간의 본질을 다시 찾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이 지배적인 시간 담론에 저항하고 싸울 수밖에 없다. 혹독한 싸움은 쉽게 예견된다. 지배적인 시간 담론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두 괴물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바로 사실·실증주의와 자본주의다. 사실·실증주의 인식론은 객관성의 이름으로 시간을 인간의 삶에서 분리시킨 다음 서로 호환되기 어려운 파편적 시간 지식을 생산하고 확산시켰다. 자본주의는 시간 자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주입하고 시간을 통제의 도구로 만들어 버렸다. 오늘날 고도로 정밀해진 시계는 이런 도구적 시간의 대표적 상징이다. 이 두 괴물은 상호 공생관계를 맺으며 계속 세력을 불려 왔다.

왜곡되고 감춰진 시간의 본질을 찾아서
나는 두 괴물과 싸우기 위해 두 가지 길을 선택했다. 첫 번째 길은 시간을 다시 인간의 삶의 문제로 복원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학문에 산재하는 파편적 시간 지식 간에 다리를 놓아 연결하고자 했다. 실제로 나는 철학,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역사학, 언어학 등을 넘나들어야 했다. 시간을 한 학문의 인식론적 틀 안에 갇힌다면 우리는 결코 다면적인 시간의 본연에 다가갈 수 없다. 두 번째 길은 시간을 역사적으로 추적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시간이 객체적이고 독립적인 대상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상징이자 개념이라는 관점에서 가능해진다. 시간의 개념적 역사는 곧 시간의 역사인 것이다. 나는 다양한 자료를 통해 긴 역사의 흐름 속에 시간의 개념을 바꾼 중요한 계기나 사건을 찾아보았다. 사회학자 엘리아스(Elias)의 말처럼 아래층으로 연결된 계단을 치워버린 100층에 살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왜 100층에 있는지를 알지 못한다. 나는 100층 이전의 계단을 내 나름의 방식으로 다시 복원하고자 했다. 이것은 현재에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는 것이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역사적 배경과 사건을 계기로 사회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다. 시간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밝힌다는 것은 지배적인 시간 담론의 당위성을 해체하는 것이다.

책의 1부와 2부는 이런 저항과 싸움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춰야 할 것인가.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 소위 ‘신화’를 깨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만족할 수 없었다. 나 스스로의 근본적인 고민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집필하게 된 중요한 개인적 동기는 우리 시대의 시간적 문제를 다루면서 궁극적으로는 절망 너머에 희망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추가로 3부를 기획했다. 여기서 나는 나 자신을 비롯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시간적 고민과 문제를 직접 대면하고자 했다. 그 다음 본격적으로 희망을 향한 벅찬 여정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3부를 집필하는 과정은 가장 힘들었지만 동시에 가장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여정이었다.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이 부분에는 나의 고민과 함께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곳곳에 드러나 있다. 그리고 이 시간 여행의 끝에서 내가 갈구했던 자유와 희망의 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결과를 여기서 몇 줄로 요약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는 소설의 줄거리만으로 결코 감동이나 때달음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신 『명리』의 저자 강헌의 흥미로운 일화를 소개하고자 한다.

음악 평론가로 잘 알려진 강헌은 그의 이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명리』라는 책을 집필한 계기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자유분방한 삶을 살던 그는 40대 초반에 자신에게 전혀 맞지 않는 일을 떠맡아 날마다 격무에 시달린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그는 사무실에서 쓰러지고 만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그렇게 홀로 생을 마감할 뻔했던 그는 휴대폰을 찾으러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 대학원 제자의 도움으로 병원 응급실로 옮겨진다. 그리고 ‘대동맥박리’라는 진단을 받고 대수술을 받는다. 담당 의사의 부정적 소견에도 불구하고 그는 23일 만에 기적적으로 깨어난다. 두 달 후 퇴원한 그는 전남 해남의 두륜산 자락에 위치한 시골집에서 요양 생활을 시작한다. 길어야 2년 살 수 있다는 주치의의 말을 들은 그는 허망한 인생을 한탄하며 무기력한 나날을 보낸다. 그렇게 1년을 보낸 후 겨우 걸을 수 있게 된 그에게 어느 날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일이 일어난다. 불현 듯 그가 열아홉 살 때 역술가였던 친구의 아버지를 만난 일이 떠오른 것이다. 그때 그 역술가는 강헌이 40대 초반에 건강의 문제로 인생의 큰 위기를 겪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갑자기 인간의 운명에 큰 호기심을 갖게 된 강헌은 이후 명리학을 독학해 마침내 역술가로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심층적 자아를 만났을 때
나는 그의 일화가 무척 흥미로웠다. 시간적 인간이 가진 기억의 놀라운 힘을 생생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날마다 쫓기듯 수많은 일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서 매 순간 깊이 생각할 여유 없이 즉각적으로 세상의 자극에 반응해야 한다. 이때 정신은 주로 기억의 표층부에 남아있는 경험이나 사건을 동원한다. 즉 ‘표면적 자아’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반면 요양 중이던 강헌은 세상에 즉각적으로 반응할 필요가 없었다. 죽음을 기다리던 그가 하는 일은 날마다 먼 풍경을 바라보는 것뿐이었다. 그러다 기억 심층부 깊숙이 기록돼 있던 24년 전의 일이 떠오른 것이다. 그 순간 그는 ‘심층적 자아’를 만난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심층적 자아를 만나는 것 그 자체가 아니라 심층적 자아를 만나 그의 삶이 새롭게 창조됐다는 사실이다. 24년 전의 사건이 현재에 단순히 회상되는 것이 아니라 24년 동안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해 온 주체를 만나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결국 창조적 시작의 계기가 된 것이다.

나는 강헌의 일화에서 시간적 인간이 어떻게 새롭게 창조될 수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구체적 사례를 발견한다. 오늘날 빠르게 굴러가는 세상은 우리에게 즉각적인 응답과 반응을 요구한다. 이러한 분위기에서 우리는 과연 반복되는 가능성 너머 멀리 새로운 미래의 희망을 꿈꿀 수 있을까? 이런 세상에서 과연 광활한 기억의 대지를 자유롭게 달리며 창조적인 미래를 계획할 수 있을까? 어제와 똑같은 내일을 원하지 않는다면 시간적 인간은 지금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실천해야 할 것인가? 그 답은 ‘시간적 인간’ 속에 있다.

이 원 인천가톨릭대·문화예술콘텐츠학과
필자는 성균관대에서 불문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의 보르도3대학에서 미디어를 시간적 관점에서 바라본 논문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인간의 시간의식과 시간의 역사를 다룬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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