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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복합적 통일 연구의 확장을 위한 40편의 마중물 … “새로운 모델 찾겠다”
융·복합적 통일 연구의 확장을 위한 40편의 마중물 … “새로운 모델 찾겠다”
  • 김성민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장·철학
  • 승인 2016.10.05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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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공동 기획 ‘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_ 1. 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를 시작하며
▲ 김성민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장·철학

최근 북한의 제5차 핵실험이 강행됐다. 당연하게 한국사회의 반응은 거세게 표출됐다. 북한 핵시설에 대한 선제적인 정밀타격 주장부터 북한의 핵사용이 의심되면 ‘평양을 지도상에서 완전히 없앤다’는 보복작전 계획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대응책이 신문과 TV뉴스를 차지했다. 지속적인 ‘대화와 타협’보다는 최고 수준의 ‘제재와 압박’만이 유일한 대응이라는 확신이 더욱 강해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의 분단극복과 통일은, 결코 말해서는 안 되는 일종의 ‘금기어’가 돼버린 것 같다.

그동안 한반도의 구성원들은 남북통일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다. 하지만 요즘을 돌이켜보자. 언제고 실현돼야만 한다는 통일의 믿음은 70년이 넘어서는 강고한 분단의 시간 속에서 희미해져버렸고, 이제 어느 누구도 ‘남북의 통일’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게 됐다. 아니, 상황은 더욱 급변했다. 지금 우리들이 맞이한 북핵문제 등으로 인해 오히려 통일에 대한 강한 회의와 의심을 낳고 있는 요즘인 것이다. 흔히 들을 수 있는 ‘통일비용론’, ‘통일회의론’, ‘평화우선론’ 등 수사는 조금씩 다르지만 맥락은 모두 통일의 필요성과 정당성이 더 이상 우리들에게 통용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줄 뿐이다. 실제로 이미 언론계, 정치계, 학술계가 진단하는 한국사회의 수많은 어젠다 속에서 ‘통일’을 찾기가 힘들어진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통일은 ‘우리들 자신의 분열과 파괴’, ‘치명적인 상처’를 극복하는 문제로서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의 미래를 형성해가는 실천적인 과제라고 할 수 있다. 통일은 특정 정치적 집단들이 독점하고 다뤄야 할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 그 자체와 관련된 문제이자 그들이 해결해야 가야 하는 문제로, 한반도 구성원들의 삶과 직간접적으로 연계돼 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끊이지 않고 발생한 남북의 군사적 충돌이 무감각해지는 것처럼 익숙해져버린 한반도의 분단은 가슴 아픈 고통을 고통처럼, 치명적인 상처를 상처처럼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다. 통일을 우리들이 다뤄야 할 직접적인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한반도의 분단상황이 주는 고통과 아픔을 직시하고 통일에 대한 미래적 비전을 풍부하게 공유하고 체감할 수 있는 생생한 경험들이 우리들에게 제대로 주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일에 대한 생생한 체감이 주어질 수 없었던 데는 한편으로 기존 통일연구가 갖는 자체적 한계에서 비롯됐다고 생각한다. 기존 통일담론은 현재 한반도를 살아가는 구체적인 인간적 삶의 차원이 무시되고 체제와 제도의 통합에 치중하는 흐름이 지배적이었다. 문제는 정치와 경제가 본질적이고 사회와 문화는 부수적이라는 이러한 관점이 결국 남북의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하지 못하게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하지만 통일은 분명 ‘사람의 통일’이다. 새로운 통일한반도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의 주체이자, 실제로 그러한 통합의 대상이기도 한 것은 우리 자신,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들에게 생생히 다가올 수 있는 통일연구는 정치, 경제, 법, 제도와 같은 장치들을 넘어서 인간의 정서, 생활문화, 가치들을 포함하는 구체적인 삶의 배경 속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아가 남북화해와 협력을 위해 남남갈등을 비롯해 남북관계에서 발생하는 사회문화적 갈등을 해결해가고자 하는 문제의식 역시 포함해야만 한다. 최근 들어 우리 사회에서도 통일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낮아지고 있고, 일부에서는 통일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통일과정에서 발생될 여러 가지 갈등의 극복, 통일 이후에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에 대한 탐구, 또 이러한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것들에 대한 폭넓은 모색 등 통일에 대한 냉철하고 섬세한 연구다.

분명 분단 극복과 통일의 의미는 서로 이질적인 체제, 제도, 이념 속에서 살아온 두 집단이 서로 ‘소통’함으로써, 분단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하고,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새로운 민족공동체로의 ‘통합’을 만드는 것으로 새롭게 규정돼야 한다. 그렇기에 우선적으로 분단현실이 낳은 아픔과 상처를 체감하는 자세가 한반도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요하다. 나아가 한반도의 분단은 휴전의 상태를 의미하기에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인식해야만 할뿐더러, 한반도의 통일이 줄 수 있는 ‘실효적 효과’에도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야 할 것이다. 이때 핵심은 우리들의 삶을 힘들게 했던 다양한 고통과 아픔을 치유하고 남과 북 주민 모두 현재보다 편안하고 행복한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미래적 전망이다.
분단체제의 극복과 평화로운 한반도로의 이행이 한국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라고 한다면, 연구자들에게도 이러한 전망들은 결코 외면할 수 없다. 모든 학문의 시작은 우리가 사는 ‘지금, 이곳’에 대한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했다. 철학만 하더라도 ‘지금, 이곳’에 대한 ‘의심과 경탄’, ‘반성과 비판’으로부터 시작됐다. 이렇듯 학문은 구체적인 사회현실과 괴리된 채 남겨질 수 없다. 개별학문이 전문적으로 발전하고 세분화된다고 하더라도 학문의 근본적 문제의식은 우리들에게 고스란히 남겨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이곳’에 대한 문제의식을 관통하는 것이 바로 한국의 분단상황과 통일인 것이다.

하지만 통일에 대한 미래적 전망들을 구체화하기 위한 연구는 특정한 분과학문이 주도하거나 특정 학문에 종사하는 개별적 연구자들이 단독적으로 담당할 수 없는 방대한 과제다. 특히나 통일연구가 통일의 구체적이고 실효적인 대안들을 도출할 수 있기 위해선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학 분야의 연구성과들이 함께 결합돼야만 가능할 것이다. 예를 들어 분단체제의 극복을 위한 ‘남북의 민족적 연대’를 위해서는 실질적인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성과가 결합될 필요가 있고, 통일한반도의 미래적 가치인 ‘생명과 평화’가 구체화될 수 있기 위해선 에너지, 농생물학, 의학 등의 연구성과가 결합돼야 하며, 통일과정뿐만 아니라 통일 이후에도 한반도에 필요한 ‘민주주의와 인권’과 같은 이념들이 정립될 수 있기 위해선 정치학과 법학을 비롯한 사회과학의 결합이 무엇보다 요구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통일연구의 미래는 곧 융복합적 통일연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1여 년 동안 이곳 <교수신문>에 40회에 걸쳐 실리게 될 글들은 ‘통일 과정’에서 시작해 ‘통일 이후’까지를 미리 상정한 통일연구, 국가 간의 법·제도적인 통일뿐만 아니라 여전히 남게 될 수밖에 없는 ‘사람의 통일’까지 염두에 둔 통섭·융복합적 통일연구의 모델들이다. 이 기획은 ‘통일연구의 새로운 모색’, ‘냉전과 이산, 식민화의 경험’, ‘코리언 디아스포라’, ‘분단의 상처와 치유’, ‘분단국가의 상징폭력’, ‘탈북자의 현재와 통합’, ‘통일 아동문학’, ‘통일한반도의 법제’, ‘남북 산업협력’, ‘통일문화의 형성’, ‘남북 사회문화’ 등 총 11개의 주제로 구성돼 있다. 나아가 인문학과 사회과학, 사회과학과 자연과학, 자연과학과 인문학이 만나 통일연구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고 융복합의 비전 위에 지속 가능한 통일한반도의 미래를 탐색할 예정이다. 이러한 글들이 궁극적으로 목적에 두고 있는 것은 통일연구가 결코 분과학문 내부에만 머무를 수 없으며 학제간 경계를 뛰어넘는 융복합의 연구가 돼야 한다는 점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통섭 또는 융합’, ‘학제적 또는 다학문적’이라는 말은 모두다 철학, 문학, 역사학, 정치학, 사회학 등 개별적인 분과학문체계를 벗어나 여러 전공들이 함께 하나의 주제를 연구하자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실제로 하나의 현상이나 연구 주제가 복잡한 요소들에 의해 구성돼 있기에 그러한 것이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통섭적/융합적’이라는 말과 ‘학제적/다학문적’이라는 두 개념은 서로 다르다. ‘학제적·다학문적(interdisciplinary)’이라는 말은 ‘학과’ 간의 공동 연구를 말한다. ‘inter’(상호)+‘disciplinary’(분과), 즉 각 분과학문을 기반으로 하여 상호 결합하는 것으로, 기계적 결합을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統攝(consilience)’은 분과학문체계를 아예 벗어나 함께 결합하자는 것으로 유기적인이고 화학적 결합을 지향한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에드워드 윌슨이 이야기 하는 ‘통섭’은 생물학적 제국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19세기에 윌리엄 휴얼이 주장한 ‘consilience’, 즉 ‘jumping together’라는 의미를 살려 그 어떤 분과학문에도 패권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통섭’은 유기적 결합에 근거한 연구를 지향하는 개념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말하는 ‘통섭/융합’은 후자를 염두에 두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앞으로 연재된 글들이 통섭·융합적 통일연구 자체일 수 없다. 통일연구는 그간 북한학, 통일학, 평화학 등 거의 대부분 분과학문의 틀 안에서 진행돼 왔다. 자연과학, 사회과학, 인문학 등이 결합된 통일연구는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기획연재의 의의는 바로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동일한 하나의 주제에 대해 각기 다른 분과학문의 전공연구자들이 집필에 참여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그 동안 극소수에 불과했던 인문학적 통일연구를 비롯해, 식민·이산·냉전의 고통과 아픔에 대한 사회학적 연구, 분단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법학적·정치학적·문학적 연구 등이 이번 연재에 포함될 것이다. 나아가 남북사회문화 통합을 위한 인지과학적·뷰티융합적·ICT 연구 및 남북의 경제협력과 관련된 이공학적·사회과학적 연구들도 소개될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칼럼들은 어떠한 토대도 없이 단순하게 일회적으로 기획된 것이 아니다. 이번 칼럼들은 ‘건국대 통일연구네트워크’라는 통일연구의 유기적 연구협력체계로부터 시작됐다. 건국대 통일연구네트워크는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3가지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첫째, 통일연구가 단순한 정치경제적인 ‘제도의 통일’을 넘어 남북 주민들의 가치와 정서, 문화를 포함해 삶과 제도 모두를 통일하는 ‘사람의 통일’로 나가야 한다. 둘째, 통일에 관한 ‘이론적 연구’가 남북의 적대적 대립을 극복하고 사회적 실천이 추동되는 ‘실천적 연구’로 나아가야 한다. 셋째, 하나의 민족이니까 당연히 통일해야 한다는 ‘당위적 구호’를 넘어 남과 북이 현실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과 협력과제를 제안하고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실효적 대안 제시’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연구는 이전까지 진행돼 왔던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의 개별 분과 학문적 틀 안에서는 수행될 수 없는 것이다. 건국대 통일연구네트워크는 바로 이와 같은 개별 분과 학문적 틀을 넘어서는 학제적이고 융합적인 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필요성에서 출발했다.

통일연구의 미래는 통일연구네트워크가 시작된 문제의식, 곧 융복합적 통일연구다. 통일연구가 제대로 이뤄지기 위해서는 각 학문의 분과체계와 연구전통에 따른 틀을 벗어나 때론 상호 충돌하는 문제들을 격렬하게 토론하면서 조정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융복합적 통일연구의 확장은 통일연구의 도약을 위한 핵심적 과제가 될 것이다. 현재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러한 융복합적 통일연구의 마중물이 아닐까 한다. 앞으로 이어질 40편의 글들이 더 큰 물을 길어내기 위한 마중물의 역할을 하길 바래본다. 마지막으로 이번 기획을 통해 분과 학문 사이의 경계를 넘고 유기적으로 협력함으로써 연구역량의 도약이 이뤄지길, 나아가 이러한 과정 속에서 많은 시민들의 공감을 얻어 사회적으로도 확산될 수 있는 진실한 통일연구의 새로운 모델이 제시되길 기대해본다.

김성민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장·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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