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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풍 서강대 총장 ‘분노의 사퇴’, 왜?
유기풍 서강대 총장 ‘분노의 사퇴’, 왜?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6.09.29 1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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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가 이사회 장악 … 이사회는 바지저고리 불과”

남양주 제2캠퍼스 사실상 무산 “예수회 책임” 주장
2013년 김정택 신부 총장선거 낙선하자 이사장 추대 
유 총장 “교수를 총장에 선임한 데 따른 보복성 인사”

유기풍 서강대 총장이 임기 5개월을 남기고 돌연 사퇴했다. 한국예수회가 이사회를 장악해 전횡을 휘돌렀다는 것. 유 총장과 예수회 간 충돌은 남양주 제2캠퍼스 건립이 무산 위기에 놓이면서 본격화 된 것으로 풀이된다. 

▲ 유기풍 서강대 총장

유 총장은 29일 오후 2시, 서강대 본관 대회의실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사퇴의사를 밝혔다. 유 총장은 작심한듯 A4용지 5장 분량의 장문의 사퇴서를 통해 총장선출 과정부터 임기 내내 빚어진 예수회의 전횡을 낱낱이 고발했다.

유 총장은 “지금 서강은 1960년 개교 이후, 최대의 혼란과 위기 상황으로 빠져들고 있다. 남양주 캠퍼스 프로젝트의 좌초 문제로 시작해서 예수회 중심의 지배구조 문제에 이르기까지, 서강공동체를 뿌리째 흔들고 있는 혼란과 갈등이 날로 격화되고 있다”라고 포문을 열었다. 

남양주 제2캠퍼스 건립 무산 등의 근본 원인으로, 무능한 재단 이사회와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예수회의 집단이기주의·전횡을 지목했다. 총장 임기 내내 이사회의 과반을 차지한 예수회가 이사회의 상위기관으로 군림해왔다는 것이다. 

무산 위기에 놓인 남양주 제2캠퍼스 프로젝트는 유 총장이 산학부총장을 지내던 지난 2009년부터 착수해 2013년 7월 이사회 승인을 받아 시작됐다. 유 총장은 “당시 정관을 고쳐 설립기획단을 이사장 산하에 설치하고 운영했지만, 본격적으로 추진되는 단계에 이르자 예수회원들이 반대해 사업이 무산됐다”고 설명했다. 또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예수회가 반대하는 한 (총장으로서도) 달리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 5월과 7월, 이사회는 재정 부담과 정원 문제 등을 이유로 들며 ‘교육부 대학위치변경 승인신청’ 안건을 연이어 부결시켰다. 남양주 제2캠퍼스사업이 일시적 중단이 아닌 ‘사실상 무산’이라는 전망은 이때부터 나왔다. 이에 대해서도 유 총장은 “지엽적인 핑계거리에 불과하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예수회가 변화와 개혁과정에서 우려되는 불확실성을 용납하지 않는 폐쇄성 탓에 캠퍼스 건립이 무산됐다는 것이다.

유 총장이 고발한 예수회의 전횡 의혹은 이사회 장악과 개혁에 소극적인 의사결정과정에 그치지 않았다. 유 총장 본인이 총장에 선출되는 과정에서도 이미 한 차례 보복성 인사가 단행됐다는 것이다. 2013년 총장선거에서 당시 대외부총장을 맡고 있던 교수 출신의 유 총장이 1위를 했고, 김정택 신부가 2위를 기록했다. 유시찬 당시 이사장은 유 총장을 총장에 선임했고, 예수회는 곧바로 김정택 신부를 17대 이사장에 선임하는 보복성 인사를 단행했다는 게 유 총장의 주장이다. 김정택 이사장은 지난 5월 19일 이사장직을 사임했다.

이날 유 총장은 “예수회는 나를 선출한 이사회 의장인 유시찬 신부를 즉각 시골로 쫒아 냈으며, 경쟁에서 패배한 김정택 신부를 후임 이사장에 앉혔다”며 “이사장 신부가 관구장의 지시를 어기고, 신부 총장을 뽑지 않고 교수 총장을 뽑았다는 이유로 취해진 징계조치였다”고 폭로했다. 

자진사퇴한 유 총장은 예수회가 학교 경영에서 손을 떼고(이사회 내 예수회 구성비율 축소) 이사회의 위상을 바로 세우는 ‘지배구조의 정상화’를 요구했다. 유 총장은 같은 내용으로 지난 19일 로마 예수회 총원에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유 총장의 ‘분노의 사퇴서’로 인해 예수회와 서강대 구성원 간 갈등의 골은 한층 더 깊어질 전망이다. 지난 19일 서강대 총학생회는 교내 청년광장에서 전체총회를 열면서 재학생 1천여 명이 참여한 촛불시위를 진행했다. 이날 학생들은 ‘한국 예수회에게 바치는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면서 기능을 상실한 이사회의 퇴진을 요구했다. 유 총장의 사퇴가 학생들을 비롯한 구성원들에게 어떤 신호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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