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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방침 바꾼 유니세프에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교육 환경 조성하겠다” 설득
원조 방침 바꾼 유니세프에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교육 환경 조성하겠다” 설득
  •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
  • 승인 2016.09.1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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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40년을 말하다_ 12. 연구의 낙수, 아동프로젝트Ⅱ
▲ 유니세프지원의 아동개발사업 워크숍에 관련 인사들이 참여했다. 앞줄(앉은줄) 오른쪽에서 두번째(안경)가 이성진 교수다.

한국행동과학연구소(KIRBS)가 창설 때부터 아동연구를 해왔다는 것은 앞에서 누차 말한 대로다. 지능발달에 관한 연구를 시작으로 다수의 아동 관련 연구를 수행했다. 하지만 우리는 이론적 연구에만 머물지 않고 궁극적으로 아동의 발달을 촉진하는 데 이바지하기 위한 실제적 응용연구에도 신경을 썼다.
1970년대 초반에 수행한 취학 전 교육에 관한 연구와 당시의 유치원 교육의 문제점을 확인하기 위해 진행한 연구 등, 실제적 문제를 겨냥한 비교적 규모가 큰 연구들은 장차의 취학 전 교육계획 개선과 그 질적 향상에 중요한 정보를 준 중요한 연구들이었다.

우리 연구소는 1970년 중반부터 문교부와 보건사회부(보사부, 지금의 보건복지부)의 행정적 후원과 유니세프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 유아연구와 유아교육에 관한 연구에 참여했다. 그 이후 1994년까지 근 15년 동안 한국의 유아교육 정착, 유아교육 관련 자료의 개발,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부모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실천, 탁아소 계획의 수립에 깊이 참여했다. 이 일련의 유아 관련 연구와 교육의 변화 도정에 우리가 유니세프와 함께 일한 일들의 편린을 적으려고 한다. 앞글에서 쓴 내용과 약간 중복되지만 유니세프와의 관계에 관한 것이어서 피할 수 없다.

유아교육이 정상 궤도에 오를 때까지
정부와 유니세프는 모두 유아교육과 복지에 관심이 있었지만, 그들 관심의 초점은 조금씩 달랐다. 문교부는 유치원 등 학교라는 제도적 체제에서의 아동교육에 주된 관심이 있었다. 교육 관련 이슈인 敎育課程, 교사교육, 교육에 필요한 자료의 제작 등에 주목했다. 보사부는 아동의 복지와 건강에 관심이 높았다. 그들은 육아시설, 아동의료, 모자보건, 아동보호, 아동상담 등을 유념할 일로 봤다. 국제기구인 유니세프는 아동의 긴급구조에 집중적인 관심을 가지고 아동의 영양과 건강관리 등과 관련된 활동을 했다. 저소득층 아동이나 리스크가 큰 아동들에 특히 관심이 많았다.

1970년대는 한국사회가 유아교육에 대한 관심을 서서히 높여가고 있던 때였다. 문교부는 유치원 교육과정을 제정하는 등 유아교육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1970년대 후반 약 5~6년간 문교부, 보사부, 유니세프가 우리 연구소에 많은 연구 프로젝트를 의뢰해왔다. 한국의 유아교육이 정착해가는 시기였기 때문에 여러 가지 연구와 준비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유치원 교육과정 개선방안, 유아교육 프로그램과 교재·교구의 개발, 유치원 교사용 지도 자료집, 교사 교육자료의 개발, 유아교육 요구 조사, 저소득층 자녀교육 현황 조사 등 다양한 측면의 정보 입수와 연구를 KIRBS에 의뢰했다.

유아교육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교육기회가 확대되면서 유치원 취원율이 빠르게 상승하기 시작했다. 국가 차원의 제도 준비와 정비에 박차를 가하게 되면서 한국 유아교육은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나갔다. 유아교육 발전에 탄력이 붙었다. 한국 유아교육이 본궤도에 오르는 데는 유니세프의 공헌이 컸다.
유니세프는 KIRBS가 진행하고 있는 아동 프로젝트를 지원하면서 한국의 유아교육이 정착해가는 과정을 목격했다. 그러던 중 유니세프의 원조 방침에 변화가 오는 듯했다. 1980년 말에 유니세프 한국 대표인 맥베인(McBain) 씨는 ‘이제 한국의 유아교육이 본궤도에 올랐으니 한국에 대한 연구비 원조를 중단하겠다. 그러니 한국 정부가 KIRBS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계속 지원해 주기를 바란다’는 취지의 공한을 정부에 보내고 그 사본을 내게도 발송했다.

유니세프 한국 대표부가 그런 결론을 내린 경위는 다음과 같다. 1980년 초에 맥베인 씨가 한국의 유아프로젝트에 대한 원조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유니세프 본부에 갔다. 그가 돌아와서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동안 한국의 프로그램을 도와 이제는 일이 잘 진척돼가고 있고 국가의 경제력과 유아교육에 대한 의지도 강하니, 유니세프가 더 돕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 유니세프는 이제 한국보다 더 빈곤한 다른 국가를 원조하는 것이 그들의 기본 방침이라는 것이다. 설득력 있는 논리였다. 멕배인 씨는 이런 방침을 정하기 전에 한국 유아교육프로그램의 효과를 검증하는 연구와 유치원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연구를 지원하고, 자신이 이미 언질을 준 대로 앞으로 몇 년 동안만 지원하겠다고 했고, 그 뒤로는 한국 정부가 맡아 주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유니세프의 논리는 합리적이었고 누구나 쉽게 설득당할만한 논리였다. 우리로서도 언제까지 국제기구의 처분을 바라는 처량한 신세를 면치 못하고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경제적으로 빈곤에서 벗어났고 유아교육이 유니세프의 도움으로 꽤 진흥되는 궤도에 들어섰다. 교육열도 높았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연구소는 벌려놓고 하고 싶은 연구가 많았고 아직은 外援이 아쉬운 처지였다. 갑자기 그 재원이 끊어진다고 하니 우리는 약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무작정 수세에 빠져 있을 수도 없고, 더구나 구걸의 태를 보일 수 없기에 유니세프가 납득할만한 그럴듯한 구실을 찾아야 했다.

결국 아동 프로젝트의 초점을 유니세프의 철학과 방침에 맞게 고쳐서 설득에 나서기로 했다. 유아교육이라고 하는 개념보다 저소득층 아동에 대한 원조를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논리는 ‘한국에는 아직도 경제적으로 절대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많은 벽촌 및 도시 저소득층 아동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유니세프의 방침에 합당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유니세프가 여태까지 한국 유아교육의 진흥을 위해 KIRBS에 연구용역을 준 것은 큰 성공을 거뒀다. 한국 정부도 농어촌 벽지와 도시 저소득 지구의 아동들을 위한 더 적극적인 배려를 계획하고 있음을 내세워 설득에 나섰다.

구체적으로 당시 청와대의 교육문화수석비서관인 이상주 박사(훗날 문교부 장관과 여러 대학의 총장을 역임)는 평소에도 유아교육에 남달리 관심이 많았다. KIRBS와 유니세프의 관계를 잘 알고 연구소가 빈곤층 아동 연구와 교육에 공헌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정부의 도움을 다짐해주고 있던 터였다. 또 당시 문교부 장관이었던 故 李奎浩 박사는 1980년 연말에 대만으로 출장을 떠나면서 나에게 문교부가 교사지침서, 아동학습자료, 부모교육 프로그램 등 장학자료의 개발을 KIRBS에 위촉하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의 고위층이 저소득 지역의 아동을 위한 프로젝트를 전방위로 지원하겠다고 하니 유니세프도 안도했을 것이다. 정부의 지원을 업은 KIRBS의 아동 프로젝트가 강력하게 추진되는 일에 유니세프가 참여한다는 것은 그들의 공헌으로 돌릴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것이 유니세프에 대한 강력한 설득 포인트가 됐다.

가정 중심 부모교육 프로젝트와 탁아 연구
우리의 유아 프로젝트는 이렇게 해서 한 고비를 넘기고 열악한 환경의 아동을 위한 가정 중심 부모교육 프로그램(Home-Based Parent Education Program, HOPE)으로 연결됐다. 이를 계기로 1980년에 들어와서 KIRBS의 연구활동은 새롭게 활기를 되찾았다. 1978년 유니세프로부터 이미 향후 수년간의 후원에 대한 언질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체의 연구와 유아교육 관련 프로그램 개발, 69여개의 협력 유아원 운영 감독·관리, 20개 저소득층 지역의 시범 유치원 장학지원, 교사교육 등으로 寧日 없이 일해나갔다. 그 무렵 유니세프는 랄프 디아즈(Ralph Diaz)씨가 새 대표로 와서 HOPE 일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정부도 이 프로그램을 행정적으로 후원해줬다.
우리가 이름 붙인 가정 중심 부모교육 프로그램은 유치원에 취학하기 전인 0~3세 아동들의 부모를 대상으로 그들에게 바람직한 아동 양육의 태도를 가지고 아이가 태어나서 3년 동안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환경을 마련해주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프로그램의 진행에는 중앙대, 숙명여대, 전남대, 부산대 등의 유아교육학과 대학원생들이 참여해 도움을 줬다. 물론 프로그램에 대한 평가가 이뤄졌을 때 ‘효과있음’이 판명됐다.

우리는 정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당시 연구소의 아동발달 부장이었던 이기우 선생의 노고는 잊을 수 없다.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준비를 하고 있던 바쁜 때 이 프로젝트에 전력투구했다. 나중에 한국창의성연구소를 설립해 십수 년 동안 운영하다가 지금은 수도권에서 창의나라유치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리의 체험을 엮어 PARENTS KNOW BEST(영문, 263쪽)라는 0~3세 아동 양육지침서를 써서 유니세프를 통해 동남아 여러 나라에 배포했다.
가정 중심 부모교육 프로그램은 열악한 교육환경에서 성장하는 아동들의 환경조성에 공헌했다고 믿는다. 우리는 우리가 뿌린 씨가

싹을 잘 틔우면서 이 프로그램이 희망(hope)을 품고 싱싱하게 꽃펴 자라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우리의 소망과는 달리 시간이 가고 세상사가 변해감에 따라 정부의 방침도 달라지면서 실현되지 않았고, 유니세프는 1994년에 유니세프한국위원회로 변신했다. 우리의 희망 프로그램은 이렇게 끝났다.
사회변천에 따라 1990년 전후에 한국은 경제적 풍요와 자유와 평등의식이 팽배해지면서 여성의 사회진출 기회가 확대됐다. 아이들이 자랄 곳은 가정이라고 하면서도 탁아와 보육시스템이 가정의 대안으로 부각됐다. 우리는 이 변화를 준비하는 연구에 또 동원돼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1990년부터 탁아사업 시행과 관련된 기초연구를 위시해서, 탁아수요 조사, 부모의 요구조사, 어린이집 시설 및 운영실태 조사, 보육교사 양성교재 개발 등 한국 탁아 및 보육 서비스에 관해 종합적 연구를 했다. 그리고 우리는 물러섰다.
한국행동과학연구소는 순수연구에 일차적 관심을 가진 연구소다. 하지만 아동 프로젝트를 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아동의 복지와 교육에 관심을 두지 않을 수 없었고, 그 일에 스스로 그리고 기꺼이 말려들었다. 그동안 유니세프 외원의 가탈도 있었으나 그것은 사소한 역정으로 간주할 수 있었다. 10여 년 동안 우리나라 유아교육, 특히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교육적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준 유니세프는 분명 고마운 파트너였다.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대한민국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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