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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인식론에서 길어낸 ‘조선적 이미지즘’의 길
은유의 인식론에서 길어낸 ‘조선적 이미지즘’의 길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8.17 16: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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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용과 김기림의 이미지즘의 정체는?

한국 시문학사에서 빛나는 별, 좀 더 친근한 이들을 뽑는다면 누굴 고를까. 「고향」이란 노래로 더 알려진 시인 정지용이라면 다들 친근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지만 김기림을 가리켜 ‘친근한’ 시인이라고는 하지 않을 것이다. 둘 다 이미지즘과 관련 깊은 시인임에도 한 사람은 친근하게, 다른 한 사람은 조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두 시인의 내력인 동시에 한국 시문학사의 어떤 전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서울대 기초교육원에서 강의하고 있는 나민애 박사가 최근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어 『1930년 ‘조선적 이미지즘’의 시대: 정지용과 김기림의 경우』(푸른사상, 341쪽, 26,000원)를 내놨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 ‘조선적 이미지즘’이란 용어 때문이다. 저자는 두 시인의 행보가 결국은 ‘조선적 이미지즘’으로 이어진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것은 “애초 만석꾼 부자로 출발하지 못했던 우리 시단을 밝고 아름답게 밝혀주는 등불과도 같”은 무엇이다. 저자는 이를 “‘조선적 이미지즘’은 가시적인 스펙터클에 매혹된 시인의 모습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근대 현실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상상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조선 문단에서 이미지의 특수성을 밝히는 연구는, 비단 근대적 문명에 대한 受容과 反射의 작업을 넘어 새로운 板을 꿈꾸고 상상 세계를 지향하면서 시적 세계를 구축하는 일이 1930년대 근대문학의 가치관이었음을 논증하는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한다.

한국 시문학사에서 ‘이미지즘’은 1920년대와 1930년대에 걸쳐 수용된 외래 사조다. 여기에는 근대적 조선 문학의 성립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다. 이미지즘은 서구의 이국적 풍속에 대한 나열, 또는 의미가 부재하는 이미지의 향연에 그치지 않는다. 정지용과 김기림, 김광균과 신석정, 장만영과 장서언, 박재륜과 조영출 등 당시 많은 시인들이 이미지즘과 관련돼 있다. 그렇기에 이미지즘에 대한 재고는 조선 근대문학의 형성 과정 고찰과 무관하지 않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저자는 1930년대 이미지즘의 대표 시인인 정지용과 김기림의 문학 세계를 고찰한다. 정지용과 김기림에게서 확인한 이미지즘의 조선적인 특질을 바탕으로, 제목에서 보이듯이 ‘조선적 이미지즘’이라는 용어를 제언한다. 저자는 이미지즘에 ‘조선시’의 단초가 담겨 있고, 조선적 근대문학의 구상이 동반되고 있으며 서구 이미지즘에 대한 주체적인 변용이 있다는 점을 그 용어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주요 관련 부분을 발췌했다.
정리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조선의 1930년대은 식민 체제의 지배 야망이 극에 달하고 근대화의 최절정기를 맞았던 시기다. 그렇다면 이 말은 식민 체제의 은유와 근대화의 은유 역시 가장 막강하고 폭넓게 확산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필 동일한 시기에 조선 문단에서도 은유가 가장 활발하고, 정교하게 개발됐던 것은 단지 우연의 소산이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을 전제하다면 조선의 이미지즘 역시 식민지화, 근대화되는 조선 사회 자체가 은유적으로 구조화됐다는 사실과 무관할 수 없다. 이렇게 강압적인 은유의 시대에 대응해 문학적이고 주체적인 은유를 선보인 것이 바로 ‘조선적 이미지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식민 체제와 근대화의 은유에 대응하는 은유의 주체적인 방식이 정지용과 김기림으로 대별되는 이미지즘을 통해 구체화됐다. 이미지즘이 서구 사조가 이입된 결과만이 아님을 강조하는 이유 역시 조선적 이미지즘에는 조선만의 개성적인 은유와 이미지를 확립하려는 주체적인 시도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 주체적인 시도에 대한 인식론적인 은유 분석을 통해 볼 때, 당대 이미지스트들은 조선 반도를 문학적이며 민족적인 상상의 공간으로 재기술했다. 즉, 현실에 지배적이고 체제적인 은유의 압박이 만연할 때 이미지즘 시인들은 주체적인 은유를 창조해 이에 대응하고자 했다.

정지용과 김기림의 은유는 이러한 식민 체제의 은유적 심상지리 위에서 그 의의를 탐색할 필요가 있다. 정지용 등의 은유가 식민지학의 은유적 심상지리와는 전혀 다른, 새롭고 주체적인 심상지리를 형성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일제의 은유적 동일화의 강제와 차별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1930년대 이미지즘은 주체적인 은유의 세계를 확립하며 가장 강렬한 문학적 저항의 모습을 보여줬다. 일본이 조선이라는 ‘바탕 공간’을 가지고 內地라는 ‘소망 공간’을 지향했다면, 조선 이미지즘의 은유는 조선 반도라는 ‘바탕 공간’을 가지고 새로운 조선 반도라는 ‘소망 공간’을 구현하는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조선의 지리를 재편해서 드러낸 문학적인 토폴로지의 형성은 이 시기 이미지즘의 시대적 의의를 드러낸다. 이것은 민족주의라든가 독립의 열망과는 또다른 주체적인 노선으로서 현실에 토대를 둔 조선 문학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필자가 이미지즘의 ‘회화성’이 아닌 ‘공간성’을 강조하는 것도, 그리고 그 공간성의 구성 요소인 이미지와 그 이미지를 상상의 공간으로 인도하는 은유를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일본 제국주의에서 강요하는 식민 체제의 은유와 근대화가 강요하는 문명의 은유는 조선의 정체성을 소외시킨다. 정지용과 김기림은 이 소외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조선적 정체성을 복권하는 일은 복고주의적 과거 회귀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일본 식민 체제의 은유, 근대화의 은유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과거 유산과 현대적 문제점이 충돌하는 지점에 새로운 지도와 주체적 은유를 확립하는 일이 필요하다. 주어진, 근대화의·식민 체제의 은유적 허상에 사로잡히지 않기 위해서는 주체적이고 독자적인 은유의 독법을 개발해야만 한다. 모순으로서의 현실 은유를 걷어내는 주체적인 문학 은유의 확립을 위해 정지용 등은 이미지를 강조했고, 이 이미지를 통해서는 공간의 재건설과 재기술이 이뤄졌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정지용이 조선의 지리를 상상적인 화원으로 의미화하면서 물리적인 지리를 토폴로지의 수준으로 재편하는 것, 김기림이 서판적 상상력을 토대로 전복적인 상상-판을 구축하는 것은 식민 체제하의 조선 지리를 구원적 은유의 세계로 건너가도록 해준다. 식민주의 사고방식에서 기획된 이미지가 재생산·파급되는 상황에서, 이에 맞서는 조선 시인들의 시적 이미지의 생산 방식이 어떠했는지를 규명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미지는 단순히 소재의 반영과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시대적인 문제와도 결부돼 있는 것이다. 조선적 이미지즘의 이미지는 기교와 언어의 문제를 넘어 현실적이고 주체적인 문학 정체성에 관계된다는 점에서 재고될 필요가 있다.

당대 이미지즘의 이러한 시대적 의의에 착안한다면 조선 문단에서 이미지즘이 지닌 의의는 상당히 적극적이며 주체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일제의 심상지리에 맞서는 조선 반도의 심상지리, 일제의 은유에 대항하는 조선 문학의 은유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이것은 문학으로 만든 자기 정체성이자 민족적 정체성의 구현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정체성이 제국주의의 아래에서 창씨개명의 정체성으로 와해돼가는 시기에 조선 문단은 ‘문학의 위기설’을 제창했고, 그러한 1930년대의 요청 앞에 이미지즘은 조선적인 방향으로 적용·발달했던 것이다. 정지용과 김기림이 은유적인 현실의 모순에 문학적이고 은유적인 방식으로 대치한 결과, 현실에는 없으나 문학의 세계에서는 능히 꿈꿀 수 있는 상상세계의 공간을 명확하고 선명한 이미지로 구현해냈다. 그것은 개인의 내밀한 감각을 넘어서 공동체(민족)의 정신이 노닐 숨터로서의 상상적 공간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 공간의 토대와 윤곽과 구조를 만드는 하나하나가 바로 정지용과 김기림의 이미지들이고, 이미지들에 창조력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은유의 인식론이다.

궁극적으로 김기림과 정지용의 이미지스트적인 공통점은 ‘樂土’를 재창조했다는 것이다. 상징주의나 낭만주의에서 강조했던 것은 감정과 정신(영혼) 그 자체였다면, 이미지즘은 불확실한 정신 자체가 아니라 정신들의 장소를 마련함으로써 그것이 유지될 수 있는 가능성을 부여했다. 공동체의 정신적 숨터가 있어야 공동체적인 정신이 배양·성장할 수 있다. 이러한 정신적 성장의 모색과 형성이 정지용과 김기림의 이미지즘적인 문학 세계다. 구체적으로 그것은 정지용에게는 토폴로지의 ‘화원’으로, 김기림에게는 천상과 지하의 전복적 공간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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