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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이 좋다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6.08.1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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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少年及第! 대학 졸업 전에 고시에 합격한 이들을 검찰청이나 법원 등 관공서 주변에서 칭송할 때 쓰는 말이라고 한다. 최근 관심의 대상이 된 진경준 검사장은 스물한 살에 사법시험, 이듬해에 행정고시에 합격했고, 우병우 민정수석은 스무 살에 사법시험, ‘개·돼지 발언’으로 파면된 나향욱 씨는 스물셋에 행시에 합격했다고 한다. 초년에 출세해 권력을 얻은 이들은 30여 년 인생길이 반듯하게 뻗은 고속도로 같았을 것이다. 이들의 추락은 그래서 더욱 세인들에게 분노감을 갖게 한다.

▲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이 사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광화문 교보빌딩의 ‘글판’이 유독 눈에 들어왔다. “구부러진 길이 좋다/ 들꽃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라는 글귀가 비뚤한 골목 풍경 그림을 넣은 시원한 캘리그래피로 걸려 있다. 이준관 시집 『부엌의 불빛』(시학, 2005)에 실린 「구부러진 길」의 일부다.

원문을 마저 읽어 보자.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생활을 핑계로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고 사는 대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나 자신과 한번쯤 직면해 볼 때가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때마침, 자신을 직면하기 위해 산자락을 헤맨 이를 만났다. 『지리산 암자 기행』(미래의 창, 2016)을 쓴 김종길. 그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서 “더 이상 오지가 없는 시대에 산속에 홀로 핀 꽃, 암자를 찾는 것은 종교를 넘어 오래된 향기를 찾아 마음과 정신에 고요와 평온과 적정을 찾기” 위해서 길을 떠났다고 했다. 10여 년에 걸쳐 50여 곳을 순례했고 그 중 23곳을 다시 돌아보는 과정을 세세하게 기록한 책답게, 지리산 암자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출발해 불교와 우리의 역사, 문화, 정신이라는 보편성의 바다로 독자를 이끌고 있다.

저자의 눈길과 마음결이 섬세하다. “인기척이 없다. 법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안을 흘깃 보니 비구니 스님 한 분이 마루에 앉아 가만히 나물을 다듬고 있다. 그 무심함을 깨뜨릴 수 없어 한참을 서성거렸다. 그 정적 속으로 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기를 한참, 조심스럽게 스님에게 길을 물었다.” 이런 마음으로 저자는 한 걸음 한 걸음 독자를 인도하며 선방 문고리만 잡아도 성불한다는 벽송사, 참선하기 좋은 곳 상무주암, 지리산 최고의 전망대 금대암, 선승들이 평생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했다는 묘향대, 섬진강을 굽어보는 피안의 땅 연기암 가는 길을 걷는다.

그러다가 ‘무엇을 구하러 이 지리산 오지를 헤매고 있단 말인가. 봄이 왔다고 해서 찾아 나섰다가 어디에도 없어 집으로 돌아왔더니 뜰에 핀 매화에 봄이 있더라는 어느 시처럼’ “결국 모든 것은 ‘저기’가 아닌 ‘여기’, 자신에게 있다”고 견성의 경지를 말하기도 한다.

선인들의 산행은 어땠을까. 조선 8대 문장가로 꼽히는 송익필은 “산길을 가다 보면 쉬는 것을 잊고/ 앉아서 쉬다 보면 가는 것을 잊네/ 소나무 그늘 아래 말을 세우고 짐짓 물소리를 듣기도 하네/ 뒤따라오던 사람 몇이 나를 앞질러 가기로손/ 제각기 갈 길 가는 터 또 무엇을 다툴 것이랴”(「산행」 전문)라고 노래했다. 삶의 보폭이 다르다 해서 누가 앞서고 누가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

당송 8대가인 소동파는 “사람이 설해주는 말만이 법문이 아니라 우주만상이 모두 법을 설하고 있으니, 그 법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상총선사의 법문을 듣고 하산길에 ‘시냇물 소리가 부처님 설법이니 산 빛이 어찌 청정한 법신이 아니랴’로 시작하는 「悟道頌」을 지었다고 한다. 역시 천재답다.

조금 낭만적으로 나를 성찰해 보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시인 고두현은 『옛시 읽는 CEO, 순간에서 영원을 보다』(21세기북스, 2016)에서 이백의 「月下獨酌」 첫 수를 인용하면서 “진정으로 자신을 돌아다보려면 이백처럼 홀로 술 마실 시간을 자주 가져야 한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의 바퀴자국에서 자신의 참모습을 발견하는 여유, 작은 일로 아웅다웅하는 지상의 하루에서 광대무변한 우주의 일상으로 확장되는 의식의 비상, 이 놀라운 초월의 세계가 그 속에 있다.”고 하여 애주가를 솔깃하게 한다.

구부러진 길을, 그것을 닮은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다. 부처가 내 안에 있다 하더라도 뙤약볕 내리쬐는 산길을 걸으며 도처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인생 고수들을 만나 봐야겠다. 가끔은 독작도 즐기면서. 그래야 내 안의 나를, 내 안의 부처를 좀 더 절절하게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김정규 한국방송통신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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