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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예산 늘수록 관료 개입도 강화
정부 예산 늘수록 관료 개입도 강화
  • 김기봉 경기대·사학과
  • 승인 2016.07.14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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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진흥법에 바란다③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월 3일 공표된 ‘인문학 및 인문정신무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제13940호)의 시행령 제정(안)은 5월 19일에야 입법예고 됐다. 동법 시행령 제정(안)은 6월 28일까지 입법예고 등을 거친 후, 8월 4일 시행일에 맞춰 제정·공표될 예정이다. 이 법안에서 중요한 것은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주요 사항 심의를 위해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심의회’를 구성·운영한다”라고 명시한 대목이다. 이 ‘심의회’는 “교육부와 문체부 차관 및 관계 부처(기재부, 행자부, 여가부, 문화재청) 차관급 공무원, 전담기관장, 전문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사람 등 총 20인 이내로 구성할 예정”이다. 이들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 관련 정책에 대한 심의를 추진한다. 그러나 심의회 구성은 빨라도 올해 말쯤으로 예상된다. 시기도 문제지만, 심의회에 ‘누구’를 앉히느냐가 중요하다. 국회와 정부가 나서서 법을 제정해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를 진흥하겠다고 밝힌 이상, 제대로 된 전문가가 심의회에서 제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이에 <교수신문>은 「연속기고 ‘인문학진흥’에 바란다」라는 지면을 열어, 5회에 걸쳐 인문학계 중진·원로들의 제언을 공유하고자 한다.

 

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진흥법’)이 다음달 시행을 앞두고 있다. 이 법이 공포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법안의 긴 제목이 말하듯이, 교육부와 문체부 사이의 줄다리기가 난제였다. 법 제정 과정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인문법’은 두 부처 사이의 주도권 싸움과 타협의 산물이다. 이제 이해 당사자의 협약서가 작성된 셈이다. 이 후 문제는 이 법에 따라 구성될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심의회’(이하 ‘심의회’)와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 진흥 전담기관’(이하 ‘전담기관’) 지정을 둘러싼 교육부의 ‘인문’과 문체부의 ‘문화’의 주도권과 지분 싸움이 될 것이라 예상한다. 이 싸움에 일부 인문학자들이 동원돼 하수인 노릇을 할 것이라는 걸 상상하면 한숨이 나온다.

‘진흥법’ 제정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은 인문학자가 아니라 교육부와 문체부의 특정 부서다. 인문정책의 수립과 시행에서 인문학자는 주체가 아니라 대상인 것이 한국 인문학의 현실이다. 이 과정에서 한국연구재단의 역할도 미미하다. 한국연구재단은 엄밀히 말해 심사평가 기관이지 한국의 연구지원사업의 방향을 결정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싱크탱크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실질적으로는 교육부와 미래부의 한 부서가 거대한 한국연구재단을 장악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은 아니다.
필자는 인문학 위기의 본질적 원인은 인문학진흥을 위한 정부 R&D 예산 투자 비율이 낮기 때문이 아니라 인문정신의 빈곤이라고 생각한다. 그 일차적 책임은 인문학자들 스스로에게 있다. 그동안 인문학자들은 인문학 위기라는 명분으로 정부에 더 많은 지원금을 요구했다. 하지만 인문학에 더 많은 정부 예산이 투입되면 될수록 관료들의 개입과 지배가 강화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진흥법’이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를 위한 관건이 ‘심의회’ 구성과 역할이다. ‘심의회’는 5년 이상의 기간에 걸친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중·장기 진흥 목표 및 방향을 심의하는 권한을 갖는다. 앞서 언급했듯이 중요한 인문정책의 기획을 정부 관료가 주도하고, 그렇게 마련된 연구와 교육 지원 사업을 한국연구재단이 맡아서 심사·평가하는 기존의 구조와 체계를 바꿀 수 있는 ‘심의회’가 돼야 한다. 요컨대 ‘심의회’의 학문적 대표성을 가진 다수의 인문학자가 참여해 인문학과 인문정신문화 진흥의 싱크탱크의 기능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심의회’를 구성하고 운영해야 한다.

인문정책의 주체 되겠다는  인문학 ‘독립선언’ 필요
‘위원회 공화국’이라 불릴 만큼 정부 부처 안에는 수많은 위원회가 있지만 대부분이 상설기구가 아니라 필요할 때만 소집해서 정부가 마련한 시안을 추인하는 허수아비 기구에 불과하다. 우려하는 것처럼, ‘심의회’에 교육부와 문체부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몇몇 인문학자들만 참여해서 인문정책을 수립하고 결정하는 싱크탱크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면, ‘진흥법’은 정부 관료가 인문학을 식민지배 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정당화하는 장치에 불과하다. 따라서 이제는 인문학자들이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한 위기선언이 아니라 인문정책의 주체가 되겠다는 독립선언을 해야 한다.
인문학 독립선언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닫게 만든 것이 ‘대학 인문역량 강화사업(CORE·코어사업)’이다. ‘코어사업’에서 인문학자들은 철저하게 개혁의 대상이 됐다. 올해 초 여러 대학의 인문학자들은 교육부가 제시한 지표와 표준 모형에 맞게 인문대학을 개편하고 연구계획서를 짜느라고 겨울 방학을 다 보냈다. 인문대학과 인문학자들 스스로가 개혁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육부가 고육지책으로 당근과 채찍으로 변화를 강요하는 ‘코어사업’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인문역량이 강화될 수는 없다. 비인문학적으로 설계된 ‘코어사업’은 인문학자들을 인문정신 없는 사업자로 전락시킬 뿐이다.
 

필자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코어 사업’에 선정된 대학에서 나오는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안다. 급하게 계획서를 내고 ‘복권’ 당첨처럼 거금을 받은 인문학 교수들이 고민하는 최대 문제는 어떻게 그 많은 돈을 관리지침에 따라 쓰느냐다. 선정된 대학의 인문대 학생들은 대학원에 진학하는 조건으로 장학금과 해외연수의 특전을 누린다. 하지만 이들에게 몇 년이나 계속 지원을 해줄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공부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그들에게 어떤 미래가 열릴 지에 대해서도 아무도 책임 있게 말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식의 지원이 아니라 연구와 교육이 선순환구조를 이룰 수 있는 인문학의 건전한 생태계 조성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 부처의 한 부서가 아니라 인문학자가 주체가 되는 중장기적인 인문학진흥정책을 전담하는 기구가 필요하다.

박근혜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인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인문정신’과 ‘문화융성’이 현 정부 국정기조의 키워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다. 우리사회 인문정신과 문화가 가장 필요한 시점에 현 정부의 인문학 사랑과 문화융성의 비전이 실제로 한 일은 무엇인가. 당시 공들여서 기획했던 거의 모든 인문학 행사를 취소하거나 축소했다. 그 시절 인문학의 키워드가 ‘치유’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비극적 코미디를 연출한 셈이다. 현 정부 초기에 화려하게 출범한 문화융성위원회와 인문정신문화특별위원회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인공지능과 함께 ‘포스트휴먼’ 시대가 도래하는 건 시간문제다. 현재 인류는 한 번도 가지 않은 길을 가야만 한다. 지금 학생들이 학교서 배우는 지식 중 80~90%가 40대가 되는 2050년대엔 쓸모없다면, 무엇을 어떻게 교육할 것인가. 현실이 주어진 것으로서 과거라면, 꿈은 가능한 것으로서 미래다. 산업혁명이 이끈 근대로 진입에 지각해서 일제 식민 지배를 받았다. 제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우리는 같은 잘못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새로운 문명사적 전환과 함께 한국이 마침내 선진국으로 진입하는 꿈을 이룰 수 있은 기회가 다가온다. 이 기회를 잡기 위해선 제4차 산업혁명을 추진하는 상상력의 발전소로서 인문학을 진흥시켜야 한다. 오랜 진통 끝에 탄생한 ‘진흥법’이 위기 담론으로 도와 달라는 요구만 하는 노예 상태의 인문학을 선진국으로 도약을 선도하는 주역의 인문학으로 전환시키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김기봉 경기대·사학과
필자는 역사학회 부회장이며, 한국연구재단 인문학 단장을 역임했다. 저서로는 『히스토리아 쿠오바디스』, 『‘역사란 무엇인가’를 넘어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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