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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계보다 앞선 연구" 평가 받기도 … 자부심으로 다져온 10년의 R&D 끝은?
"경영학계보다 앞선 연구" 평가 받기도 … 자부심으로 다져온 10년의 R&D 끝은?
  • 교수신문
  • 승인 2016.06.27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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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진, 한국행동과학연구소 40년을 말하다_ 9. 연구의 낙수-조직개발연구

조직개발에 관한 연구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 초까지 10여 년간 한국행동과학연구소(KIRBS)가 집중적인 관심을 기울인 분야로, 한국의 조직발달 연구에 적잖은 공헌을 했다.

조직개발 연구는 1968년 KIRBS가 출범하기 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는데, 당시 발간된 연구소의 기관지인 <행동과학> 첫 권에 실린 8편의 논문 가운데 3편의 제목이 조직의 인간요인에 관한 것들이었다. 초기부터 조직개발에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이 연구의 주된 목표는 기업 역량 향상에 기여하는 데 있었다. 기업의 성패 요인은 다양하다. KIRBS는 기업을 움직이는 구성원의 심리적 특성과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능력 개발에 관한 연구에 주된 노력을 기울였다.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하던 1970년대에 기업체의 발전에 우리도 할 일이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조직 구성원의 교육수준이 점점 높아져서 전문직이 증가했고, 조직 안에서도 상하관계에서 평등관계를 요구하는 추세가 나타났다. 조직 내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참여의 욕구도 높아졌다. 사회적·심리적 요인이 과업수행의 성과와 생산성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는 관점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KIRBS 연구, 경영학계보다 앞선 것”

KIRBS가 설립되던 해인 1968년 그해에 발표된 「창의력 증진 가능성에 관한 실험적 연구」는 조직개발 연구의 효시라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나중에 우리와 함께 일했던 경영학자인 고 김문석 박사(고려대 세종캠퍼스 부총장 역임)는 1960년대 후반에 KIRBS가 발표한 조직과 관련된 여러 연구는 당시로서는 국내 기업과 경영학계에서 그 계통의 연구가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시기보다 상당히 앞선 것이었다고 평했다.

그렇다면 당시 기업체의 주목을 끌고 기업교육에 광범위하게 보급·실시됐던 KIRBS의 프로그램은 어떤 것이 있었을까. 그 가운데 창의력 및 성취동기 개발 프로젝트를 간단히 소개한다.

창의력은 과업을 참신하고 독창적인 방법으로 수행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성향과 능력이다. 사고방식의 융통성, 유창성, 독창성이 창의력의 특징이다. KIRBS는 특수하게 具案된 교육훈련을 통해 창의력을 개발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창의력 개발 프로그램을 제작해 실험에 나섰다. 이 프로젝트의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실험은 삼성물산의 기획 및 관리 분야 종사자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그 결과 창의적 사고력은 적절한 분위기와 사고방법을 습득하면 훈련을 통해 증진시킬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창의력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막론하고 증진시킬 수 있으며, 이렇게 증진된 창의적 사고력은 장기간 지속된다는 결론도 얻었다.

이런 결과에 고무돼 1973년 우리는 경영관리자의 성취동기 육성에 관한 프로그램까지 개발해 기업 현장에서 실험을 마칠 수 있었다. 이 교육훈련 결과, 창의적 사고력은 사후검사에서 사전검사 때보다 약 6배 증가했으며, 교육훈련 대상자의 반응도 긍정적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성취 목표를 짜임새 있게 설정해 의욕적으로 밀고 나가겠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자기발전을 도모하겠다’, ‘장애를 과감히 극복해 나가겠다’는 등 높은 성취의욕을 피력했다. 이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훗날 ‘한국성취인회’라는 조직을 구성해 강연회, 연구회, 토론회 등을 개최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이런 모임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인상적이었다.

그 뒤 창의력과 성취동기 육성 프로그램에는 40~50개 기업체의 중견간부들이 참여했고, 5천여 명이 훈련을 받았다. 한국능률협회가 프로그램 보급에 크게 힘썼고, 교육대상자였던 기업체 간부들의 열성적 참여와 프로그램에 대한 호평 역시 큰 도움이 됐다.

기실 1960년대 중반만 해도 기업교육은 대부분 직능교육으로 진행됐는데, 실무능력과 기능의 보충과 배양이 주목적이었다. 실무능력 등 기능은 비교적 구체적이고 ‘가시적’이지만, 창의력이나 성취동기 등 심리적 성향이나 특성은 이해하기 어렵고 잘 포착되지도 않는다. 심리능력이 기업에 당장 어떻게 이득이 되고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막연하다고 생각되기도 했다.

우리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개발·실시된 KIRBS의 성취동기와 창의력 육성 프로그램이 조직 구성원의 잠재적 심리능력을 배양시켜줌으로써 그들의 개인적 자기개발을 도모해줄 수 있으며 아울러 기업 자체의 발전에도 공헌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 줬다고 믿고 있다. 초기의 이 두 기업교육 프로그램의 성공은 조직체에 대한 행동과학적 연구의 가능성을 보여줬고 우리로 하여금 계속해서 관련 연구에 관심을 갖게 했다. 또한 이들 프로그램은 KIRBS가 뒤이어 개발한 각종 기업교육 프로그램의 프로토타입(prototype)이 되기도 했다.

1970년대 들어서는 탄탄한 학제적 연구 수행

초기의 기업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연구는 주로 심리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연구원들이 진행했다. 그러다가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경영학과 행정학을 전공한 이들이 연구원으로 가세해서 탄탄한 학제적 연구팀이 구성돼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각종 프로그램의 개발·보급에 이르게 됐다.

KIRBS가 개발해 기업현장에 투입한 교육훈련 프로그램은 모두 15개인데, 그것을 몇 가지 범주로 분류하면, ①각 직급의 특수능력 개발 프로그램(리더십, 커뮤니케이션, 세일즈맨십, 관리자 양성, 관리자 능력 개발 등). ②산업심리요원 훈련 프로그램(산업상담요원, 심리검사 활용 전문가 코스 등). ③일반 심리 특성 양성 프로그램(감수성 훈련, 창의력, 성취동기 개발 등). ④각 직급별 교육·훈련 프로그램(신입사원, 중견사원, 현장 감독자 능력 개발 등) 등이다.

조직발달 연구와 교육 프로그램 개발 추진 과정에서는 기업 ‘현장에’ 들어가서 기업의 간부진과 사원들의 참여와 협조를 얻어야만 하는데, 이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현실적으로 회사 업무에 바쁜 이들이 교육 시간을 할애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또 성취동기나 창의력이 절박한 회사 경영에 당장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였다. 인간요인이 기업의 성패에 중요하다는 ‘뻔한’ 말에 처음에는 다소 냉소적이기도 했다.

기업의 이런 현실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1970년대의 경영학계에서는 관련 연구가 수행되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을 때여서 우리는 막연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조직개발에 관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직무에 만족하고 조직의 생산성을 높이고자 하는 것이 조직 교육 훈련의 목적이었다.

KIRBS의 조직개발연구부는 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보급에 힘쓰면서 동시에 조직개발과 관계되는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프로젝트 보고서인 「리서치 블레틴」과 개인 연구 발표지인 「리서치 노트」에 발표된 논문만 해도 30여 편으로, 조직관련 영역을 망라하고 있었다. 앞에서 제시한 각종 교육훈련 프로그램들 모두 그것의 개발을 뒷받침하기 위한 이론적 연구가 선행됐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밖에도 조직 효율성에 관한 연구로 조직풍토, 인력관리, 노사관계, 목표관리제도 등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조직 풍토를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조직풍토검사’를 제작해 사용하기도 했다. 목표관리제도(MBO: Management of Objectives)에 관한 연구는 한국에서는 최초로 시도된 프로젝트였다.

조직개발연구부는 또 소비자의 행동에 관한 연구로서 슈퍼마켓 이용자에 관한 연구와 백화점에 대한 소비자의 태도에 관한 연구 등을 진행했다. 슈퍼마켓이나 백화점 이용객이 그리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연구자의 관심을 끌만 했던 주제였다.

소비자의 상품 선택 행동에 관한 연구도 수행했다. 상품에 대한 선입견이 상품의 지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실험연구를 통해 알아봤다. 실험대상자인 가정주부들이 동일한 종류의 상품에 대해서 A사의 상품이 우수하고 B사의 상품이 열등하다는 생각, 즉 선입견을 갖도록 만든 뒤, 이 사람들로 하여금 상품을 판단하게 했다. 실험결과 A사 상품이 B사 상품보다 우수하다는 판단을 하는 결과를 얻었다. 선입견이 상품 선택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연구가 발표되자 B사가 연구소에 들이닥쳐 맹렬하게 항의했다. 이 때문에 나는 한동안 적잖은 곤욕을 치렀다. 기업에 관해 많이 알지는 못했지만, 기업을 움직이는 힘이 인간의 행동이라는 것은 알기 때문에 행동과학연구소가 전문가라고 생각하고 조직에 대한 R&D에 주저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경쟁이 심하고 민감하기까지 한 기업체 현장에 들어가 곤욕을 치르면서까지 많은 것을 배우며 견뎌 나갔다.

시대변화 속에서 조직개발연구 ‘인력난’ 겪어

조직개발연구는 KIRBS 창립 때부터 10여 년 동안 활발하게 이뤄졌다. 그러나 사태는 부침하는 것. 사회 환경이 변함에 따라 우리의 조직개발연구도 심각한 난관에 봉착했다.
KIRBS의 조직개발연구가 쇠퇴하게 된 중요한 요인은 연구소가 통제할 수 없는 요인 즉, 기업체 부설 연수원의 급증과 부설 연구소의 설립이었다. 2000년의 한 조사에 의하면, 1960년 3개였던 기업체 부설 연수원은 1970년에 8개, 1996년에는 39개로 늘어났다. 기업체 자체의 연구 인력을 이용해 조직 내의 문제를 연구하고 교육·훈련도 활발히 진행하게 됨으로써, 외부 연구기관의 역할은 서서히 축소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대학의 경영 관련 학과가 급증해 KIRBS의 연구 인력이 대거 대학으로 진출한 것도 우리 연구소의 조직개발 관련 활동이 쇠잔하게 된 요인의 하나였다. 조직개발 관련 전공자들은 KIRBS보다 ‘넉넉한’ 기업체 부설 연구소나 연수원에 더 매력을 느끼는 듯했다. 연구소는 1982년 이후 심각한 연구 인력난을 겪어야 했다.

기업체의 협조와 재정 지원으로 진행하던 기업교육훈련 프로그램 보급은 연구소 재정에 꽤나 도움이 됐는데, 1980년대 초부터 KIRBS의 조직개발 관련 활동이 대폭 축소되면서 결과적으로 우리는 점점 심각한 재정적 타격을 입게 됐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처하긴 했지만, 우리가 조직관리 문제에 관한 인간요인의 행동과학적 연구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데 선구적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연구소 창립 초기부터 조직개발 전공자도 아닌 사람들이 기관개발부라는 연구 부서를 꾸려 조직연구의 선구자인양 야심과 의욕을 가지고 이 영역의 연구가 뿌리내리기를 바랐었다. 그러나 KIRBS의 조직개발 연구는 경영학 계통의 연구원이 한둘 떠나가면서 1982년 결국 검사연구부와 합병하고 말았다. 10여 년간의 R&D활동은 이렇게 허전하게 막을 내렸다.

이성진 서울대 명예교수 · 대한민국학술원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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