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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사회 중심의 진상규명’ 투 트랙으로
‘피해자 사회 중심의 진상규명’ 투 트랙으로
  • 교수신문
  • 승인 2016.06.2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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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강성현 성공회대 HK연구교수

박유하 세종대 교수와 『제국의 위안부』가 법적 판단의 대상, 동시에 학술장을 통한 합리적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학술적·대중적 관심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됐다. 박 교수의 책을 둘러싼 논의는 이제 책에 대한 비판적 독해에서 더 나아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쟁점과 해결을 모색하는 단계에 진입했다. <황해문화> 91호에 실린 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의 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쟁점과 해결」이 그것을 보여준다. 강성현은 “과거사 문제의 해결 방법 중 진상규명 없이 금전적 보상으로 정리하는 것은 가장 낮은 수준의 해결”이라고 지적하면서,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아시아여성기금의 보상과 이를 통한 사죄도 ‘진상규명 없는 보상’ 모델과 별단 다르지 않다고 비판한다. 강성현의 논의가 보여주는 미덕은 ‘해결’에 대한 신중한 제안에 있다. 과연 그는 어떤 해결안을 제시한 걸까. 관련 부분을 정리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라는 현재화된 과거사를 대면하고 응답하려 할 때 추구할 수 있는 진상규명의 기본 방향과 방법은 무엇일까? 기본 방향으로 사법적 진상규명을 목표로 하는 것은 현실 제약이 너무 크고, 그 효과도 크지 않다고 본다. 무엇보다 비록 상징적 ‘퍼포먼스’이기는 했지만, 이미 한일 시민사회는 2000년 일본군 ‘성노예’ 전범여성국제법정에서 ‘천황’을 비롯한 가해 책임자들을 전범으로 조사, 기소하고, 유죄 판결을 내렸다. 일본군 위안소 제도의 기획과 설치, ‘위안부’의 ‘강제연행’과 노예적 상태 등에 대해 책임 있는 일본 군부와 정부의 ‘국가범죄’로 규정했고, 사죄와 배상을 요구했다. 주지하듯이, ‘종전후’ 연합군이 주도한 BC급 전범재판에서는 일본군 ‘위안부’ 관계 케이스가 일부 기소, 처벌됐지만, 모두 점령지 여성을 ‘강제위안’에 동원한 것에 대한 처벌이었다. 반면 조선인 ‘위안부’ 케이스에 대한 재판은 없었는데, 이는 당시 조선에서 BC급 전범재판이 열리지 않았던 것과 관련이 있다. 이렇게 볼 때 2000년 여성국제법정은 남과 북 조선인 ‘위안부’에 대한 첫 재판이었다. 이 판결은 사법적 효력이 없는 것이었지만, 상징적·선언적 의미는 충분했다고 본다.

가해자에 대한 실효성 없는 법적 처벌보다 일본 정부로 하여금 국가범죄임을 공식 인정하게 하고, 이에 근거해 법적 책임으로서 배상과 사죄를 하게 하기 위해 기본 방향은 역사적·구조적 진상규명에 무게를 싣는 것은 어떨까? 남아공형 진실화해 모델처럼 ‘가해자 처벌’을 국가범죄에 대한 공식 인정 및 진심 어린 사과와 배상으로 교환하는 상상력은 불가능할까? 2014년 도쿄에서 개최된 제12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아시아연대회의에서 채택한 ‘일본 정부를 향한 제언’이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구조적 진상규명의 첫 출발은 제대로 된 피해 실태 조사다. 그동안 신고주의에 입각해 일부 피해자들의 피해 사실은 접수 받았지만, 아직까지 단 한 번도 한일 정부가 나서 정부 이름으로 종합적인 피해 실태를 조사한 적은 없다. 그리고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본 원칙을 정치·외교가 아닌 역사와 재발 방지의 시야에서 근본적으로, ‘불가역적으로’ 세워야 한다.
그 다음이 자료 조사다. 일본이 소장한 관계 자료에 대한 조사는 물론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프랑스, 러시아 등 당시 연합국 국가들과 중국 및 대만과 태국 등이 소장한 자료에 대한 조사, 그리고 한국 국가기록원이 소장하고 있는 조선총독부 관계 자료를 더욱 꼼꼼하게 조사해야 한다. 현재까지 공개된 일본 소장 관계 자료들은 대부분 미국 등 연합국에 의해 노획, 압수됐다가 반환받은 자료이며, 이 자료들에 대한 사본과 번역본이 마이크로필름·마이크로피쉬, 문서 형태로 각국의 자료기관에 소장돼 있다. 대만, 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자료기관에서도 새로운 자료들이 발굴될 가능성이 크며, 중국은 관계 자료의 새로운 寶庫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의 국가기록원 또한 일부 연구자들에 의해 한두 차례 조사된 바 있지만, 충분한 시간과 인력을 가지고 조사할 경우 더 큰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에 한정해 말한다면, 정부의 기본 입장을 담은 ‘위안부 백서’를 한 번도 공식 발간한 바 없고, 일본군 ‘위안부’ 관계 ‘정본자료집’도 간행한 바 없다. 예컨대 여성가족부의 경우 2000년대 초반부터 관계 조사 용역을 간헐적으로 발주했지만, 현재 완료된 것으로만 보면 그 결과는 대부분 조사보고서 형태이며, 그조차도 대중적 접근성이 상당히 떨어진다. 동북아역사재단이 일본 연구자 및 지원단체의 연구 활동 성과를 한국에 소개하고 있는 정도가 눈에 띈다. 그러나 2015년 한일 간 ‘12·28 합의’는 한국에서 애써 틔웠던 싹들을 잘라버리고 있다. 처음으로 공식 간행을 예정하고 있던 ‘위안부 백서’가 중단됐고, ‘일본군 위안부 국외자료 조사’ 사업이 계약 직전에 아직은 말할 수 없는 이유로 좌초됐다. 일본군 ‘위안부’ 관계 자료의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사업의 운명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진상규명의 기본 방향이 역사적·구조적 진상규명으로 합의될 수 있다면, 이를 추진하기 위한 방법은 ‘투 트랙’으로 진행해볼 수 있다. 우선 ‘국가와 법 중심의 진상규명’이다. 그런데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일국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과 일본 간, 더 나아가 아시아 피해 국가들과 일본 간의 문제다. 따라서 이 국가들 간에 진상규명 추진이 합의되더라도 이는 역사보다도 정치와 외교의 문제에서 다뤄지지 쉽다. 진상규명 활동을 위한 재원 마련과 진상규명 기구의 위상, 독립성, 조사권한, 활동기간 등의 쟁점에서 정치외 외교 스탠스에서의 접근이 두드러져 결국 나눠먹기식 구성과 애매모한 위상, 명목적 독립성과 미흡한 조사권한, 짧은 활동기간으로 귀결될 수도 있다. 사실들은 차고 넘치지만, 진실의 전모는 단번에 드러나지 않는 법이다.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진실이 드러나는 것에 저항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각 국가의 기득권 세력이기에 그 저항은 더욱 강력하다. 국가와 법 중심의 진상규명을 넘어서는 상상력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래서 제안하는 것이 ‘피해자와 사회 중심의 진상규명’이며, 이 둘을 투 트랙으로 진행하는 것을 상상해본다. 전시 국가폭력에 대한 진상규명과 정의 수립 원칙과 관련해 최근의 세계적인 추세는 ‘피해자 중심성’이다. 예컨대 ‘분쟁후(post-conflict) 정의에 관한 시카고 원칙’도 분쟁 후 정의(또는 이행기정의)를 수립하는 과정에서 더 적극적인 피해자 중심의 접근을 강조한다. 진실위원회 구성에서 피해자·유족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원칙 2). 또한 정의에 대한 접근권에도 당사자로서 참여 기회를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원칙 3). 진실과 정의의 성공적 실현에 피해자·가족의 참여가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천명했다.

김학순 증언 이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운동에서 주인공이었다. 그렇기에 국가와 법 중심의 진상규명이 위원회 구성과 조사 개시라는 법적·행정적인 제도 절차로 접어든다고 하더라도 ‘위안부’ 피해자들은 단순 민원인 당사자로 대상화되지 않을 것이다. 국가의 제도화된 진상규명의 바깥에서 각계 연구자 및 지원단체와 함께 시민사회의 조사기구를 구성해 ‘사회 중심의 진상규명’이 구심점이 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이 진상규명의 목적은 역사적 정의 수립과 전시 여성 인권이 유린당하는 사태의 재발 방지에 있다. 이를 위해서도 국가범죄에 대한 피해자 및 사회 중심의 접근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필요가 있다. 국가와 법 중심의 진상규명이 결코 회수할 수 없는 진상규명의 영역을 한일·아시아 시민사회가 확보하는 것, 이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고 실천하기 위한 ‘아시아 만민공동회’를 발전시키는 것, 이것이 아시아연대회의 지향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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