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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병 R&D, 국내 수준 객관적 분석 없이 진행돼”
“감염병 R&D, 국내 수준 객관적 분석 없이 진행돼”
  •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 승인 2016.06.22 15: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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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읽는 과학本色 147. 메르스 이후
▲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전 세계의 메르스 감염 확진 사례. 2016년 6월 기준. 사진출처= WHO

현재 메르스 뿐만 아니라 감염병에 대한 R&D가 여러 부처에서
헤게모니 다툼을 하면서 분산되고 집중되지 못하고 있으며 국내의 기술
수준과 개발 능력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분석없이 진행되고 있다.

 

186명 감염, 38명 사망, 1만6천693명 격리. 2015년 5월, 국내 메르스 확산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가장 많은 감염자 국가라는 오명을 남겼다. 그 당시 바레인과 사우디아라비아를 다녀 온 69살의 남성 1명이 고열과 기침 증상을 보였다. 이 남성은 3군데 병원을 들르며 메르스 증상이 의심됐다. 그러나 늑장 대응으로 결국 엄청난 파국을 몰고 왔다.
이제 1년이 지났다. 과연 무엇이 달라졌을까. 이에 대해 이재갑 한림의대 강남성심병원 교수(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홍보이사)와 황승식 인하대 교수(사회의학교실)를 각각 14일, 17일 서면 인터뷰했다. 이들은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대책 마련과 전문 인력 확보를 위한 예산 투입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재갑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의 조직체계 개편과 감염관리와 관련된 수가의 조정들이 이뤄졌고, 일부는 시행예정이다”면서 “병원의 감염관리 인프라 개선을 위한 병원 구조의 개편도 논의 중이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방향은 어느 정도 맞을 수는 있으나 대부분의 작업들이 예산과 인력이 관련된 부분으로 재정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 인력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의 도움 없이는 실현되기 어려운 과제들도 있어서 범정부 차원의 장기적인 대책과 실현을 위한 상위기구의 신설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황승식 교수는 “감염병 관리법이 개정돼 질병관리본부가 감염병 대응 ‘컨트롤타워’로 위상 높아지고 규모가 커졌지만, 메르스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고 의무직 공무원에 대한 징계가 이어져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다”면서 “후속책으로 감염병 전문병원 설치 근거법이 통과돼 향후 유사 상황이 벌어질 때를 대비해 전문병원을 세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그는 “검역강화는 기존 체계에서 특별히 달라진 점이 없고, 국제협력강화로 해외 신종감염병 유행 정보 수집에 이전보다 노력을 기울이는 정도이다”라고 밝혔다.

황 교수는 <황해문화> 2015년 가을호에 「숫자로 보는 메르스」를 기고한 적이 있다. 그는 “메르스가 한국에 유입된 것이 방역 당국의 실패라면, 유입된 메르스가 병원 내에서 확산되는 과정은 6인실과 가족 간병 관행과 같은 취약한 의료 시스템에 기인했다”고 적었다. 또한 황 교수는 “메르스 환자를 진료할 때는 레벨D등급의 보호구를 착용해야 함에도 방역 당국은 6월 17일 이전에는 각 병원에 제대로 된 지침을 내려보내지 않았다”고 썼다. 이 때문에 많은 의료진이 감염됐다.

전문병원 설치 등 인프라 개선 논의 중
의료진에 대한 처우나 인원 보충 등 개선된 부분은 긍정적일까. 이 교수는 “현재 감염예방과 관련된 수가 개선으로 감염관리의사, 간호사의 증원이 가능할 수 있는 법적, 비용적인 틀은 갖춰졌다”면서 “그러나 이러한 전문인력이 단시간 내 양성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장기적인 계획과 재정지원을 통해 전문가들을 전문가답게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지만 아직 정부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메르스 후의 급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지금껏 찾아왔다면 장기적인 감염병 대책에 대한 로드맵이 갖춰져야 하는데 단발적인 대책으로만 끝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의료진 처우 관련, 황승식 교수는 “질병관리본부에서 요청한 역학조사관 인력조차 제대로 채우지 못하고 있다”면서 유능한 의사직 인력을 뽑기 힘든 이유는 역시 정부 부처에서 인원과 처우를 관할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황 교수는 “메르스 유행은 기본적으로 병원감염이라 병원 내 감염관리가 중요한데, 한국의료는 과적모형이라 누구도 안전에 투자하려는 의지가 없다”면서 “작년 사태 이후 구조적이고 장기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메르스 극복 국민연대를 만들어 활동해왔고, 얼마 전 ‘보건의료개혁 국민연대’로 확대 재편됐다”고 말했다. 과적모형이란 큰 대학병원에 환자들이 몰리는 것을 뜻한다.

메르스는 이제 잘 알려져있듯이, 코로나 바이러스(coronavirus)가 일으키는 전염병이다. 낙타와 연관성이 처음 제기된 것은 2013년 3월 독일의 한 병원에서 사망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의 환자로부터다.(『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강석기, MID, 2014) 참조) 코로나는 전자현미경에서 보이는 표면에 해 둘레의 광환(corona)이 연상돼 이 이름이 붙여졌다.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는 낙타젖에서 72시간 동안 안정하게 버티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편, 전 세계에는 낙타가 약 2천700만 마리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메르스 확진 1위 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에는 26만 마리만 살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메르스 코로나바이러스(MERS-CoV)에 대한 사전 예방법은 없는 것일까. 황 교수는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낙타 등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중간 매체 접촉을 피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증상 확인과 신고는 필수다. 이재갑 교수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메르스 외에도 신종감염병이 언제든 유행하고 국내 유입이 가능하기 때문에 항시적인 대비체제와 유행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 유행 상황에 맞는 인력과 물자의 교육과 준비는 일상적으로 이루어져야 실제 위기 상황을 대처할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감염병에 대한 종합적 R&D 투자 필요
마지막으로 메르스 이후 관련 연구비는 증가했으나 정말로 과학적인 접근이 이뤄지고 있는지 물어봤다. 이 교수는 “현재 메르스 뿐만 아니라 감염병에 대한 R&D가 여러 부처에서 헤게모니 다툼을 하면서 분산되고 집중되지 못하고 있으며 국내의 기술 수준과 개발 능력에 대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분석이 없이 진행되고 있다”면서 “어떤 면에서는 나눠 먹기식이다 보니 실제 기술 개발이나 정책 용역 단계에 이를 때에는 예산이 충분치 않아 수박 겉핥기 형태의 과제 수행이 대부분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감염병 R&D를 총괄하고 5~10년을 내다보는 정책일관성을 가진 투자가 절실한데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정부부처나 기관이 없다”고 밝혔다.

한편 황 교수는 “바이러스학, 감염의학 관련 연구도 진행돼야 하지만, 메르스가 병원 내에서 유행할 수밖에 없었던 환경인 한국의료의 민낯을 하나씩 해결하기 위해 중장기적인 구조개혁 논의가 시작돼야 하고 관련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시아에선 유일하게 우리나라가 메르스 확진 사례 국가로 도드라져 보인다.(사진 참조) 재난이 아니라 人災가 확실한 메르스 사태. 다시는 감염병 확산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김재호 과학전문기자 kimyital@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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