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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대선 후보 검증위원 80% 교수, 문제점은 없는가
[이슈]대선 후보 검증위원 80% 교수, 문제점은 없는가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12.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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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7 11:23:59
지난 대선만 하더라도 후보 검증은 ‘색깔론’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책평가를 중심으로 후보를 평가하자’는 여론과 더불어 각 언론사들은 ‘공정함’과 ‘객관성’을 내세우며 후보 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새삼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사실이 있다. 공정한 공약평가를 선언하고 나선 각 언론사의 공약평가위원회의 평가위원 80%가 대학교수라는 점이다. 언론권력에 편승해 지식권력을 누리는 언론·교수집단의 카르텔이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이번 대선에서 시민단체나 정책관련학회 등의 기관과 주요언론들이 공동으로 공약평가위원을 구성한 것은 눈에 띄는 흐름이었다. 독자적으로 정책평가를 하던 시민단체는 자신들의 분석을 공개해 줄 매체가, 언론사는 독자적인 평가체계를 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른바 준비된 단체와의 연합이 필요했던 것.

현재 한국정책학회와 공동으로 공약토론회를 벌이고 있는 동아일보나 한국정치연구소와 함께 공약검증위원회를 구성한 한국일보의 공약평가위원은 모두 대학교수. 의회발전연구회와 공동 발족한 조선일보의 후보평가위원단은 위원 9명 가운데 7명이 교수이고, 경향신문과 손잡은 참여연대의 경우 참여연대 국장일부가 참여하고 있지만, 7개 분야 검증위원 28명 가운데 16명이 대학교수이다. 한겨레와 연대한 YMCA의 후보평가위원 2백여명의 70%가, 문화일보와 연합한 경실련의 경우 1백50여명의 후보평가위원 중 80%가 교수이다.
즉 공약평가위원 중 교수들의 비율은 약 80%에 이르는 셈이다.

이중 한국정책학회와 한국정치연구소는 정치 관련 학회에 소속된 교수들을 중심으로, 참여연대, 경실련, YMCA 등의 시민단체는 각 단체에서 기존에 활동하고 있는 교수나 변호사 등과 같은 전문가를 중심으로 정책평가위원회를 꾸렸다. 조선일보만 예외적으로 의회발전연구회 소속 회원 일부와 외부 단체의 임원 몇몇으로 후보평가위원을 구성했다.

언론사-시민단체·학회 연대 두드러져

다른 집단을 제쳐두고 교수집단이 정책평가위원으로 ‘모셔지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한겨레 안수찬 정치부 기자는 “언론사가 독자적으로 평가위원을 구성하면 공정성 시비가 따르지만, 시민단체와 같은 기관과 연합하면 그렇지 않다”라며 “사용할 수 있는 인력풀 자체가 한정돼 있는 것이 아니냐”라고 반문한다. 중립적인 세력을 찾으려면 시민단체가 가장 손쉽고, 그 속에 있는 지식인 집단의 절대 다수가 바로 교수라는 것이다. YMCA의 심상연 팀장 역시 “사회에서 지식인으로 분류되는 구성원의 대부분이 교수라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학자적 양심을 걸고 공약평가를 진행해도 한계는 있다. 정책관련학회의 경우, 정치학·경제학·행정학 전공 교수들이 대다수여서 전분야에 걸친 정책을 검증하기에는 무리다. 조선일보 김창균 정치부 차장은 “후보검증위원을 구성하고 나니 복지분야 전문가들이 누락돼 경제학 관련 교수들이 복지부분의 정책을 평가했다”라고 전했다. 즉 검증된 정책들이 반드시 전문가의 손을 거친 것은 아니라는 것.

두 번째는 ‘교수’가 일반인들의 목소리를 담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지식인인 동시에 특권세력이기도 한 직업적 특성도 무시할 수 없다. 참여연대의 평가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박순성 동국대 교수(북한학)는 “활동가들과 함께 회의를 하면서 현장에 가까이 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소외된 계층의 의견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에는 자신이 없다”라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어느 평가위원회에서도 지방의 목소리는 반영되고 있지 않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런 현상을 “학문적인 지식만을 지식이라고 생각하는 풍토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장애인의 문제는 장애인이, 환경문제는 환경전문단체에서 가장 절실하게 논의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이들의 의견은 권위 있는 지식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또 지금처럼 이론가를 중심으로 한 평가위원회는 후보자가 제시하는 정책만을 평가할 가능성도 높다. 민초들부터 올라오는 요구 사항을 제시할 수 있는 통로가 없기 때문이다.

지식인 집단 저변 확장해야

교수를 주축으로 한 공약검증위원회의 구성은 우리 지식인층의 저변이 빈약함을 드러내는 현상이다. 동시에 “교수 외의 어떤 대안이 있느냐”라는 반문은 지식인계층의 폐쇄성을 유지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기존의 공약평가위원회가 다양한 분야의 의견을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면, 그 자리에 활동가나 일반시민들로 메우는 작업을 교수들이 먼저 해야하지 않을까. 적어도 지식인이라면 기준 없는 공약평가위원회의 토대를 재정립할 책무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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