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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로봇의 ‘한 수’ 구별 못해
인간과 로봇의 ‘한 수’ 구별 못해
  • 교수신문
  • 승인 2016.05.24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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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야기_왜 알파고가 지능을 가졌다고 말하는가?

이 글은 국제전기전자기술자협회(IEEE)에서 ‘젊은 우수공학자상’을 수상한 감동근 아주대 교수(전자공학과)의 신간 『바둑으로 읽는 인공지능』(동아시아, 2016.4) 중 일부를 발췌한 것입니다. 감 교수는 한국기원 공인 아마 5단의 기력을 갖추고 있고,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지켜보면서 딥러닝을 비롯한 인공지능 기술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가치망 덕분에 탐색 공간이 이제는 컴퓨터의 계산 능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좁아졌다. 기존의 바둑 인공지능은 수읽기에만 의존하면서 정식 데이터베이스로 초반을 보완했다면, 알파고는 수읽기는 기본이고 인간 고수 못지않은 감각(정책망)과 형세판단 능력(가치망)까지 갖춘 것이다.
2016년 1월 28일, 알파고가 <네이처> 논문(D. Silver, et al., 「Mastering the Game of Go with Deep Neural Networks and Tree 」, Nature, vol. 529, Jan. 28, 2016)을 통해 발표되자마자 우선 알파고와 판후이 2단과의 기보를 살펴봤다. 흑백 대국자 정보를 가렸을 때 어느 쪽이 판후이 2단이고 어느 쪽이 알파고인지 나로서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 둘을 구분할 수 있는지 여부는 인공지능에서 매우 의미심장한 문제다.

‘컴퓨터가 생각할 수 있는가?’ 내지는 ‘컴퓨터가 지능을 갖췄는가?’라는 질문은 모호하다. ‘지능’이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의 아버지로 꼽히는 앨런 튜링(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의 모델)은 ‘튜링 테스트’라는 것을 제안했다.
사람의 대화를 흉내 낼 수 있도록 만든 자연어 처리 컴퓨터가 있다고 하자. 이 컴퓨터가 사람 A와 대화한 지문을, 평가자인 또 다른 사람 B가 읽고 어느 쪽이 사람이고 어느 쪽이 컴퓨터인지 구별할 수 있는지를 따지는 것이 바로 튜링 테스트다.

MSN 메신저가 크게 유행했을 때, ‘심심이’라는 채팅하는 로봇(챗봇)이 있었다. 심심이가 사람과 채팅한 기록을 아이디를 가리고 보더라도 금세 어느 쪽이 챗봇인지를 별로 어렵지 않게 구별해낼 수 있었다. 즉, 튜링 테스트에 따르면 심심이는 대화하는 지능을 아직 갖추지 못한 것이다. 튜링 테스트를 바둑에 적용하면, 알바고가 바둑 두는 지능을 갖췄느냐는 문제는 우리가 기보를 보고 알파고가 어느 쪽인지를 판별할 수 있는지 여부로 귀결된다.
이제 겨우 말하고 읽기 시작한 어린아이가 대화문을 보고 어느 쪽이 심심이인지 찾아내기 어렵듯이, 기력이 약한 나로서는 알파고와 판후이 2단을 구별하는 것이 당연히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최근 세계 1인자로 인정받고 있는 커제 9단이 인터뷰에서 밝힌 것처럼 초일류 기사들도 기보에서 알파고를 구별해내기 어렵다면, 알파고는 ‘바둑 두는 지능을 갖췄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판후이 2단과의 대국에서 알파고는 초반에 승부를 걸기보다는 적절히 타협하면서 후반을 도모하는 바둑을 구사했다. 아무래도 초반보다는 뒤로 갈수록 인공지능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경망의 지도 학습 단계에 사용하는 데이터가 달라지면, 그 결과 합성되는 신경망도 달라진다. 특정한 기풍을 가진 기사들의 기보 중심으로 학습한다면, 그와 비슷한 기풍이 정착될 개연성이 있다.
또한 바둑에는 신경전의 요소도 있다. 인간은 초반에 상대가 연구해온 것으로 의심되는 포석을 펼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든지, 다음 수가 정확히 안 보일 때 일단 상대방이 제일 싫어할 것 같은 곳에 둔다든지(그런다고 해서 내가 유리해진다는 보장은 없지만), 또 형세가 여의치 않으면 약간 무리수 같기도 하지만 상대도 응수하기가 까다롭고 자칫 실수하기 쉬운 수, 프로들의 은어로 ‘까실한’ 수를 둔다.

인공지능은 대개 이런 수보다는 그 장면에서 최선의 수를 두려고 노력한다. 그런데 이런 것도 프로그램 하기에 따라 바꿀 수 있다. 딥블루는 아주 인간적인 체스를 구사했다. 판후이 2단이 거의 매판 초반에 워낙 망하는 바람에 이런 것을 확인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아쉬웠다.

감동근 아주대·전자공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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