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15:40 (일)
“학문은 폭력적인 언사들도 보호해야 하는 ‘소도’일 수 없다”
“학문은 폭력적인 언사들도 보호해야 하는 ‘소도’일 수 없다”
  • 교수신문
  • 승인 2016.05.18 16: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텍스트로 읽는 신간_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게에 묻다』 손종업·김요섭·아메다 아키라 외 지음|도서출판 말|430쪽|18,000원

 학문은 ‘해결책’이 아니라 ‘진실’ 또는 ‘사실’을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과 맞서야 한다. 학문의 자유를 논하기 위해서는 그가 학자로서의 태도를 끝까지 관철하는가가 동시에 무겁게 물어져야 한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평범한 악’이 아니다. 아이히만에 대한 면책을 주장했던 것도 아니다. 그녀는 그토록 ‘평범한 악’이 어떻게 끔찍한 전체주의적 악몽으로 귀결됐는가를 보고자 한 것이며 이를 위해 인간존재의 내면을 파고든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절대로 아이히만을 변호한 게 아니다. 그의 ‘죄’는 가벼워지지 않는다. 해결책을 모색한 것도 아니다. 한나 아렌트와 박유하의 공통점은 자신이 속한 집단(민족)의 관점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한나 아렌트가 ‘진리’에 대한 다이몬의 호소에 따른 결과였던 반면에 박유하는 ‘해결책’을 찾은 것이라는 점이 크게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해결책’이 화해를 가져올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를 침묵하게 하면서 강자의 논리로 맺은 화해는 결코 불가역적일 수 없다. 논리적으로도 그렇고 현실적으로도 그렇다. 그녀는 자신의 저서가 일본에서 높게 평가받고 있다는 점을 통해 이러한 ‘해결책’의 유효성을 주장하려 하지만, 불행히도 그녀의 ‘해결책’을 반기는 쪽은 거품경제 이후의 불황20년(1997), 고베대지진(1995), 일본대지진(2011)의 위기를 통해 보수화하는 일본이며 그녀가 내민 화해의 손을 잡은 건 아베정권이라는 점을 외면할 수 없다. 니시노 루미코의 다음과 같은 비판에 대해서 그녀는 도대체 어떤 답변을 준비했는가.

“거듭 말하지만 이 책(『화해를 위해서』)이 논단상을 받은 2007년은 아베의 ‘위안부’ 강제연행 부정 발언이 국제사회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때다. 미 하원 의회가 일본 정부를 향해 사죄를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하고 뒤이어 네덜란드 하원, 캐나다 하원, 유럽연합회의 등 국제사회가 차례차례 결의서를 내놓았던 때도 2007년이다. 그 뒤로도 <아사히신문>을 필두로 <마이니치신문>도 예외 없이 박유하를 종종 지면에 등장시켰다. 이러한 화해론의 표출이 ‘위안부’ 문제 해결에 혼란을 준 점은 부인할 수 없다.”(니시노 루미코, 「피해자 부재의 화해론을 비판한다」, 『그들은 왜 일본군 ‘위안부’를 공격하는가』, 김경원 외 옮김, 휴머니스트, 2014)

요컨대, 박유하가 어느 민족이나 국가의 편익을 추구하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녀의 책이 어떤 보편적인 가치를 추구하는가가 문제일 따름이다. 학문은 ‘해결책’이 아니라 ‘진실’ 또는 ‘사실’을 통해 기존의 패러다임과 맞서야 한다. 학문의 자유를 논하기 위해서는 그가 학자로서의 태도를 끝까지 관철하는가가 동시에 무겁게 물어져야 한다. 그러나 이미 많은 논자가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여러 면에서 학문적 엄밀성을 얻는 데 실패한다. 그가 대학교수이기에 학자라고 말해선 안 된다. 학문은 결코 폭력적인 언사들도 보호돼야 하는 ‘소도’일 수 없다. 해결책에의 조급증은 학자가 아니라 정치가나 변호인의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이 글의 제목을 ‘제국의 변호인’이라고 쓴 것에 대해서 그것은 지나치게 폭력적인 게 아닌가 비판하는 분들이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또한 그런 분들이라면 너무도 당연히 ‘제국의 위안부’라는 제목이 얼마나 경솔하고 비학문적이며 어느 누군가에는 지나치게 폭력적이고 모욕적인 언어인가를 느끼게 되지 않을까 싶다.

□ 이 책 『제국의 변호인 박유하에게 묻다』는 부제를 「제국의 거짓말과 ‘위안부’의 진실」로 달았다. 요컨대 ‘거짓’과 ‘진실’의 차원에서 박유하 교수를 추궁한 셈이다. 20명의 학자, 언론인, 작가가 이 책에 참여했다. 학문의 자유와 명예훼손, 인권, 역사의 기억, 페미니즘 등의 관점에서 ‘박유하’와 그의 책을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제국의 위안부』 출간 이후 가장 정치한 독해이자, 치밀한 비판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