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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은 시대정신의 대변자였을 뿐”
“원시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은 시대정신의 대변자였을 뿐”
  • 정기문 군산대·사학과
  • 승인 2016.05.1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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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그리스도교의 탄생』 정기문 지음|도서출판 길|347쪽|28,000원

 우리가 원시 그리스도교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율법에서
자유로운 믿음은 바울로가 창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원시 그리스도교 내에서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던 신앙이었다. 바울로의 위대한 업적은 그런 혁신적인 믿음을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다른 신자들이 그 믿음을 포기할 때 강인한 정신으로
그 믿음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397년 여름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를 장차 기독교의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부상시켜줄 중요한 설교를 했다. 설교의 주제는 50년경에 있었던 이른바 안티오키아 사건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안티오키아 사건은 50년경 사도 바울로와 사도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면박 준 사건이었다. 신약 성경 갈라디아서에 이 사건이 소개돼 있는데, 기독교 신자들은 초기 기독교의 두 기둥이라고 할 수 있는 바울로와 베드로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함을 치며 싸웠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불가타 성경을 만든 것으로 유명한 히에로니무스를 비롯해 거의 모든 기독교 신자들은 두 사도는 실제로 싸우지 않았고, 단지 연기를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에 의하면 베드로는 이방인 출신 신자에게 유대교의 율법과 할례를 강제하지 말아야 한다는 바울로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널리 알리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그에게 자신을 꾸짖을 기회를 제공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런 해석은 성경을 편의적으로 읽어서 왜곡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경에 나타난 사실들을 적당히 얼버무려 조화시키려는 시도는 결국 신앙을 왜곡하는 것이며, 최대한 이성으로 이해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참 신앙인의 자세라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이 사건에서 바울로와 베드로는 실제로 싸웠으며, 두 사도가 싸웠던 것은 율법과 할례의 가치에 대한 이해가 달랐기 때문이다. 이 설교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당대에 최고 권위로 인정받았던 학자들의 해석을 단호히 거부하고, 학자들의 권위가 아니라 이성이 더욱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렇게 설교했다는 것이 알려지자 히에로니무스를 비롯한 많은 학자들이 그를 비난했지만,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들과 논쟁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고 그 과정에서 최고의 신학자라는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성으로 기독교의 역사와 성경을 이해하려는 아우구스티누스의 태도는 제대로 계승되지 못했다. 기독교 교회는 성경을 오로지 신앙의 관점으로만 읽어서 널리 통용되는 교리를 만들어냈다. 이에 의하면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초월적인 가르침을 가지고 이 땅에 와서 일시에 유대교라는 낡고 편협한 종교를 무너뜨렸고, 베드로와 바울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해서 교회를 세운 후 일치단결해 교회를 발전시켰다. 오랫동안 기독교가 절대 권력으로 군림해왔기 때문에 기독교의 이런 주장은 의심 없이 진리로 통용됐고, 지금도 교과서를 비롯한 거의 모든 개론서가 기독교의 탄생을 이런 관점으로 서술하고 있다.
19세기 중반에 이런 신앙이 만들어낸 도그마를 극복하고, 이성으로 초기 기독교 역사를 이해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튀빙엔 학파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바우르(F. C. Baur)는 「사도행전」이 교회의 일치와 화합을 강조하기 위해서, 특히 베드로와 바울이 조화롭게 초기 기독교를 이끌었다는 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바울로파와 예루살렘 교회 사이에 있었던 갈등과 대립을 은폐했다고 지적하면서 초기 기독교가 정반합이라는 변증법적 발전을 이뤘다고 주장했다.

1930년대 발터 바우어(Walter Bauer)는 2세기의 로마, 알렉산드리아, 에데사, 에페소 등 여러 지역의 기독교를 검토했는데, 후대 정통으로 자리 잡을 교회는 시간적으로는 늦게 발전했고, 수적으로는 소수였고, 오히려 후대 이단으로 규정될 교회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었다. 그의 연구는 초기 기독교의 탄생 과정에서 여러 분파가 있었고, 그들이 주도권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후에 정통 교회로 발전할 원정통 교회가 성장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후 발터 바우어의 이 명제가 계속 힘을 얻을 수 있었던 데는 두 가지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먼저, 20세기 신학의 발전을 주도했던 불트만과 그의 제자들이 발터 바우어의 주장을 계승해 발전시켰다. 불트만은 정통 교회는 여러 교리들의 투쟁 결과물이고, 이단은 교회가 주장하는 것과 달리 배교나 퇴화된 형태가 아니라 이미 기독교가 출범할 때부터 있었고, 후에 정통 교회가 다양한 교리들을 이단으로 규정했다는 것을 입증했다. 20세기 중후반 불트만의 후예들인 보른캄, 막센, 콘젤만 등은 이른바 편집비평이라는 새로운 해석법을 제시했다. 이들은 성경의 저자들을 창작자라고 주장하면서, 성경 내에 존재하는 모순이나 차이점들을 진지하게 받아들였고, 교묘하게 발뺌하지 않고 그 차이를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두 번째, 1945년에 이른바 「나그함마디 문서」가 발견됐다. 이 문서는 정통 교회가 의도적으로 폄하했던 주의 형제 야고보, 사도 토마스,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의 권위가 베드로나 다른 사도들보다 높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이는 사도 계열의 교회들과 초기 영지주의 계열의 교회들이 주도권 경쟁을 벌였던 결과물이었다. 이렇게 초기 기독교는 예수-베드로-바울로로 이어지는 직선적인 발전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수많은 해석이 있었고, 여러 분파들의 대립 과정에서 기독교가 탄생했다. 
필자는 바울로 이래 초기 기독교를 ‘이성’의 관점으로 이해하려는 관점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기독교의 탄생이라는 주제를 역사학의 관점에서 추적하고자 시도했다. 필자가 생각한 역사학의 관점에서 가장 중요한 명제는 모든 사건의 배후에 거대하게 흐르는 시대의 흐름이 있으며, 우리가 시대를 주도한다고 생각하는 영웅들은 개인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고 해도 근본적으로 시대정신을 구현한 사람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 점에서 그리스도교의 탄생 과정도 프랑스 혁명의 진행과 유사하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가 내려와서 단숨에 유대교를 완전히 깨뜨리고 그리스도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만든 것이 아니다. 새로운 변혁을 갈망하는 강렬한 시대의 요구가 있었고, 예수, 주의 형제 야고보, 베드로, 요한, 스테파노, 바울로와 같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시대의 요구에 부흥해 새로운 운동을 일으켰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면 예수는 율법의 적용 문제, 성전과 그 의례의 가치, 하느님 나라의 새로운 경계, 종말의 임박에 대해서 당시의 유대인 가운데서 가장 혁신적인 사상을 펼쳤다. 그러나 예수의 이런 혁신적인 사상은 여전히 유대교의 틀 내에서 이뤄졌으며, 당시 예수와 비슷한 생각을 펼치던 무리가 꽤 많이 있었다. 또한 그리스도교의 실질적인 창시자라고 불리는 바울로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그렇게 혁신적인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합류하기 이전에 이미 안티오키아 교회는 이방인 선교에 착수했으며, 이방인에게 율법을 강제하지 않는 선교, 즉 ‘율법에서 자유로운 선교’를 펼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원시 그리스도교의 발전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율법에서 자유로운 믿음은 바울로가 창시한 것이 아니라 이미 원시 그리스도교 내에서 많은 지지자를 확보하고 있던 신앙이었다. 바울로의 위대한 업적은 그런 혁신적인 믿음을 창조해낸 것이 아니라, 다른 신자들이 그 믿음을 포기할 때 강인한 정신으로 그 믿음을 지켜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예수와 바울로를 비롯한 원시 그리스도교의 지도자들이 개인적으로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시대정신의 대변자였을 뿐이다. 과연 그들이 당면했던 시대정신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이 책을 직접 일독해 주시기 바란다.

 

정기문 군산대·사학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저서로 『한국인을 위한 서양사』, 『역사란 무엇인가』, 『로마는 어떻게 강대국이 되었는가』,  『왜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박해했을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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