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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적·자발적 시민운동은 다양한 정치 공간 창출하려는 노력의 표현”
“무형적·자발적 시민운동은 다양한 정치 공간 창출하려는 노력의 표현”
  • 교수신문
  • 승인 2016.05.18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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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안과 밖 시즌3 윤리_ 제10강, 김선욱 숭실대 교수의 ‘정치 공간과 시민사회’

 

‘문화의 안과 밖’시즌3 ‘윤리와 인간의 삶’ 3섹션은 ‘정치 공간의 구성’이다. 3섹션은 모두 8강으로 구성, 관료의 청렴이나 정치의 투명성, 법조윤리 등의 정치 공간 속에서 윤리 도덕이 어떤 가치와 의미가 있는지 다룰 예정이다.
지난 7일(토) 3섹션 ‘정치 공간과 구성’의 첫 번째 강연으로 김선욱 숭실대 교수(철학과)의 ‘정치 공간과 시민사회’가 진행됐다. 전체 강연 일정으로는 10강에 해당한다. 이날 강연에서 김 교수는 “정치 공간은 시민이 만드는 것이지만 정치 공간이 형성되지 못하거나 왜곡되게 기능할 때 시민사회의 모습은 평등과 자유와 시민적 권력에서 멀어진 모습으로 나타나고 이런 모습을 극복하는 것은 정치 공간을 어떻게 일궈 내는가에 달린 일이다”라고 지적하면서 논의를 풀어나갔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을 인용하며 “완전한 공동체인 polis를 통해 인간만의 차별화된 본성인 logos가 잘 기능할 때 훌륭한 삶, 즉 인간적인 삶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 공간의 의미를 현대에 가장 잘 드러낸 예를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에서 찾으며 ‘역사-이론적’ 방법을 통해서 정치의 핵심을 짚기도 했다.
김선욱 교수는 숭실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버펄로)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윤리학, 정치철학, 사회철학 등의 분야를 가르치고 있는 그는 『정치와 진리』, 『한나 아렌트 정치판단이론』, 『한나 아렌트가 들려주는 전체주의 이야기』, 『행복의 철학: 공적 행복을 찾아서』 등을 썼다. 다음은 이날 강연의 주요 내용이다.
자료제공 = 네이버문화재단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낸 정치 공간을 통해 개인은 더 이상 사적 개인으로만 머무르지 않고 공적 개인이 되며, 시민이 된다. 우리가 처한 많은 문제들은 정치 공간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한 데서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정치 공간은 평등한 의견의 교환이 요구되는 곳마다 형성될 수 있으므로, 이는 정치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들 모두의 문제다. 정치 공간은 시민이 만드는 것이지만 역으로 그것이 시민사회의 성격을 형성하기도 하고 시민성을 형성하기도 한다. 하이데거의 말처럼 인간이 세계를 만들지만 그 세계 속에 거주하는 인간은 세계에 의해 형성되기 때문이다. 정치 공간이 형성되지 못하거나 왜곡되게 기능할 때 시민사회의 모습은 평등과 자유와 시민적 권력에서 멀어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런 모습을 극복하는 것은 정치 공간을 어떻게 일구어 내는가에 달린 일이다.

정치 공간이 파괴될 때 인간의 삶은 비참해 진다. 나치 독일에 의한 전체주의 사회는 정치 공간이 조직적 힘에 의해 파괴된 대표적인 경우다. 정치 공간이 소멸된 궁극적 결과는 인간의 파괴다. 그 당시 전체주의를 형성한 요소를 살펴보면, 한국의 현실에서도 정치 공간을 위협하는 전체주의적 요소가 작용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경제지상주의의 힘은 한국 사회에서 나타난 것처럼 무력한 개인을 인신매매, 권리포기를 통한 노예적 삶, 자살 등의 방식으로 직접적인 죽음으로 몰고 가기도 하고, 세월호 사건처럼 간접적으로 구조적인 방식으로 다수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불법적인 선박 개조 및 운행, 비정규직의 양산을 통한 직무 책임감 손상, 官피아 및 海피아로 불리는 민관 유착관계 등의 배후에는 인간의 가치보다 경제적 요구가 앞서는 힘이 작용한 것이었다. 가난한 이들이어서 구조를 받지 못했다는 소문이 세월호 사건 직후 한때 안산 지역에 떠돌았던 것은 잉여감의 표출로 볼 수 있다. 더욱이 침몰중인 배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구조라는 현실의 요구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고 오히려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들의 이미지와 지위와 말에 우선 반응하는 현장의 상황은, 청와대에서 현장까지 자율과 자치와 가치가 철저히 부재함을 보여준 것이다. 행정부 내에 진정한 자치의 주체가 없었던 것은 그 안에 적절히 기능해야 할 정치 공간이 없었다는 말이다. “우리의 정치가 현실에 제대로 응답하고 있는가?” 혹은 “우리들을 잉여적 존재로 만드는 경제지상주의라는 전체주의적 테러에 제대로 저항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할 정치 공간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사회적인 것’이 공적 영역에 들어와 공공의 관심을 점유했다. 현대의 자유주의는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는 정치적 응답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자유주의적 대처는 과연 충분히 인간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는가. 자유주의에 대해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은 미국에서의 정치와 경제의 관계의 역사를 조망하면서, 자유주의의 영향력이 점차 확대됨으로써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지를 짚어 본다.
샌델에 따르면, 자유에 관한 위의 두 가지 생각 모두가 미국 정치사 전제에 뚜렷이 나타난다. 오히려 초기에는 공화주의적 인식이 뚜렷했으나 지난 수십 년간에 걸쳐 점차 절차주의적 성격을 가진 자유주의적 인식에 자리를 내 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주의적 자유관이 그 나름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주인이 된다는 자치의 이념에는 도달하지 못하므로, 오늘날 민주주의에 대한 불만의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게 샌델의 지적이다.

샌델은 이 시대의 미국에는 공화주의적 자유 개념의 부활, 즉 시민의 자치로서의 자유를 다시 살려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물론 그는 이런 부활이 가능하기는 한가, 또 과연 필요한 것인가라는 두 질문에 답해야 한다. 샌델은 개인의 차이를 인정하는 제도, “개인들 사이의 거리를 무너뜨려 일치키는 대신 사람들을 다양한 형태로 모아주는, 즉 그들을 구분하는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공공제도”를 형성하는 것을 대답으로 제시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양한 공동체와 정치기구들에 희망을 걸고 있다.
샌델은 민주주의의 기초가 “우리가 살고 있는 특정 공동체 안에 생명력을 갖고 있는 시민생활 부활에”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다중적인 연고적 자아로서 생각하고 생동할 수 있는 시민들”이 형성될 수 있는데, 이런 시민이 갖는 덕성이란 “때로는 중첩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충돌하는 우리의 의무들 사이에서 자신의 길을 협상하는 능력이자 다중적 충성심이 불러일으키는 긴장감을 견딜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능력이 발생될 수 있는 것은 다양한 공동체들 가운데서 작용하고 있는 정치 공간의 힘인 것이다. 샌델은 시민적 공화주의적 관점에서 자유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는데, 이 가운데 정치 공간의 역할이 잘 드러나는 것이 흥미롭다. 그의 분석은 우리 사회를 돌아보고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데 시사점을 준다.

미국 역사에 대한 샌델의 조망에는, 정치 및 경제제도가 어떤 시민을 만들어 내고 또 그런 시민의 모습에 대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중심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는 한국을 지배하는 지금의 경제구조는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해 볼 수 있다. 샌델은 경제에 대한 정치적 접근 방법을 고민했는데, 이에 따라 우리는 정치 공간을 통해 경제적 지배에서 벗어나 자치를 획득하는 길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물을 수 있다.

정치 공간은 평등과 자유, 그리고 시민적 권력을 이루는 장소인데, 이를 통해 우리는 가치를 회복해 사회의 아노미적 상태, 동물의 우리 속과 같은 상태를 극복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면 우리는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공화주의적 입장에서 샌델은 정치가 시민을 형성하는 계기에 주목하지만, 정치 공간의 기능에 주목하는 우리는 시민이 정치 공간을 창출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형성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1980년대 말부터 한국사회에서 형성돼 많은 영향력을 끼친 시민사회운동이 이 맥락에서 흥미롭다. 1990년대에는 경실련과 참여연대의 사회적 신뢰도가 어느 공공기관들 보다 높았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시민단체들이 그 같은 큰 사회적 영향력을 더 이상 행사하지는 못했지만, 다양한 형태의 시민활동이 점차 확대되기도 했다. 특히 SNS가 발달한 오늘날에는 제한된 관심사에 집중하는 유형화된 시민단체 활동 보다는 촛불시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한 활동 등과 같은 무형적 자발적 시민운동이 더욱 활발해 졌다. 이러한 것들은 정치 공간을 다양한 방식으로 창출하려는 노력의 표현이다.
이때 우리는 이런 운동의 노력이 어떤 자유를 지향하며, 어떤 가치를 지향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이는 우리가 어떤 공동체를 만들기를 원하며 어떤 시민상을 형성하기를 바라는가의 문제다. 자유주의 등과 같은 지배적 정치철학의 근원을 들여다보여 정치 공간에 우리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사태의 근본에 대해 살펴보려는 취지에서다.
끝으로 정치 공간과 관련해 간단하게나마 언급해야 할 문제는 그 공간에 들어오지 못하는 자, 그 공간의 밖에 있는 자들에 관한 것이다. 시민권을 갖지 못한 외국인 노동자들, 재일 조선인들 등과 같은 이들 말이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국민국가들이 형성되면서 주권을 가진 민족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이등 국민으로 살아야 했던 유대인들이 스스로 정치 공간을 창출해내지 못했던 결과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맞게 됐던 경우도 여기에 해당된다. 정치 공간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이 시민으로 될 수 있는데, 정치 공간 밖에서는 시민이 될 권리, 즉 (시민적) 권리들을 가질 권리를 가질 수 없다. 지구에 거주하는 인간들이 정의로운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정치 공간 밖에 있는 이들이 정치 공간을 형성할 수 있도록 돕거나 그들을 우리의 정치 공간 안으로 초대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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