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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험 금융상품 투자, 손실 아닌 ‘보고절차’만 문제삼는 교육부
고위험 금융상품 투자, 손실 아닌 ‘보고절차’만 문제삼는 교육부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6.04.04 1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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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 적립금으로 주식·펀드 투자, 늘려도 괜찮을까?

무능한 사학법인 수익방안 위해 적립금 ‘금융투자’
‘투자전문가’ 알고보니 기획처 방문하는 영업사원?

사립대학이 등록금을 주요 재원으로 조성한 ‘적립금’으로 주식·펀드와 같은 금융상품에 투자해 수억원대 손실을 내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07년 법개정(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으로 대학은 적립금의 50%까지 금융상품에 투자 할 수 있어 금융투자 손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물을 순 없지만, 연 1천여 만원에 달하는 고액 등록금을 부담하는 학생·학부모들은 손익을 떠나 대학이 위험성 높은 금융투자에 나서는 것 자체에 적잖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최근 교육부가 사립대 회계감사 결과를 잇따라 내놨다. 지난해 감사를 받은 이들 대학은 공통적으로 금융투자로 수억원대 손실을 냈고, 이사회 보고절차를 지키지 않아 ‘경고’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교육부는 투자 손실 규모(액수)나 투자금 출처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다 ‘보고절차를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에 한해 감사를 실시하고 주의·경고 처분을 내리고 있다.

덧붙여 최근 교육부와 대학이 적립금 용도 규제를 이전보다 완화해 투자 활용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마련 중이라 등록금을 주요 재원으로 하는 적립금이 고위험 금융투자자금으로 흘러들어갈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대학의 재정구조상 적립금 출처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은 지금도 얼마든지 악용 할 수 있는 대목이다. 투자금으로 등록금을 쓰고도 자금출처를 발전기금이나 감가상각비용 등이라고 둘러대도 사실상 검증 할 수 없다.

1일 교육부는 학교법인 심연학원(북한대학원대)이 적립금을 이사회 심의·의결 없이 2개의 초고위험 펀드상품에 가입했다가 2억4천600여 만원의 손실이 나자 이를 매도했다고 밝혔다. 담당자는 2억원이 넘는 적립금 손실을 보고나서야 이사회에 보고했고 이사회는 이를 의결했다. 교육부는 관련자 6명에게 ‘경고’처분을 내렸다.

학교법인 한길학원(부천대)은 이사회 의결과 관할청 신고 없이 정기예금을 해지하고 채권형 펀드에 가입했다가 적발됐다. 3건에 걸쳐 총 51억4천400만원이 이사회 모르게 채권형 펀드로 이동한 것이다.

고려대와 고려사이버대 법인인 고려중앙학원은 지난 2010년~2011년 이사회 의결 없이 485억원을 주가연계증권에 투자했다가 155억4천만원의 손실을 입어 2012년 당시 김 아무개 이사장이사퇴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사립대 적립금은 매년 늘고 있지만 이를 통한 수익금이 줄면서 대학은 자구책의 일환으로 적립금의 일부를 금융상품에 투자하고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2014년 회계연도 기준으로 전국 사립대 누적적립금은 총 8조2천94억원에 달하고, 투자유가증권 투자액은 8천600억원(10.5%)이다. 적립금의 대부분은 위험성이 적은 정기예금(84.58%)으로 예치해두고 있지만, 정기예금 이자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등록금이 동결(혹은 소폭 상승) 되면서 대학들이 손쉽게 금융투자의 유혹에 빠져들고 있다.

법인이 수익 못내니 적립금 활용하겠다는 대학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김태년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2010~2014 회계연도 사립대 교비회계 적립금 금융투자 현황 분석’에 따르면, 지난 5년간 전체 대학의 16~20%(46~60개교)가 교비적립금으로 주식투자를 했고, 2~3개 대학 중 1개 대학꼴로 손실을 봤다. 특히 2014년 이전에 주식을 처분한 사립대 26개교 중 수익을 낸 대학은 3개교에 불과했다. 

대학별로는 아주대가 2013년까지 88억1천만원을 투자해 24억4천만원(-27.7%)의 손실을 본 후 처분했고, 부산외대는 2011년까지 111억5천만원을 투자해 18억9천만원(-17.0%)을, 같은 기간 가톨릭대는 10억4천만원을 투자해 2억9천만원(-28.2%) 손실을 본 후 투자를 중단했다. 

김태년 의원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이 같은 사립대의 적립금 금융투자를 비판하면서 “사립대 교비회계는 학생 등록금을 주된 재원으로 하는 만큼 수익성이 아닌 안정적인 교육투자를 우선으로 운영돼야 한다”며 “수익창출을 위한 주식투자는 이미 제한이 없고 유가증권 투자가 가능한 (법인의) 수익용 재산으로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교육부와 대학은 적립금 용도 규제를 풀어 미국대학을 모델로 하는 적립금 투자 활성화 대책을 고심하고 있다. 대학은 왜 투자 손실과 그에 따라 빚어질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금융투자에 나설까? 

사립대 법인과 대학이 요구하는 적립금 금융투자 확대의 논리구조는 간단하다. 대규모 기부금 등을 통해 운영비를 마련하는 미국대학과 달리 국내 사립대법인은 수익이 전무하다시피해 적립금을 활용한 대학운영자금 확보가 시급하다는 것이다. 적립금은 등록금을 받아 한해 동안 대학을 운영하고 남은 돈을 적립해 두는 것인데, 사립대법인은 등록금을 쓰고 남은 재원으로 조성되는 적립금의 원금 손실은 최소로 하면서 투자(이자)수익을 통해 대학운영자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이번 교육부 감사에서 적발된 학교법인 명지학원(명지전문대)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명지학원은 ‘교비’적립금 50억원으로 매입한 수익증권을 60억원에 되팔면서 남긴 차익 10억원을 법인회계에 ‘기부금’ 명목으로 넣었다. 교육부는 관련자 2명을 경고 처분하고 법인회계로 들어간 10억원을 교비회계로 되돌려 놓으라는 시정명령을 내렸다. 2012년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교비회계 수입을 해당 학교의 교육에 직접적인 용도로 쓰지 않고 법인회계로 전용할 경우 ‘업무상 횡령죄’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사립대법인과 총장들은 최근 교비회계와 법인회계를 일원화 해달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대학은 적립금을 통한 금융투자가 합법화 된 상황에서 손실을 문제삼는 건 대학 흠집내기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최병열 한국사립대학 재정관리자협의회장(가천대 재무회계팀장)은 “투자는 이익을 볼 수도 있고, 손실을 볼 수도 있는 것”이라며 “법이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금융투자를 단지 손실이 났다는 점에서 비판한다면 법이 잘못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교육부 “손실액수 크다고 문제삼는 건 사학자율성 훼손”

이번 교육부 감사도 고위험 금융투자 손실에 대한 피해 규모나 자금출처를 제외하고 보고절차를 지키지 않은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 교육부 사학감사담당관실의 한 관계자는 “감사를 할 때는 적법절차 이행여부를 기준으로 한다. 적립금의 목적과 기본이 흔들릴 정도의 위험성 있는 투자를 했을 땐 처분심의위원회에서 추가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단순히 손실액수가 크다는 이유만으로 문제를 삼는 건 사학의 자율성을 해칠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적립금 50% 이내에서 투자를 할 수 있다’는 사학기관 재무·회계규칙을 인정하더라도 대학이 금융투자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이유는 여전히 있다. 예컨대 미국대학(국내 일부 대학 포함)에는 금융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위원회를 운영하거나 담당부서에 투자전문인력이 배치돼 있는 데 반해, 국내 대다수 대학은 기획처나 사무처·총무처로 찾아오는 금융투자 영업사원의 추천상품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수도권의 한 사립대 재무·회계팀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A씨는 “대규모 투자를 할만큼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사립대법인은 많지 않기 때문에 고위험 금융투자가 대학가에 만연할 순 없을 것”이라면서도 “증권사 등 일부 금융권 영업사원들이 재무담당 부서를 수시로 찾아와 금융상품을 추천하는데 로비 같은 게 아예 없었겠냐”고 털어놨다. 경상지역의 한 사립대 기획처장 B씨도 “대학의 재무부서엔 금융투자전문가가 거의 없다. 전문가를 통해 투자를 한다는 법인과 대학의 말은 실제론 해당 은행사나 증권사 직원의 조언을 얻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금의 상당 부분을 고액 등록금으로 부담하는 학생·학부모 입장에선 규제완화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대학에 투자를 관리·감독하는 전문부서나 위원회, 전문가 없이 수억~수백억원대의 금융투자가 결정된다는 점을 우려한다. 금융투자를 통한 수익확보 방안이 필요하다는 B 기획처장은 “대학마다 투자 관련분야 교수들이 있고, 여러 전문가들로 위원회를 꾸려 적립금을 투명하게 관리·운용하는 수밖에 없다”면서도 “적립금 투자정보가 교내 교수들에게 공개되는 걸 꺼리는 일부 대학의 경영진들은 위원회를 만들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적립금 활용한 고위험 금융투자가 ‘위험’한 진짜 이유

그간 대학은 등록금을 비롯해 기금, 연구비, 부대수익 등 각종 대학운영자금을 별도의 회계구분없이 섞어서 써왔다. 최근엔 교비회계도 등록금과 기금을 분리할만큼 엄격히 적용하고 있지만 현재 기준으로 사립대가 보유하고 있는 적립금의 출처는 정확히 알 수 없기 때문에 재정·회계전문가들은 적립금의 대부분이 등록금으로 조성됐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따라서 적립금은 곧 등록금 수익의 일부분으로 통용된다. 

적립금을 활용한 대학의 고위험 금융투자가‘위험’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적립금을 금융투자해서 손익이 발생하면 대학은 운영자금으로 쓰면 되지만, 손실이 발생할 경우 투자한 적립금의 출처가 등록금이 아닌 기부금이나 기타 수익금이라고 해명할 여지가 있다. 이처럼 등록금을 썼지만 등록금을 쓰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는 건 2011년 이전의 대학회계가 자금출처를 구분없이 써 온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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