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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사(doxa)’의 프리즘으로 자본주의를 조명한 까닭
‘독사(doxa)’의 프리즘으로 자본주의를 조명한 까닭
  • 교수신문
  • 승인 2016.01.26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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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 말, 말

계몽의 신화로부터 본격화된 자본주의의 신화들은 자본주의의 불패 신화로 결집된다. 자본주의의 ‘불패’ 신화는 자본주의를 ‘인간의 본성’에 걸맞은 체제라는 믿음을 갖게 하고 자본의 탐욕을 인간의 탐욕으로 정당화한다. 자본주의에 의한 인간개조는 인간본성의 거짓 자연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통해 인간의 자발적 순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장치들이 동원된다. 국가정책과 사회제도, 학교교육과 노동현장, 소비시장과 문화산업, 대중매체와 사이버 공간 등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적 인간본성의 거짓자연을 제조하는 작업들이 날로 치밀해지고 정교해진다. 이는 자본주의가 인간의 몸과 마음에서, 이성과 감성에서, 의식과 무의식에서 자연의 힘으로 작용하게 하는 것이다.

나는 이 과정을 독사(doxa)의 프리즘으로 조명해보고자 한다. 부르디외는 모든 기성 질서가 그 독단성을 ‘자연화’하는 경향을 지난다면, 독사는 그 질서를 ‘숙명적인 시스템’이자 ‘사회적 본질’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즉, 독사는 역사를 자연으로 바꾸고 문화적 임의성을 자연적인 것으로 만들어 자발적 예속을 초래하는 ‘제국의 체계’와 같은 강력한 메커니즘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바르트에 따르면 독사는 대중을 설득하기 위해 대중의 수준에 맞춰진 세간의 통념이자 권력의 축복을 받은 합법적이고 자연스러운 지배를 말한다.

독사는 거짓 자연을 의식하지 않는 상태에서 ‘자연’처럼 받아들이고 경험하게 하는 것이며 피지배집단이 지배 권력과 공모 관계를 형성하게 하는 ‘숨겨진 설득’이다. 자본주의의 구조들과 시스템들의 견고성, 엄격성, 효율성에 의해 인간의 삶이 점점 더 촘촘하게 조건 지어질수록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달리 존재할 줄을 모르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자 자연적인 것으로 비춰진다. 자본주의 현실의 밖을 알지도 경험하지도 못하는 인간에게 그 현실은 운명과도 같은 불가항력적인 것으로 다가온다. 자본주의가 정착시켜온 질서를 친숙하고 필연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자발적인 순응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논리는 인간의 무의식에까지 자리 잡게 된다.
 

그동안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와 고민들은 양적, 질적으로 넘쳐났지만, 이데올로기와 문화의 관점에서 특히 신화와 독사의 프리즘으로 자본주의를 면밀하게 들여다보는 작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글은 그 시론적 작업의 하나로 구성된 것이다.
 

―이양자 가톨릭대 명예교수, 『자본주의의 신화와 독사(doxa)』(나남, 402쪽, 25,000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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