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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사학위증의 종말
학사학위증의 종말
  • 김정규 한국방송대 출판문화원·시인
  • 승인 2016.01.26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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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 김정규 한국방송대 출판문화원·시인

바야흐로 졸업의 계절이다. 우리나라 올해 대학 졸업생은 약 60만 명이라고 한다. 그러나 사각모를 하늘 높이 던져 올리며 ‘고생 끝, 행복 시작’을 외치며 환호하던 졸업식장의 풍경은 사라진 지 오래다. 주범은 50%를 넘지 못하는 실질적 취업률. 이것이 대학생과 대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들을 한숨짓게 한다.

최근 우리나라 4년제 대학졸업자의 연평균 수익률이 7.48%, 전문대 졸업자가 8.11%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기성의 논문에 의하면, 4년제 대학을 졸업하는 데까지 드는 비용이 1억3천300만 원, 65세까지의 총 미래편익이 4억7천305만 원이라고 한다. 미래편익은 대졸자의 생애총소득에서 고졸자의 생애총소득을 뺀 금액이다. 전공별로 보면 의약 13.84%, 공학 9.5%, 인문사회 6.3% 순이고, 예체능 분야는 -1.5%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미국은 조금 나은 것 같다.

기준이 똑같지는 않겠지만 뉴욕연방준비은행 자료에 따르면 미국 4년제 대졸자 연평균 수익률(2012년 기준)은 평균 15%, 공학계열 21%, 의약 18%, 경영 17%, 인문 12% 순이고 최하위는 교육 9%라고 한다. 미국의 상위권 대학을 졸업하려면 약 3억 원이 들며, 매년 약 200만 명이 학사학위증을 받는다.

이러한 수치만 보면 대학을 졸업하면 뭔가 남는 장사를 한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이렇게 비싼 등록금은 한국에서나 미국에서나 학부모의 경제적 능력을 넘어서는 경우가 많아 학생들이 수천만 원의 대출금을 안고 학위증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억울한 것은 많은 대학들이 학부생들에게 그 많은 등록금을 거두면서도 정작 가르쳐 주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리처드 애럼 뉴욕대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비판적 사고력, 분석적 추론, 의사소통력을 평가해 본 결과 2년간의 대학생활을 경험하고도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 36%는 4년 내내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발전을 이루지 못했다. 대학생의 학습성취도가 그저 그런 수준이라는 것이다.

대학들이 솔직하게 털어놓지 않는 게 있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1980년대에 들어 고등교육 수요가 폭발하면서 많은 대학들이 본연의 책무에서 이탈해 산업화·고급브랜드화의 길로 들어섰고 등록금이 천정부지로 치솟게 됐다는 사실이다. 20대 초반 4년이라는 황금시기와 그 엄청난 등록금을 강탈당하면서도 학생들은 선택지가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이제는 취업마저도 어려운 상황으로.

그렇다면, 한 학생이 실제로 대학에서 얼마나 많이 배웠고 어떤 일을 해결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등록금 비싼 대학의 이름과 로고가 전면에 인쇄된 한 장의 ‘證’이 더 중요한 시대, 이것이 있어야 취직을 할 수 있고 대학원에 진학할 수 있으며 훌륭한 배우자와 결혼할 수 있는 시대가 종말을 고해야 할 때는 언제쯤 오려는가?

교육매체에 혁명을 가져왔던 인쇄술보다 더 거대해 보이는 것이 도도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OER, OCW, MOOC라는 이름으로 세계 최고 대학의 명강의들이 무료로 공개되고, 거대 IT기업들이 교육시장으로 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미국의 고등교육정책 전문가인 케빈 캐리는 근간 『대학의 미래』라는 책에서 이제 제로(zero)에 가까운 한계비용으로, 학과체제로 표준화된 커리큘럼이 아닌 개인 맞춤형 고등교육이 가능하게 됐다고 주장한다. 어떻게 적절한 비용으로 다수의 학생 개개인에게 맞는 교육을 제공할 것인가 하는, 대학이 생겨날 때부터 안고 있던 근본적인 과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속도 없으면서 고비용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현 제도에 대한 대안이다.

캐리가 말하는 미래의 고등교육은 특정 연령대에만 받는 게 아니라 보편화돼 마치 종교 조직 안에서 이뤄지는 학습 같은 평생교육이다. 이를 위해 대학은 교수 1인이 아닌 다양한 교육전문가들이 통찰력과 자원을 공유하는 협업시스템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는 강의를 개발하고, 전 세계의 학습자들을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현실 및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학습자들이 글로벌 학습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하고, 저렴한 비용으로 실속 있는 교육을 받게 하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 대학에 ‘입학 지원’을 하고 ‘졸업’을 하는 절차는 앞으로는 별 의미가 없을 것이다. 학습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시간에 무시로 대학이나 학습기관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존 체제를 뒤흔드는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우리를 고민에 빠뜨린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인간의 권리이기도 한, 한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발전시켜 나아갈 길을 활짝 열어 주고 있다. 대학과 정책당국, 학생과 학부모가 모두 큰 그림을 그려 봐야 할 때인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모든 교육 주체들이 미래 교육을 설계할 때 꼭 해봐야 할 의미심장한 질문이 하나 있다. “우리의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총장으로서 40년간 하버드를 이끌었던 찰스 엘리엇이 MIT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1869년 <애틀랜틱(The Atlantic)>에 발표한 글의 첫 문장이다.

김정규 한국방송대 출판문화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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