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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형대학 위기, 교육기회는 만들어질까?
통합형대학 위기, 교육기회는 만들어질까?
  • 교수신문
  • 승인 2016.01.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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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고등교육으로 가는 길목에서

이 글은 미국의 고등교육정책 전문가인 케빈 캐리 뉴아메리카재단교육정책 총괄책임자의 저서 『대학의 미래』(공지민 옮김, 지식의날개) 중 일부분을 발췌·요약한 것입니다.

영광과 결점을 모두 안고 있는 현재의 대학은 어떻게 될 것인가? 장기적으로 전통적 대학은 강점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 강점을 살릴 수 있는 비용을 부담할 수 있는 경제적 모델을 창출하는 능력에 따라 번영할 수도, 쇠퇴할 수도 있다.
통합형 대학은 그러한 어려운 선택을 피할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설계 되고 절묘하게 발전돼 왔다. 대학은 그동안 자체적인 모순과 정부의 보조를 유지할 수 있도록 3개의 서로 다른 목적을 추구해왔다. 역사학자 로렌스 베이지가 말하듯 대학은 이상주의의 의식에 취해 무지를 숨겨왔으며 무례하고 가차없이 다른 집단의 허물을 노출시키는 일을 꺼려왔다.

지배층의 권력을 영속화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한 기관들은(더 큰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려 할 것이다. 정보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권력, 부, 배타성을 중심으로 사회적 계급을 나누려는 인간의 본능을 파괴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정보기술은 역시 엄청난 재무적 자본과 사회적 자본을 축적하는 데 기여한다. 하버드는 이를 이용해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겨냥한 인류 파멸의 흉기를 만들고 있다.

연구는 여전히 기존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고, 학자들에게 학문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는 논리도 남아있을 것이다. 학자들이 현재와 같은 물리적 공간에서 연구활동을 할 필요가 있는지, 학자로서의 직업을 지금과 같은 형태로 계속 영위할 수 있는지의 여부는 학문 분야에 따라 크게 달라질 것이다.
만약 화학자가 실험대 앞에 서서 고가의 장비를 다뤄야 한다면 그들은 ‘연구중심대학’과 같은 곳에 모일 것이다. 화학자가 되려면 여전히 실험실을 사용하고 석사 수준의 화학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다. 실습이나 직접 체험이 필요한 미술이나 공연예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학문분야가 더욱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상황에서 시인과 역사학자들이 캠퍼스 내의 학과에서 활동해야 할 이유는 앞의 경우에 비해 분명치 않다. 대학 캠퍼스의 인문대 건물을 들어가보면 많은 연구실이 비어 있거나 잠겨 있다. 그곳의 학자들은 다른 교수나 학생들의 관심사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특정 분야를 연구하는 중이라 학교에서 혼자 작업을 하거나 다른 곳에서 노트북을 가지고 다른 어디에선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보기술은 이미 학자의 양상을 바꾸고 있다. 이제 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대학’ 내에서 대학이 아닌 동료들과의 유대를 통해 학문을 발전시키고 있다.

연구중심기관들은 반드시 학부과정을 둘 필요가 없을 것이다. 기초연구에 학부생을 참여시키는 모습을 중시하는 대학들은 효과적으로 학부생을 가르치기 위해 각 분야 최고의 교수를 영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통합형 대학의 구조적 비논리성을 감추기 위해 대학들이 열의를 다해 말하고 또 말하는 95퍼센트 속임수다. 윌리엄 제임스는 박사학위 소지자에 대해 “그의 도덕적, 사회적, 개인적 소양은 학생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줄지라도 박사학위 심사에서는 그러한 점을 전혀 반영할 수 없다”고 말했다.
물론 예외도 존재한다. MIT는 그 고유의 문화와 사명에 따라 한 장소에 학부생과 세계적인 연구시설을 모두 훌륭하게 수용하고 있다. 그러나 MIT를 기준으로 본다면 기존의 많은 연구중심대학은 이를 충족하지 못할 것이다.

대학은 더욱더 ‘종교 조직’처럼 돼야만 융성할 수 있다. 대학은 학습자들이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아름다운 현실 및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학습자들은 영원히 끝나지 않는 학습을 기반으로 인간적인 공동체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의미있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방법도 강구해야 한다. 앞으로 대학에 ‘입학 지원’을 하고 ‘졸업’을 하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필요한 시간에 언제나 대학이나 학습기관에 참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학습자가 많아지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다. 무크(MOOC)교육과정을 가르치는 교수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돈을 더 벌기 위해 또는 경력을 쌓기 위해 강의를 한다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배우고 싶어 하는 전세계 수만명의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어 한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가르침이 서로 다른 문화적 맥락에서 어떠한 울림이 있는지 기술이 등장하기 전에는 절대 불가능했던 방식으로 실험을 한다는 생각에 크게 들떠 있었다. 담쟁이덩굴로 가득 덮인 통합형 대학의 흔들리는 경계를 넘어 멀리 볼 줄 아는 대학들은 사람들의 학습을 진정 도울 준비가 돼 있는 이들에게 수많은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인간의 역사가 기록된 이례로 거의 모든 기간 동안 고등교육의 위대한 혜택은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열려 있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지식은 권력이 돼 왔다. 무지를 강요하며 사람들을 통제하는 사회에서 배움을 위한 열린 기관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그러나 사용할 수 있는 기술적 수단이 부족해 고등교육의 구조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가장 컸다.
이제 우리는 그 논리를 산산조각 낼 새로운 기술을 두고 고민을 하고 있다. 이 변화는 인간의 권리이기도 한 개인의 고유한 특성을 실현시킬 수 있는 길을 최초로 열어주고 있다. 대학에서 생활하고 배운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학과 그곳에서의 기억을 소중히 여긴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대학이 대학의 유일한 모습은 아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더 나은 고등교육의 탄생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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