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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측 ‘한일회담 백서’
실체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일본 측 ‘한일회담 백서’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6.01.12 14: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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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_ 『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 이동준 편역|삼인|1199쪽|100,000원

이 책은 과거사 청산을 민족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에겐 ‘불편한’ 회고다.
한일회담이 열린 1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우리가 주창해온 ‘해방(liberation)’의
논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백서’는 여실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 1965년 한일협정에 서명하는 박정희 대통령

본문만 1천199쪽. 이런 자료집에 책값을 말하는 건 우습다. 10만원이라는 책값이 표시돼 있지만, 값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일본판 ‘한일회담 백서’이기 때문이다. ‘한일 국교정상화’라고 하지 않은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2015년이 어떤 해였던가. 한일 수교 50주년의 해 아니었던가. 그럼에도 한국과 일본은 그 어느 때 보다 삐걱거렸다. 국교정상화를 했는데도 그랬다면, 도대체 국교정상화(수교)란 무엇이란 말인가. 한일 두 나라가 지배-피지배(종주국-식민지)라는 비정상적 관계를 극복하고 주권국가 간의 정상적 관계로 옮아가기 위해 1951년부터 1965년까지 약 14년 동안 전개한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한일회담)을 제대로 이해할 때, 현재의 격앙된 한일관계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동준 일본 기타큐슈대 부교수(국제관계학과)가 편역한 『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의 의미가 여기에 있다.

이 책은 일본의 눈으로 ‘한일 국교정상화 교섭’을 기록한 자료집이다. 정확하게는 일본 외무성이 1965년 한국과 수교한 후 회담의 전개 양상을 회고하며 작성한 종합 조사보고서라고 말해야 한다. 한국 정부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과정을 분명히 하고 그 정당성을 홍보하기 위해 발간한 『한일회담 백서』에 상응하는 일본판 ‘일한회담 백서’라고 할 수 있다.

시인 임화와 김기림이 ‘현해탄’의 상상력을 문자화한 이후, 현해탄은 한일 두 나라 갈등의 파고를 의미해왔다. 한국과 일본은 수교 50주년의 해에 도무지 현해탄을 넘어서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편역자인 이동준 교수는 “‘해방 후’ 한일관계의 原點이라고 불리는 이른바 ‘1965년 체제’로 되돌아가 봉인돼 은폐돼온 역사적 사실들을 찾아내 검증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일관계의 새로운 모습을 찾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가 보기에 그동안 일본이 바뀌고 한국이 성장했다고들 하지만, 50년 전 한번 잘못 꿰어진 매듭은 이후 변하기는커녕 더욱 한일관계를 옭좨왔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그 얽히고설킨 올가미의 형성 과정을 보여주는 책이 바로 『일한 국교정상화 교섭의 기록』(원제는 『日韓 國交定常化交涉の記錄』)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일본이 ‘전후’ 한일관계를 어떻게 구상하고 만들어갔는지 사료 실증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한일회담의 최대 쟁점이었던 청구권, 어업, 재일조선인의 법적지위, 문화재 반환 문제 등이 어떻게 논의돼 타결됐는지는 물론이고, 한국의 독립(일본제국으로부터의 ‘분리’) 문제, 한국 및 일본에 대한 미국의 정책, 일본의 한반도 정책 등 국제정치의 중대 현안이 관련 근거와 더불어 체계적으로, 시간순으로 기술돼 있다. 물론, 이 책 ‘제15장 다케시마 문제’에는 한일 정부가 독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수차례에 걸쳐 구상서를 주고받으며 한 치 양보 없는 ‘역사 및 법리 논쟁’을 전개한 기록도 가감 없이 실려 있다.

편역자인 이동준 교수는 이 책을 가리켜 일본 외무성이 기록한 ‘일한회담 14년사’라고 말한다. 물론 일본 측의 주장과 논리만이 난무할 것으로 지레 짐작할 수도 있지만,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백서’를 표방할 정도로 사실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다양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일본 외무성 관료의 시각에서 작성된 만큼, 곳곳에서 일본 측의 정당성과 성과를 강조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동시에 이 책은 일본 측의 외교정책 결정 과정과 소개를 그대로 드러내고 그 문제점도 여과 없이 지적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한일회담사를 일목요연하게 재구성하기 위해 일본 외무성은 보유 중인 관련 외교문서를 총동원한 것은 물론이고, 패전 이후 한일관계에 관여한 일본 측 정치인 및 외교관의 인터뷰를 광범위하게 실시해 사료적 근거를 보강했다. 이 교수는 이 대목과 관련 “일본 측이 이처럼 사실관계의 확인에 진력한 것은 물론 이후에 이를 대 한국 외교의 기초자료로서 활용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한일회담의 전체 과정을 사실 확인을 거쳐 체계적으로 정리한 일본 측 자료로는 이 ‘백서’가 사실상 유일하다. 따라서 충분한 사료 조사와 사실 확인 과정을 거쳐 발간됐다는 점에서 이 책은 한국 정부의 『한일회담 백서』를 압도한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런 의미에도 불구하고 일본 외무성이 작성한 이 책이 한일회담의 전모를 말해준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일본 정부가 만든 ‘일한회담’ 기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의 외교 사료를 전혀 참조하지 않았으며, 고려도 하지 않았다. 이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이 교수의 설명대로 보다 객관적인 한일회담사의 완성을 위해 중요한 참고서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편역자가 쓴 「불편한 회고: 일본이 말하는 ‘한일회담 14년사’」에서 자료 입수 경위와 출처, 그리고 책의 함의를 정리한 ‘미완의 해방’ 주요 내용이다.

자료 입수 경위 및 출처: 이 책은 일본 외무성이 2006년 8월 이후 공개한 약 6만 매의 한일회담 관련 외교문서의 일부(원문 총 4천636매)다. 그러나 외교문서 공개 후에도 상당 기간 이 ‘백서’의 존재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외무성이 이 책의 全文을 한꺼번에 일괄 공개한 것이 아니라 각 장별로 분리해 시차를 두면서, 그것도 비밀 해제된 외교문서 속에 뒤섞은 채 공개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흩어져 있던 자료를 아사노 도요미(???野美禮) 와세다대 교수와 편역자가 일본측 공개 외교문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완벽하게 재구성할 수 있었다.

‘분리’의 논리와 ‘미완의 해방’: 이 책은 과거사 청산을 민족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우리에겐 ‘불편한’ 회고다. 한일회담이 열린 지난했던 14년 동안 단 한 차례도 우리가 주창해온 ‘해방(liberation)’의 논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 ‘백서’는 여실히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책은 일본 측이 시종일관 견지해온 ‘분리(separation)’의 논리가 한일회담에서 그대로 관철됐음을 제확인해준다. ‘분리’란 원래 한 몸이었던 한국이 종주국이었던 일본으로부터 떨어져 나온다는 의미로, 조선에 대한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당연시하는 개념이다.

‘분리’의 논리는 당시 국제법에서는 통례였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대일 강화조약 제2조는 한반도의 독립과 관련,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승인하고(recognizing the independence of Korea), 제주도, 거문도 및 울릉도를 포함한 조선에 대한 모든 권리, 권원 및 청구권을 포기한”고 규정했다. 이는 한국이 일제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된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의 결과 ‘분리’됐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분리’된 한반도에 대해 ‘전후’ 일본이 배상하거나 사과할 이유는 없었다. 물론 일본 측이 주장한 ‘분리’는 물론 당시의 지배적인 국제법적 논리에 기초해 있었다. 실제 한일 청구권 협상의 기초가 된 대일 강화조약 제4조 (a)항은 분리지역의 재산 처리에 관한 청구권(채권을 포함) 문제만을 논의 대상으로 규정했다. 전쟁이나 식민지 지배에 기인한 책임이나 배상은 제외된 것이다.

주지하듯이 한국인이 주창하는 과거청산이란 문자 그대로 ‘일제 식민지 지배에 따른 일본의 책임과 피해보상’을 말한다. 그러나 ‘전후’ 한일관계는 사실상 미일전쟁이었던 태평양전쟁에 대한 전후 처리, 특히 이를 규정한 대일 강화조약의 문맥 속에서 전개됐고, 여기에는 식민지 지배에 대한 청산의 논리가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한일회담의 논점 또한 제국과 식민지의 ‘분리’에 따른 국민과 재산, 권리의 분리 문제에 모아졌고, ‘식민지 지배 책임’은 원천적으로 배제됐다. 당연한 귀결로서, 1965년의 한일 기본조약과 관련 협정은 ‘중일 공동성명’(1972년 9월 29일)이나 ‘북일 평양선언’(2002년 9월 17일)에서 보이는 역사인식이 결여돼,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 지배한 데 대해 사죄하거나 반성하는 문장은 일절 포함되지 않았다. 게다가 한일 국교정상화 이후 일본 정부는 국회답변이나 재판 등에서 식민지 지배 자체와 개인의 권리 소멸에 대해 지속적으로 애매한 태도를 취해왔다.

이것이야말로 ‘전후’ 한일관계를 왜곡시킨 근본 원인이자 한일회담이 노정한 결정한 한계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책은 이처럼 ‘분리’의 논리와 ‘해방’의 논리가 맞선 가운데 결국 전자가 후자를 봉인하고 배제해온 ‘전후’ 한일관계의 전개 과정과 그 귀결로서 성립된 ‘1965년 체제’의 본질을 일본 외무성이 세세히 기술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이 책은 불편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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