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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⑮ 독단독선 법인권한
대학, 이것만은 버리고 갑시다⑮ 독단독선 법인권한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12.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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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교육 가로막는 ‘無所不爲’ 죽의 장막

도대체 사학법인의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정치인들조차 ‘투명성’을 강조하는 요즘, 아직도 이들 사학 법인들은 그 내막을 감추려고만 하고 있어 그 내막을 들여다보기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다만 아주 가끔씩 불거져 나왔다 슬그머니 묻혀 버리는 몇몇 사례들이 이들의 속사정을 짐작하게 할 뿐. 아직도 ‘그늘진’ 어느 곳엔가는 의무는 망각한 채 권리만을 부르짖는 법인이 있고, 이들 밑에서 숨소리를 죽이고 있는 교수들이 있고, 내막을 알지도 못한 채 졸업하는 학생들이 있고, 枯死해 가는 대학이 있다.

지난 11일, ㄱ대학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운영자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학교가 사유재산이라는 것 맞소…’ 위의 글과 관련해 교내·외로부터 게시판 운영자에게 저속한 언어의 사용에 관해 많은 항의 전화가 있었습니다. 아래의 기준에 의거 불건전 게시물은 삭제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이 게시판에는 ‘같은 등록금 내고 다른 학교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1년 내내 공사나 하는 그런 학교, 우리가 낸 등록금으로 공사나 하는 건 아닌지’, ‘교수님들, 자꾸 수업시간에 학교가 사유재산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게 현실이라도 그런 말 들으면 얼마나 짜증나고 무서운데요’ 등의 글이 올려져 있었다.
‘입’이 막힌 것은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젊은 총장이 의욕적으로 여러 일들을 해내고 있으며, 교수들을 간섭하는 일도 별로 없다”라며 이야기를 시작한 이 대학 이 아무개 교수는 결국 “사실 우리 눈에도 이사장 아들이 총장으로 있는 것이 아름다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학교 내에서 법인을 비판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라고 털어놓았다. 이 교수는 “계속해서 짓고 있는 모두 교비로 짓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대학의 사례는 그러나 전혀 ‘특별한’ 것이 아니며, 다만 ‘조금 극단적인’ 경우일 뿐이다. 아직도 많은 법인 이사장들이 학교를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있다. 학내 구성원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으며, ‘대학=학교법인의 사유재산’이라는 명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의 입을 막고 있다. ‘내 돈 내고 지어 운영하는 학교, 내 맘대로 하지도 못하느냐’라는 것이 법인의 논리이다. 그러나 이러한 대학의 학생들은 법인의 ‘재정적’ 도움은커녕 자신들이 낸 ‘등록금만큼’만이라도 교육에 제대로 쓰이기를 바랄 뿐이다.
‘개인재산’이기에 운영도 ‘제멋대로’다. 올해 12월 개원 예정으로 부속병원을 짓기 시작한 ㄷ대학은 지난 9월 드디어 병원 준공식을 가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 대학은 병원협회에 공문을 보내 ‘실험실습병원 실태조사를 받기에는 개원준비가 미흡해 2003년도에 다시 신청하겠다’며 예정돼 있던 조사를 포기했다. ‘개원준비위원회’까지 구성됐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논의조차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이다. 병원이 완공된 상태에서 개원이 연기될 경우 당초 병원에서 실습할 것으로 예정하고 입학한 이 대학 의과대학 학생들이 반발할 것은 물론이고 매달 수억 상당의 유지비를 헛되이 지출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이 대학이 개원을 미루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대학 관계자는 “명목상 이유는 ‘아직 정관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사실상은 ‘윗분들’끼리의 주도권 다툼’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현 이사장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태에서 새 이사장 후보로 올라 있는 이사들이 ‘새 이사장이 취임한 후에 개원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를 높이며 개원 연기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 그야말로 제 잇속만 챙기려는 법인의 ‘무소불위’ 힘이 아닐 수 없다.
법인이 재정권, 인사권을 쥐고 흔들다 보니 대학 내부에서 그 잘잘못을 따지는 것은 생각하기 어렵다. 관리감독기능을 가진 ‘교육부’에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학의 파행적 운영으로 관선이사가 파견된 ㅅ대학은 현재 이사회 기능이 마비된 상태이다. 이 아무개 구재단 이사장이 ‘관선이사 파견 결정은 부당하다’며 교육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교육부’와 ‘구재단’ 간의 싸움인 것처럼 보이는 이 소송은 사실상은 ‘교육부와 구재단’과 ‘ㅅ대학 구성원’ 간의 싸움이다.
실제로 교육부 관계자는 이 대학 교수협의회에 면담을 요청해 “지금 상황에서는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소송을 이끌고 있는 이사장 측이 승소할 가능성이 높다. 구재단측 인사 세 명에 교육부 추천 인사 네 명을 더해 정이사진을 구성하는 것으로 합의하는 것이 서로 좋을 것 같다”며 뒷거래를 시도해 왔다.
이미 승소를 포기한 채 “우리가 패소하면 이사장 측에서 정이사 7명을 모두 추천해도 막을 길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나약한’ 교육부가 과연 사학법인을 ‘감독’할 수나 있는 것일까.
이들이 만들어내는 ‘닫힌’ 체제 속에서 어떻게 ‘열린’ 교육이 가능할 것인가. 일부 사학법인들이 일으키는 잡음 속에서 대학사회 전체가 시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때다.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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