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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계를 탈식민화하라!
상상계를 탈식민화하라!
  • 교수신문
  • 승인 2015.11.10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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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발전에서 살아남기: 신자유주의를 넘어 대안 사회 건설까지』 세르주 라투슈 지음|이상빈 옮김|민음사|139쪽|12,000원

그렇다면 지구를 위한, 인간을 위한 희망도 없고 전망도 없는 것일까? 역사의 교훈은 낙관적으로 느끼게 할 그 무엇도 지니고 있지 않다. 그리고 기술 경제적 시스템의 착란에 대한 良識의 승리, 부자들의 이기주의와 지배 계급의 권력 의지에 대한 공생의 승리는 실천 이성의 확신과 설득의 힘을 신뢰할 경우에만 설득력을 지닐 것이다. 오직 이윤의 무제한적인 추구를 통해 조종된 합리성의 일탈만이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문제시할 기회를 낳은 재앙으로 인도된다. 어제의 체르노빌 원전 사고, 오늘의 광우병 사태, 내일의 온실 효과, 그리고 일상 속의 무수한 기술 관련 위기는 성찰의 강력한 보조제다. 재앙이 주는 교훈은 대안의 대두와 승리에 필요한 조건을 구성하는 상상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태평양 서부 해변 브리티시컬럼비아의 인디언들(콰키우틀족, 하이다족, 침시안족 등)은 연어가 자신들과 같은 생명체라고 생각했다. 연어들이 바다 한 가운데서 부족을 이뤄 살아가기 때문이었다. 인디언들도 바다에 자시들의 ‘주거지(tipis)’를 가지고 있었다. 겨울에 연어들은 그들의 지상 형제를 위해 스스로를 희생했고, 연어의 몸으로 하구로 향했다. 강을 거슬러 올라오는 계절이 되면 인디오들은 첫 번째 연어를 특별한 방문객으로 대접했다. 의식을 치르며 그 연어를 먹었던 것이다. 희생물은 잠정적인 차용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희생당한 주인의 재탄생을 가능하게 할 가운데 뼈와 나머지 부분들을 바다에 다시 갖다 놓았다. 그렇게 연어와 인간의 공존과 공생은 만족스러운 방식으로 지속됐다. 백인들의 도착과 더불어 그들이 각 하구에 통조림 공장을 세우면서 이윤을 향한 질주가 과도한 채취를 유발했다. 인디오들은 백인들이 儀式을 존중하지 않았기에 연어들이 사라졌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들이 틀렸다고 누가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우주 속에 인간이 녹아들어야 하는 이러한 의무는 대부분의 사회 속에 존재한다. 시베리아 사람들은 숲 속에서 죽는다. 자신이 받은 것을 동물에게 되돌려주기 위해서다. 이러한 태도는 인간과 나머지 우주 사이의 상호 관계를 내포한다. 가이아가 인간에게 자신을 희생하는 것처럼 인간은 가이아에게 자신을 바칠 준비가 돼 있다. 자연의 쇄신 가능성을 부정하면서, 자연 자원을 ‘근본으로 되돌아가는 것’으로 간주하는 대신 착취해야 할 일차 자원으로 축소하면서, 현대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상호성을 제거해 버렸다.

포장 방식이 어떻든 간에, 탄압받고 질식당했으며 모욕감을 느낀 지구상의 모든 민족은 발전의 기적과 신기루가 감추고 있는 것을 반드시 열망하지는 않는다. 아마 그들은 우선 생존하기를 갈망할 것이다. 칼로리로 측정되는 순전히 생물학적인 생존이 아니라, 혹은 경제학자와 개발 지상주의자들의 시각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만든 것처럼 순전히 물질적인 생존이 아니라, 인간의 열기를 느끼는 문화적 생존 말이다. 가능하다면 그들은 ‘잘’ 살기를 열망한다. 잘 살기를 원하지, 항상 더 가지거나 더 낫게 살기는 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가장 높은 국민 총생산을 향한 경쟁의 덫에 걸려 분쇄되지 않고, 자신들의 가치, 자신들의 규범, 자신들의 문화적 선택에 따라 존엄성 속에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 그것은 북반구의 소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심오한 열망이기도 하지 않을까? 지역주의와 결합된 공생적 탈성장이 구현하려고 목표로 삼은 것은 바로 이러한 열망이다.

 

저자는 파리11대학 경제학 명예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표적인 탈성장 이론가로, 발전 지상주의와 경제를 통한 세계 지배라는 관념을 통렬히 비판한다. 이 책은 2002년 2월 28일부터 3월 3일까지 유네스코 본부에서 개최된 ‘발전의 해체, 세계의 재편’ 국제심포지엄이 끝난 후 유네스코가 세르주 라투슈에게 주문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유네스코의 입장을 반드시 대변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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