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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과수’가 문화재 鑑定을? … 고려시대 금속의 특성조차 이해 못했다
‘국과수’가 문화재 鑑定을? … 고려시대 금속의 특성조차 이해 못했다
  • 김대환 문화재평론가
  • 승인 2015.11.03 16: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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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환의 文響_ (17)고려금속활자 眞僞論爭의 끝

지난달 27일 국과수가 청주고인쇄박물관 소장 고려금속활자 7점에 대해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발표했다. 국과수가 언제부터 문화재 鑑定을 하는 기능까지 부여받았을까. 문화재 전문기관이 아닌 곳에서 문화재에 대한 감정의 결론을 내리다 보니 오히려 眞品의 증거가 되는 고려시대 금속의 특성을 위작의 요건으로 제시하는 등 誤謬를 범했다.

 현대인들이 감탄하는 고려청자의 翡色은 최신의 과학기술로도 재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高價의 명품 청자는 僞作들이 종종 나타난다. 그러나 몇몇 僞作 靑磁로인해 모든 고려청자가 위작이 될 수는 없다. 지난 10월 27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된 고려금속활자 7점을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위작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7점의 유물이 위작이라 해도 현존하는 고려 속활자 모두가 위작일 수는 없다.

이 7점의 遺物들은 이미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眞品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 두 기관은 모두 국립기관으로 서로 상반된 결과를 주장하게 된 것이다. 국과수가 언제부터 문화재 鑑定을 하는 기능까지 부여받았을까. 이번 국과수의 발표 중에 가장 아쉬운 점은 문화재 전문기관이 아닌 곳에서 섣부르게 문화재의 감정에 대한 결론을 내렸다는 점이다. 先賢들의 문화재란 과학적인 분석으로만 전부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과수는 국립문화재연구소에 분석결과를 전달하고 분석을 바탕으로 결론을 의뢰하면 의무는 끝나는 것이었다. 과도한 욕심은 언제나 화를 부른다.

고려금속활자의 과학적 분석에 대한 결론은 평생을 문화재연구로 매진해 온 연구자들로 가득한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내려야 마땅하다. 문화재 전문기관이 아닌 곳에서 문화재에 대한 감정의 결론을 내리다 보니 오히려 眞品의 증거가 되는 고려시대 금속의 특성을 위작의 요건으로 제시하는 등 誤謬를 범했다.

대표적인 오류는 다음과 같다. ①“3차원 금속 컴퓨터단층촬영 결과 인위적 조작흔적 발견과 고려시대 전통적 방식의 주물기법에 의해 제작된 활자가 아니다.” ②“금속활자가 수백 년에 걸쳐 부식된 것처럼 꾸미기위해 걷을 다른 물질로 감싼 것으로 보인다.” ③“금속활자 내면과 외면의 구리, 주석의 성분비율이 다르다.”

오류 ①에 대해서는 ‘인위적 조작 흔적의 기준이 모호하고 매우 주관적이며, 현재 고려시대 전통방식에 의한 금속활자의 鑄造技法은 아무도 모르고 단지 추정만할 뿐인데 어떻게 전통기법의 鑄物로 제작이 되지 않았다고 단정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박할 수 있다. 오류 ②의 경우, ‘청동제품이 오랜 기간에 걸쳐 부식이 되면 靑銅病에 걸리는데 비늘껍질처럼 벗겨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오히려 眞品의 증거’라고 비판할 수 있다.

오류 ③의 성분비율 차이는 ‘필자가 직접 분석한 바에 의하면 고려시대 청동제품은 같은 시기 같은 종류의 제품일지라도 성분비율이 모두 다르다(구리, 주석의 비율 편차가 매우 크며 동일한 제품도 위치에 따라 그 비율이 다르게 나온다). 이 또한 眞品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국과수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단 한 점의 고려금속활자인 ‘복’활자를 비교대상으로 발표했는데, 사실 이 유물은 출토지도 불명확하며 이왕가박물관이 1913년에 일본인 골동품상인 赤星佐七에게 12원을 주고 매입한 것이다. 이 유물을 진품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국과수에서는 이 유물을 진품의 기준으로 설정한 명확한 이유도 설명하지 못한다.

(사진①)의 ‘侶’ ‘句’ ‘柱’ 활자는 모두 고려금속활자의 형태로, 한 점은 眞品(‘侶’)이며 나머지 두 점은 假品(‘句’, ‘柱’)이다. ‘句’자는 주물주조한 후에 인위적으로 산화시키고 먹과 흙을 뒤섞어서 앞뒷면에 입혔고(사진⑤ 사진⑥), ‘柱’자는 역시 주물주조 후에 인위적으로 청동을 부식시켜서 미량의 흙을 입혔다(사진⑦ 사진⑧). 반면에 ‘侶’자는 앞뒷면의 청동이 자연산화된 흔적과 모래와 먹이 자연스럽게 뒤엉겨 붙어서 오랜 기간 땅속에 묻혀있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필자의 35년 경험에서 나온 견해일 뿐이다.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가장 과학적인 방법은 신뢰도가 98%에 이르는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뿐이다. 금속의 성분분석이나 제작방법, 부식정도 등으로 감정을 하는 것은 연구자의 주관적 견해에 따라 서로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방사성 탄소연대측정법’은 우리나라를 비롯 전 세계에서 인정하는 연대측정방법이다. 이 방법을 통하면 (사진①) ‘侶’자의 먹은 고려시대로 연대가 나올 것이고 ‘句’자의 먹은 현대로 나올 것이다.

고려금속활자를 위작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수백 년 된 먹을 중국이나 국내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고 한다. 국내에서 수백 년 된 먹을 구하는 방법은 보물 제1880호로 지정된 ‘丹山烏玉’銘 고려시대 먹을 가져오는 방법이 유일하다(그런데 이것을 쉽게 구할 수 있을까?). 혹시나 해서 중국의 知人에게 확인해 봤더니 “중국의 국가주석도 구하기 힘든 보물”이라고 했다. 위작의 증거를 일부러 조작해 가면서까지 고려금속활자를 위작으로 몰고가야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또 다시 고려의 선현들께 머리 숙여 謝罪한다. 세계적인 인류의 문화유산을 창조한 민족의 후손으로서 올바로 지키지 못하고 연구자로서 힘이 되지 못함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러나 아직 한 가지 희망은 남아있다. 북녘 땅 開城의 高麗王宮址(滿月臺)가 정식 발굴이 이뤄져서 아직 땅속에 남겨져있는 세계최초의 고려금속활자가 출토되면(반드시 出土될 것으로 확신한다), 고려금속활자의 모든 眞僞論爭은 끝날 것이고, 그날이 그리 멀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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