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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경희·고려대 사학과 교수들 “유신시대 회귀, 집필 일체 관여 않겠다”
연세·경희·고려대 사학과 교수들 “유신시대 회귀, 집필 일체 관여 않겠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5.10.15 15: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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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국정교과서 ‘집필 거부’ 잇따라

정부가 지난 12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전환계획을 발표하자 사학과 교수들의 ‘집필 거부’ 성명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주까지 전국 30여 개 대학과 역사학계 원로교수·강사·대학원생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낸 데 이어, 이번엔 교과서를 직접 써야할 역사 관련 교수들이 집필과 관련한 일체의 과정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해 제작과정부터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정교과서 논란의 핵심이 ‘편향성’이기 때문에 역사 관련 교수들의 집필 거부가 전국적으로 확산될 경우, 교육부는 집필진 구성에 어려움을 겪다 자칫 일편향된 교과서를 발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한국역사연구회(회장 정용욱 서울대) 회원교수들은 지난 15일 비상회의를 열고 “엄격한 기준에 따라 심사와 검정을 마치고, 이후 수정까지 거친 교과서들에 대해 정부와 여당이 낡아빠진 색깔론으로 국민 선동을 일삼고 역사연구자와 역사교사들을 모독했다”며 집필 거부는 물론, 대안 한국사 도서 편찬에 속도를 낼 것을 공표했다. 

16일 현재, 역사 관련 교수들이 ‘집필 거부’를 표명한 대학은 △경희대 △고려대 △단국대 △동국대 △부산대 △서울시립대 △성균관대 △연세대 △이화여대 △전남대 △중앙대 △한국교원대 △한국외대 등 13곳에 이른다.

황 부총리 “친일·독재 미화 의구심 해소돼야”

황우여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12일 직접 발표한 ‘역사교과서 발행체제 개선방안’에 따르면 국정 역사교과서의 명칭은 ‘올바른 역사교과서’로 가닥을 잡았다. 교육부는 “역사교과서가 검정제 도입 이후 지속적인 이념논쟁과 편향성 논란을 일으켜 왔다”며 “일부 집필진들은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 편향된 시각을 담거나 특정이념에 따라 객관적 사실을 과장 또는 왜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황우여 부총리도 “역사교육의 출발점인 교과서를 바로잡는 일이야말로 정부가 책임져야 할 중요한 사명”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교과서를 집필해야 할 역사학계 교수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교육부 발표 직후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건 연세대 사학과 교수들이었다. 연세대 사학과 교수 전원(13명)이 13일 집필 거부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정부·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한 데 대해 “학문과 교육이라는 안목이 아니라 오로지 정치적 계산만을 앞세운 조치인만큼, 사회와 교육에 미치는 부작용이 클 것”이라며 “(집필) 제의가 오리라 조금도 생각하지 않지만, 연세대 사학과 교수 13인 전원은 향후 국정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어떤 형태로든 일체 관여하지 않을 것”이라며 집필제의를 거부할 뜻을 분명히 했다.

이튿날엔 경희대 사학과 교수들이 나섰다. 이들 사학과 교수 전원(9명)은 “역사 교과서의 국정화는 시대의 퇴행이고, 한국현대사에서 감시와 통제의 시기로 간주되는 소위 유신시대로 돌아가려는 시도”라고 비판하면서 집필 거부 의사를 밝혔다. 

같은 날,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고려대 명예교수)이 소속한 고려대 사학과 교수들도 집필 거부 성명을 발표했다. ‘한국사 국정교과서 제작 참여에 반대하는 고려대 역사계열 교수 선언서’에는 △한국사학과 △사학과 △역사교육과 교수 전원인 18명과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4명이 뜻을 같이 했다. 

이들은 국정교과서 논란의 진원지로 2013년 교학사 교과서 검정문제를 지목하면서 “정부와 여당은 친일과 독재 미화로 지탄받은 교학사 교과서를 무리하게 통과시키며 검인정제도를 크게 훼손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억지춘양으로 통과시킨 교학사 교과서가 학계와 교육계로부터 질타를 받고 교육현장에서 사실상 채택되지 않자 끝내 국정화라는 무리수를 두게 됐다”며 “향후 진행될 국정교과서 제작과 관련된 연구개발, 집필, 수정 검토를 비롯한 어떠한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밝힌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교수들은 지난달 16일 교수 성명을 통해 이미 “국정화는 헌법적 가치를 훼손하는 반헌법적 행위”라고 규정했다. 닷새 뒤인 21일 연세대 교수들도 “국정교과서는 권력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유신체제가 강요한 국정교과서의 내용은 이를 매우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비판한 바 있다. 

집필 거부 반대성명은 15일에도 이어졌다. 부산대와 이화여대다. 이들 대학은 사학과의 일부 교수들과 역사 관련 교수들이 참여했다. 역사 관련 교수 24명이 낸 선언문에 따르면 “국정교과서 제도가 독재권력의 산물이었고, 국정제 부활은 헌정질서를 문란케 하는 것”이라며 “‘하나의 교과서’를 강요하는 것이 얼마나 반교육적인가에 대해서도 적시했지만 국정화를 강행한 교육부의 처사에 참담함과 분노를 느낀다”고 집필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화여대의 역사학 관련 교수 9명도 성명을 통해 “오직 독재국가과 전체주의 국가들만이 역사교과서와 역사교육을 독점하고 있다. 정부의 국정화 정책은 시대착오적이며, 비민주주의적이며, 비교육적이고 21세기 국제적 상식에 현저히 어긋나는 것이다”라며 집필을 포함한 모든 교과서 제작 절차에 협력을 거부했다. 

500여명의 한국근현대사 연구자들을 회원으로 보유하고 있는 한국근현대사학회(회장 박걸순 충북대 교수)도 전현직 회장단의 이름으로 국정화 반대와 국정교과서 집필 불참을 표명했다. 이들은 “정부가 국정화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올바른 역사교과서’라는 표현으로 눈가림을 하고 있는 행태에 대해 역사를 거꾸로 가는 반역사적인 행위”라고 지적했다. 

역사학 관련 교수들의 집필 거부 움직임이 거세질 경우 교육부는 교과서 집필진 모집에 난항을 겪게 돼, 되려 편향된 역사교과서를 내놓진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육부는 그러나 예정대로 교과서 집필을 강행할 방침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편찬심의회를 역사·교육·국어·헌법학자·교사·학부모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해 교과서 편찬을 수정·보완할 것”이라고 말했다. 황우여 부총리도 지난 16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국사편찬위원회의 입장을 빌려 “집필진 30여 명을 대거 투입하면 1년의 편찬기간이 충분하고, ‘친일·독재 미화’라는 의구심이 없을 거라 확신이 되면 (집필 거부 분위기에) ‘많은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교육부는 중학교 역사 교과서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를 국정으로 전환(현행 검정)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지난 12일 행정예고함에 따라 다음달 중으로 고시 시행과 기본계획을 수립하게 된다. 이후 집필진을 구성해 다음달 말부터 내년 11월 말까지 교과서 집필을 모두 마칠 계획이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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