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2-03 19:10 (금)
쟁점과 동향 : 보수-진보 갈등 해석 불 지핀 한림대 민족통합연구소 세미나
쟁점과 동향 : 보수-진보 갈등 해석 불 지핀 한림대 민족통합연구소 세미나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2.12.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2-12-02 13:33:45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는 각기 스스로의 정체성을 표방하며 격려하게 대립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짜진보’와 ‘가짜보수’가 많다는 역설적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유감스럽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제사보다 젯밥’에 관심을 갖는 것처럼, 진보와 보수는 이데올로기적 담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보다 그것을 방편으로 권력에 대한 맹목적 의지와 ‘마키아벨리적 권력게임’에 몰두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국 이념적 빈곤을 더욱 부채질했다.”


다소 긴 이 인용문의 주인공은 박효종 서울대 교수(국민윤리교육과, 사진 왼쪽)다. 지난 8일 강원도 춘천시 한림대학교 사회과학관 5층 민족통합연구소 세미나실. ‘민족갈등과 민족통합’을 주제로 한 이 대학 민족통합연구소(소장 김인영 정치외교학과 교수)의 창립 4주년 기념 세미나에서였다. 핵심은 우리 사회의 진보와 보수가 민주화 이후에도 지리멸렬하다는 것. 자신의 정교한 철학과 논리 개발에 성실치 못했으며, 마키아벨리적 권력게임에만 몰두해 이념적 빈곤을 초래했다는 진단이다.


박 교수의 발표문 ‘민주화 이후의 보수와 진보 갈등’은 시절 탓인지 세간의 이목을 끌기 충분했다. 박 교수는 민주화 이후 전개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보혁갈등과 관련, 갈등의 성격을 세 가지로 짚어내면서 ‘민족 통합’이라는 주어진 주제를 끌어안는 논조를 취했다.


첫째, 보혁갈등이 적극적 담론보다는 소극적 담론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진보 쪽에서는 일본에 반대하고 미국에 반대하는 데 치중하고 있어 “무엇을 향해 진보를 해야 하는가” 하는 점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 보수주의자들은 북한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데 치중하고 있어 “무엇을 보수해야 하는가”하는 점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다). 이를 두고 박 교수는 “그것은 ‘결손의 정체성(identity of deficiency)’일지언정, ‘풍요성의 정체성(identity of sufficiency)’라고 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둘째, 보수와 진보는 서로 상대방을 ‘경쟁자’라고 하기보다는 ‘적대적 세력’, 파괴해야 할 세력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 이러한 ‘앤태고니즘’이야말로 냉전시대 정치의 본질이며, 이제야말로 ‘아고니스트’로 변신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박 교수는 이 대목에서 ‘경합적 다원주의’를 주문했다. 셋째, 우리 사회에서 보혁갈등이 적극적 범주로 승화되지 못하고 소극적 범주로 머물러 있는 것은 이들 담론이 ‘마키아벨리적 순간’을 포착하고자 하는 ‘권력에의 의지’ 혹은 ‘리비도 도미난디(libido dominandi)’에 귀속돼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렇다면 박 교수는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진보측은 ‘색깔론’이 불리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좌파’라는 말은 쓰지 말자고 주장하지만 이런 주장이 설득력을 얻기 어려운 이유는 ‘권력을 잡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는 지배욕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아니면, “단순히 6·15 공동선언에 이의를 제기하면 반통일세력으로 낙인찍히고 찬성하면 통일세력으로 간주되는 것이야말로 이데올로기적 담론의 부실을 보여주는 전형”이라서? 그는 윤리적 태도를 강조하는 것 같다. “보수와 진보가 저항적 담론에서 벗어나 ‘네거티브’가 아닌 ‘포지티브’ 담론으로 전환하고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경합적 관계에 돌입하며, 또 ‘마키아벨리의 순간’ 포착이 아닌 ‘하버마스적 담론’의 참여에 관심을 가짐으로 同而不和가 아닌 和而不同의 관계를 견지하기를 기대한다”는 데서 그것을 엿볼 수 있다. 논의는 길었지만,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 온 셈이다.


토론자로 나온 장춘익 한림대 교수(철학, 사진 오른쪽)는 세 가지 비판적 고찰을 준비했다. 덧붙여서 하나의 제안을 던져 보수-진보 갈등 해석 논쟁의 여지를 마련했다. 장 교수는, 첫째 도대체 박 교수가 말하는 보수와 진보 분류는 어떤 기준에서 나온 것인가, 둘째 한국의 정치가 과연 보수와 진보의 제로-섬 게임이었나, 셋째 경합적 다원주의의 부재보다는 합리적 논의의 부재가 더 문제가 아닌가 반문했다. 박 교수가 정책의 차원에만 주목함으로써 ‘체계적 분석의 관점’을 놓쳤다는 것이다.


토론의 말미에 던진 장 교수의 다음 주장은 경청할만한 적절한 지적임에 틀림없다. “나는 진보주의 측의 담론이 지배적이었다던가 보수주의를 위협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동성애 때문에 이성애에 기초한 가족제도가 위기에 처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예민함’과 유사한 종류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주의는 (일부의)이론이었지만 보수주의는 권력이고 생활이었다.”


이날 세미나에는 심지연 경남대 교수(정치학)가 ‘해방이후 좌우의 갈등의 원인과 해소노력’을, 박명림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정치학)가 ‘한국전쟁과 갈등’을, 유팔무 한림대 교수(사회학)가 ‘좌-우, 보수-진보 이데올로기 갈등 극복을 위하여’를 발표했다. 한림대 민족통합연구소는 1998년 창설된 이후 지속적으로 ‘민족통합’ 문제를 탐색해왔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