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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서평 :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이필렬 지음, 녹색평론사 刊)와 『자원의 지배』(마이클
쟁점서평 :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이필렬 지음, 녹색평론사 刊)와 『자원의 지배』(마이클
  • 정인환 협성대
  • 승인 2002.12.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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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2-02 13:19:15

정인환 / 협성대·도시행정학과

이필렬 교수는 최근 저서 ‘석유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에서, 효율을 기반으로 하는 재생가능 에너지의 미래를 석유시대의 종말 훨씬 이전에 구체화시키고 있다. 마이클 클레어의 ‘자원의 지배’는 오랫동안 석유를 둘러싼 지역간, 이해당사자간의 갈등과 전략, 정치학에 관련한 해박하고도 치밀한 분석이 잘 녹아있다. 두 저서는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그 출발점과 귀결점이 서로 달라 흥미롭다. 현상과 갈등구조에 관한 시각과 철학에서, 대안을 향한 발걸음에서 사뭇 다르다.

클레어는 석유시대를 일류문명의 기제로 이해하고 있으면서 그 문명을 지켜나가는 각 정치·군사적 세력을 사건별로 그 원인과 관리과정, 결말에 대해 갈등구조와 때때로 동원되는 무력행사의 요인들로 설명하고 있다. ‘페르시아만의 석유분쟁’, ‘카스피해의 에너지분쟁’ 등이 그 대표적인 사건들이다. 이들 지역이 석유문제로 인해 심각하게 몸살을 앓고 있는 이유는 특정 지역에 집중적으로 분포하고 있다는 지정학적인 특성에 반해 그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국가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정치력, 때로는 군사력을 이용한 이권개입과 에너지원의 확보를 위한 갈등구조를 무리하게 만들어 낸다는 데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세계 총석유매장량의 1/5과 가스매장량의 1/8을 가진 카스피해지역을, 구소련체제의 붕괴로 이 지역 신생국가들이 관리하게 되면서 나타난 서방 열강의 에너지원에 대한 관심 및 개발을 위한 자본력과 이의 안정적인 투자를 보장해줄 국제정치력 및 군사력이 혼재돼 이해의 상충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클레어의 자원갈등론은 비단 석유에만 그치지 않는다. 나일강, 요르단강,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 인더스강 유역 등 수많은 오래된 수자원을 둘러싼 분쟁들과 전쟁으로 확대된 부건빌 반란, 시에라리온 분쟁, 보르네오 전쟁 등도 모두 광물과 목재 등과 같은 유한한 자원을 손에 넣기 위한 해당지역을 둘러싼 내부간 또는 내부와 외부 세력간의 치열한 갈등의 산물이라고 본다. 과거 냉전체제가 체제간 이념의 틀을 지켜나가려는 각 진영의 경쟁이었고 그 안에 자원의 문제가 녹아 있었다면, 냉전구도가 깨진 현재와 미래는 미국 및 이와 이해를 같이하는 열강들이 국제경제와 질서를 주도하는 슈퍼파워의 우산 아래서 석유를 위시한 자원확보를 통한 자국의 지속적인 경제활동을 보장받으려는 합목적적인 전략만이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되는 양상인 것이다.

반면 이 교수는 석유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관찰에 머무르지 않고 대안을 향한 바쁜 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석유고갈의 문제는 더 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는 바, 이를 둔 논쟁이라면 이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서구열강의 반인권·반지역적이고 이기적인 치졸한 싸움이 고갈의 문제를 해결해주지 못할 바에야, 재생가능한 에너지와 에너지효율을 주축으로 하는 새로운 그리고 에너지체계로 전세계가 나아가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오히려 종말이 빤히 내다보이는 가운데 이전투구하는 석유전쟁은 9·11테러나 캘리포니아 정전사태, 크고 작은 지역 내 환경·사회문제를 끊임없이 발생시키는 것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끝없이 일어나는 이해세력간의 대리전, 국지전 등의 비극은 결코 다른 문제가 아닌 석유전쟁의 구체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핵에너지가 석유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것도 같은 이치인 것이다. 현재 전세계에서 가동중인 4백여 개의 원자로가 1천 개로 증가한다 하더라도 전체에너지 사용량의 15%밖에 감당하지 못하고, 우라늄의 매장량은 고작 20년밖에 사용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교수는 맥 빠진 석유대세론과 ‘신기루’인 핵에너지 대안론의 운명과 우리나라의 현황을 갖가지로 소개하면서 그 비극성을 증폭시키고 있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안이한 자세도 석유와 핵에너지 확산론에 힘입은 바 커, 국제기후변화협약에서도 개도국 지위로 계속 남아 있으려는 몽니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석유수입이 세계10위권에 또한 주요 이산화탄소 배출국가인 정부의 소아병적 태도는 다가올 석유고갈과 국제환경의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것이고, 결국 대안에너지체계를 미리 준비하지 못해 다시 한번 세계조류에 뒤지는 우를 범할 것이라는 뜻이다.

클레어는 석유문제의 속성을, 현안 중심으로 접근, 석유전쟁으로 해석했고, 이는 자체로 의미 있다고 하겠으나, 자원고갈과 석유전쟁의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 해법제시에서 다소 부족했다고 하겠다. 세계경제의 에너지체질의 문제와 국가간 산유국 영토를 둘러싼 이해관계의 상충이 첨예해 일촉즉발의 전쟁위기 상황을 분석한 직관력 뛰어난 저서로서 문제해결을 기존의 국제에너지기구 등에 일임해 매장량을 동등하게 분배하도록 하고 한편 대체에너지기술과 절약기술을 확대해야 한다는 짤막한 그리고 소극적인 몇 마디로는 미흡한 감이 드는 것이다. 이 교수의 책은 이런 의미에서 많은 혜안을 준다. 석유시대의 비극적 한계에 대란 통렬한 비판과 반성을 제시하면서도, 어디로 가야할지의 비전에 대한 많은 사례를 제시하고 있다. 두 책 모두 에너지 폴리틱스와 대안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울림이 큰 글들로서, 주류적 사조와 대안적 비전으로 상호 배치되는 인식론을 나타내면서도, 한편 현상과 대안을 구분해 봄으로서 상호 보완적인 설명력을 갖는 역작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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