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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구성원 "인준투표 폐지, 부끄럽다"
연세대 구성원 "인준투표 폐지, 부끄럽다"
  • 이재 기자
  • 승인 2015.09.07 18: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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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이사회, 총장 인준투표 폐지하고 공모제 전환 시도

지난 2011년 총장직선제를 폐지했던 연세대가 이번엔 총장 인준투표 폐지에 나섰다. 불과 4년만의 일이다. 더욱이 지난달 한 국립대 교수가 총장직선제 폐지에 반발하며 투신자살한 사건까지 발생한터라 연세대의 행보를 지켜보는 여론은 싸늘하다. 구성원들 사이에서는 ‘사회적으로 민망하다’며 부끄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학교법인 연세대학교는 지난 7월 21일 이사회 회의를 열고 기존 총장선임절차에서 교수평의회가 담당했던 인준투표를 폐지하기로 했다. 인준투표는 이사회가 내정한 총장후보에 대해 전체 교수와 직원들에게 찬반을 묻는 절차다. 현임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인준투표를 거친 첫 총장으로, 당시 투표에서 86.5%의 높은 지지를 받았다.

연세대 이사회가 인준투표를 폐지하기로 한 명분은 교육부가 국립대 총장직선제를 폐지하려 한 이유와 같다. 인준투표가 총장선임절차를 정치적으로 변질시킨다는 것이다. 후보자들이 교수와 직원의 눈치를 보거나, 파벌 싸움 등을 벌인다는 게 이사회의 설명이다. 또 인사권은 이사회 권한이기 때문에 인준투표 등 구성원의 ‘임의적 결정’에 간섭을 받아선 안 된다는 점도 내세웠다.

그러나 구성원들은 이 같은 이사회 측의 설명에 고개를 가로젓고 있다. 인준투표 폐지의 목적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바로 정갑영 현 총장의 재임이다 서길수 연세대 교수평의회장은 “인준투표 삭제의 배경은 정갑영 현 총장의 연임을 돕기 위한 수단이라는 인식이 학내에 널리 퍼져있다”며 “이사회는 총장후보 가운데 전·현직 총장이 지원할 경우에는 검증절차를 삭제하다시피 했다. 여기에 정 총장에게 반감을 품은 교수·직원들이 반대표를 행사할 수 없도록 인준투표 자체도 없애려는 것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이사회가 지난 8월 6일 연세대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한 ‘제18대 총장 초빙 공고’를 보면 전·현직 연세대 총장은 다른 지원자들에 비해 검증절차가 대폭 축약돼 있다. 이미 총장으로 재임하며 검증을 받았다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연세대의 전직 총장은 정갑영 현 총장을 제외하면 총장에 출마하기엔 모두 고령이다. 가장 최근에 퇴임한 제17대 김한중 총장도 1948년생으로 67세고, 제16대 정창영 총장과 제15대 김우식 총장은 각각 1943년생, 1940년생으로 이미 일흔을 넘겼다. 현실적으로 1951년생인 정갑영 총장을 제외하면 전직 총장 가운데 제18대 총장후보로 자원할 인사는 없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연세대는 대학의 시계를 거꾸로 돌렸다는 대내외적 비판을 피할 수 없다. 특히 지난달 부산대에서 총장직선제 폐지에 반발한 한 교수가 자살한 사건까지 발생한 뒤라 여론은 더욱 안 좋다. 부산대 사건을 보고도 연세대가 대학의 민주주의를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은 이미 내부에서도 거세다. 

정광수 연세대 노동조합협의회 위원장은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총장선임제도 변경에 동의할 수 없다. 특히 지금 총장직선제가 사회적 문제가 된 상황에서 명문사학을 자처하는 연세대가 이처럼 비합리적이고 권위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부끄러운 일이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이런 비난까지 감수하며 연세대가 총장선임절차를 바꾸려는 이유는 뭘까. 단서는 교수들의 지지다. 정갑영 총장은 지난 4년간 취임 당시의 80%를 넘는 지지율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와 인천 송도 국제캠퍼스 사업 등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권위적인 업무처리방식 탓에 교수와 직원, 학생 등과 잦은 갈등을 빚었다.

특히 백양로 재창조 프로젝트는 학내의 극심한 반발을 불렀다. 이 사업은 연세대 정문에서 본관 광장 앞까지 이어진 진입로인 ‘백양로’를 차 없는 거리로 만들고 지하에 거대한 캠퍼스를 조성한다는 사업이다. 착공 당시 일부 교수들은 이 사업이 연세대의 근간을 흔드는 사업이라며 크게 반발해 공사를 강행하는 포크레인을 막아서는 등 물리적인 충돌까지 발생한 바 있다.

송준석 총학생회장은 "백양로 프로젝트를 비롯해 송도 국제캠퍼스의 무리한 확장 등 여러 사안에서 독단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의무부총장 직선제를 일방적으로 폐지한 것도 교수들의 반감을 크게 샀다. 인준투표를 한다면 과거와 달리 과반수 찬성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고 분석했다.

앞서 교수와 직원, 학생 등 연세대 구성원 100여명은 ‘민주적 총장선출제도 수호를 위한 범연세인 모임(범연세모임)’을 구성하고 지난 2일 연세대 서울캠퍼스와 원주캠퍼스에서 이사회를 규탄하는 궐기대회를 열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사회 퇴진운동까지 전개하겠다는 태세다.

이재 기자 jael@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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