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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현대사 연구자가 추적한 근대 首都의 계보학
독일현대사 연구자가 추적한 근대 首都의 계보학
  • 교수신문
  • 승인 2015.08.19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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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상상의 아테네, 베를린·도쿄·서울: 기억과 건축이 빚어낸 불협화음의 문화사』 전진성 지음|천년의상상|784쪽|32,000원

타당하다고 간주된 ‘근대문명’이 식민지 피지배자들의 거부의사를 원천 봉쇄하고

이들의 의식마저 식민화하는 결과를 초래했음에 주목한다.
결국 수도 서울의 ‘식민성’에 대한 조망은 모더니티라는 범주로는
포괄될 수 없는 색다른 시간과 공간을 상상하는

출발점이 되고자한다. 선진국, 중심부, 서양, 동양, 영토, 역사, 문화유산, 혹은 개혁과

성장 등과 같은 지배적 담론의 ‘외부’에 우리의 미래가 놓여있다.

 

주류 역사학에 대한 반항의 정신에서 탄생한 문화사 서술은 민족이나 문명권 등 시간과 공간의 주어진 단위 및 인식론적 전제를 되묻고 거스르는 특징이 있다. 근대 수도의 계보학을 탐색하는 이 책도 국경을 횡단하고 학문영역들 간의 경계를 도외시했다는 점에서 문화사의 성격을 지닌다. 이 책이 주로 다루는 대상은 건축과 도시계획이지만 일반적인 건축사 서술과는 달리 건축물 그 자체보다 건축적 재현의 문제, 다시 말해 그러한 건축물과 도시경관을 가능케 했던 이데올로기와 인식틀, 그리고 그것이 현실 속에서 빚어내는 ‘불협화음’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 책은 역사학의 엄격한 학문적 체계에 구애받지 않고 시각적으로 역사를 조망하고자 했다. 하나의 건축물은 현실의 양상을 직설적이기보다는 증상적으로 표출한다. 공공건축의 양식에 표현된 지배층의 집단기억은 도시민의 삶과 의식에 영향을 끼치지만 어느덧 그들의 물질적 실천과는 유리된 질곡으로 작용하게 된다. 기억과 공간, 이데올로기와 일상은 뗄 수 없이 뒤얽혀있으면서도 늘 괴리된다. 따라서 변화하는 현실의 양상을 포착하려면 상이한 층위들, 영역들 간의 복합적 관계를 전면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다. 이른바 시각적 역사(visual history)란 보이지 않는 것에 시선을 집중하는 방법적 전략으로, 권력에 부응하는 조감도적 혹은 투시도법적 시각에 매몰되지 않는 한, 오히려 그 시선이 멈추는 지배와 일상의 틈새를 드러낼 수 있다. 바로 이 책이 택한 전략이다.

이 책은 건축과 도시계획을 포함한 도시의 형성과 변화를 ‘담론’이라는 차원으로 다뤘다. 미셸 푸코가 오래 전에 제시했던 ‘담론 형성체’의 이론은 여전히 방법론적으로 호소력이 있다. 건축적 재현도 이데올로기적, 물질적 측면을 포괄해 하나의 담론 형성체로 볼 수 있다. 프로이센의 수도 베를린을 ‘슈프레 강가의 아테네’로 상상하고 재현하는데 동원됐던 일련의 담론은 중부 유럽의 신흥 강국에 문화적 경쟁력과 역사적 정당성을 부여하려는 정치적 기획의 일환이었다. 유럽의 주변부에 마치 구세주처럼 재림한 고대 그리스는 민주주의나 자유의 이상과는 거리가 멀었고 오히려 지극히 반혁명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관헌국가를 대변했다. 궁정건축가 카를 프리드리히 싱켈로 대표되는 프로이센 고전주의와 그것의 건축적 구현인 수도 베를린의 경관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담론 형성체다. 근대 건축의 기본원리로 알려진 ‘텍토닉’은 바로 그 일부로, 기능적 합목적성과 미적 형식 간의 유기적 통일성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건축술을 넘어 국왕과 신민이 일체화된 프로이센 관헌국가의 이념형으로 읽힐 수 있다.

물론 담론을 현실과 등치해서는 곤란하다. ‘상상의 아테네’는 반동적 국가기제가 작동하는 살벌한 현실의 공간이었을 뿐이다. 텍토닉의 원리가 현실 사회에 적용될 때 실로 숨막힐듯한 통합과 비정한 배제의 공간을 낳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그것은 푸코가 말했던, 국가를 마치 하나의 거대한 몸처럼 관리하는 근대 국가 특유의 ‘통치성’ 원리의 한 표현으로 볼 수도 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슈프레 강가의 아테네가 도쿄灣의 베를린으로 전이되는 것은 뜬금 없는 일만은 아니었다. 제국주의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스로 제국주의 국가로 나아간 일본은 프로이센식 국가 텍토닉의 일본판인 ‘國體’의 담론을 전개했다.

이 책은 독일 문화가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을 다루고 있지만, 그것은 문화의 연속적 ‘전파’라기보다는 특정한 담론 형성체의 불연속적 ‘재배치’로 보아야 옳다. 따라서 원본의 왜곡을 논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오히려 변형된 모사본을 통해 거꾸로 원본의 진면목을 논할 수 있게 된다. 동아시아의 현실에서 프로이센 고전주의 건축의 유산은 서구적 모더니티의 도상으로 기능했다. 그것은 세계 속에서 새로운 위상을 모색하던 제국 일본의 권력정치적 야망의 표현이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에 출현한 상상의 아테네가 식민주의적 지배 담론으로 기능하게 되는 것은 가히 논리적 필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설사 싱켈의 건축이 식민주의와 직접 연루되지는 않았다 해도 그 ‘모던함’ 자체는 무자비한 식민주의적 전유의 가능성을 열었다.

일제 식민지도시 경성에서 싱켈식 텍토닉은, 조선총독부 청사가 웅변하듯, 더 이상 구조적 통일성이 아니라 오히려 구조적 분리의 원리로 작동했다. 그것은 중심과 주변, 주체와 객체, 식민주의자의 현재와 피식민자의 과거를 철저히 분리했다. 물론 이는 텍토닉의 식민지적 굴절이라기보다는 그 논리적 귀결로 봐야 옳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식민지를 바라보는 일본 관료의 시선은 그들이 일본과 수도 도쿄를 보는 시선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본질적 차이가 없다는 점이다. 새로운 제국수도의 ‘발명’은 기존의 시공간을 마치 그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듯 철저히 부정함으로써만 가능했던 것이다. 다만 제국 본토에서는 그러한 시선이 현실의 벽에 부닥쳐 굴절됐던 데 반해, 식민지에서는 시선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마음대로 소거할 수 있었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식민지의 현실은 ‘근대’의 민낯을 폭로한다. 모더니티란 애초 변화무쌍한 현실이 낳은 트라우마적 자기연민 내지는 과대망상에서 비롯된 담론 형성체일 뿐으로, 역사적 필연과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일본이 한국을 발전시켜줬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조야한 논리는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식민지 근대성’ 내지는 ‘대안적 근대’론의 규범적 근대 인식도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만약 식민지 피지배자들의 역사를 적극적으로 평가하려는 취지로 피지배자들이 제국과는 다른 여건에서 문명, 자유와 평등, 권리 등 근대적 가치를 ‘주체적으로’ 전유했다고 본다면 이는 진실의 절반을 가리고 만다. ‘(포스트)식민지 근대’의 현실은 ‘대안적 근대’이기는커녕 무수한 ‘타자’들의 삶과 가치를 억압하고 말살함으로써 초래된 비극적 결과였다. 그럴듯한 성공담으로 해소될 일이 아니다.

이 책은 양풍 건축의 눈부신 경관에 힘입어 무조건 타당하다고 간주된 ‘근대문명’이 식민지 피지배자들의 거부의사를 원천 봉쇄하고 이들의 의식마저 식민화하는 결과를 초래했음에 주목한다. 결국 수도 서울의 ‘식민성’에 대한 조망은 모더니티라는 범주로는 포괄될 수 없는 색다른 시간과 공간을 상상하는 출발점이 되고자한다. 선진국, 중심부, 서양, 동양, 영토, 역사, 문화유산, 혹은 개혁과 성장 등과 같은 지배적 담론의 ‘외부’에 우리의 미래가 놓여있다.

끝으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이 책의 집필은 한 때 ‘프로이센 고전주의와 서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연구재단 문화융복합단의 인문저술 지원을 받았지만 중간보고서가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심사단으로부터 출판부적합 판정을 받아 지원 중단됐다. 심사단의 평가는 참으로 실망스러웠다. ‘건축학에서는 이런 식으로 하지 않는다’ ‘지나치게 담론 중심적이다’ ‘일본어 자료가 부족하다’ 등등 전혀 ‘융복합적’이지 않은 평가들이었으니 말이다. 명색이 학제 간 연구를 장려한다는 기관이 자신의 철옹성을 고집하는 개개인 ‘전문가’들의 자의에 기대고 있다니 한심하지 않은가. 비록 분과영역을 넘어서는 모험이 위험천만하고 허점투성이라 해도 오히려 사기를 북돋우고 한발이라도 더 내디딜 수 있도록 도와야할 기관이 아닌가. 실로 우리 학계의 현주소다. 그들의 평가가 과연 옳았는지 아니면 지독히도 부당한 것이었는지는 독자의 평가에 맡기겠다.

전진성 부산교대·사회교육과

필자는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서독 사회사 연구의 기원』 (독어본), 『보수혁명: 독일 지식인들의 허무주의적 이상』, 『박물관의 탄생』, 『역사가 기억을 말하다』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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