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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식의 ‘퇴행’ 강요하는 힘에 맞서 새 역사 쓸 각오를”
“역사인식의 ‘퇴행’ 강요하는 힘에 맞서 새 역사 쓸 각오를”
  • 정용욱 서울대·국사학과
  • 승인 2015.08.17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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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광복 70주년을 다시 생각하다_ 역사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과거사 문제에서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부정하는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은 진작부터 국제사회와 국내외 역사학계의 비판을 초래했다. 지난 5월 세계의 일본학 전공자 187명과 일본의 역사학 관련 주요 16개 학회가 아베 정권의 역사인식을 비판하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한·일 간 역사 인식의 차이는 양국의 국교정상화 과정부터 노출됐던 것이고, 이러한 인식 차이는 일본의 보수 또는 극우 정객의 ‘망언’이라는 형태로 반복적으로 표출됐다. 일본 정부가 굳이 한국, 중국과 외교적 갈등을 야기하면서까지 역사 문제에 대한 과거의 입장과 태도를 바꾸고, 또 교과서 개정에 강하게 집착하는 것은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 정세 변화에 대응하는 아베 정권의 전략이 나름대로 확고하게 수립됐기 때문이다.

그 방향은 국제적으로는 미일방위협력지침 개정에 나타나듯 미일동맹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를 고수하고, 국내적으로는 최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안을 밀어붙여 사실상 평화헌법을 무력화시키는 데 나타나듯 일본을 전쟁을 할 수 있는 보통국가, 군사대국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그 밑바탕에는 경제의 군사화를 통한 경제회생이라는 발상도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분쟁은 2차 대전이 남긴 구조적 문제

▲ 정용욱 서울대·국사학과

이러한 사정은 동아시아 역사분쟁이 이 지역에서 2차 대전의 전후 처리가 가진 보다 구조적인 문제와 연결돼 있음을 암시한다. 샌프란시스코 체제 하에서 일본은 미국의 대소·대중 봉쇄를 위한 하위협력자로 기능했고, 일본제국주의의 최대 피해자였던 한국과 중국은 샌프란시스코 평화협상에서 배제됨으로써 동아시아의 집단적이고 진정한 평화가 냉전기에는 이뤄지지 못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서 탈냉전으로 동아시아 질서의 재조정이 현안이 되자 냉전제체 하에서 봉쇄됐던 과거청산과 진정한 평화만들기라는 과제가 수면 위로 솟아올랐고, 그것은 제대로 해결의 방향을 찾지 못한 채 일본과 주변국 사이의 영토분쟁과 역사분쟁으로 표출됐다.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을 둘러싼 한·중·일 삼국 사이의 논란, 중국의 동북공정을 둘러싼 한·중 양국의 논란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일본 정부의 3대 담화가 역사분쟁이 외교쟁점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는 안전장치의 역할을 했다면 한·중·일 삼국의 역사적 화해를 위한 시민들의 공동행동과 아래로부터의 연대활동은 시민사회 차원에서 상호이해의 폭을 넓혔고, 역사분쟁을 막는 실질적인 동력의 역할을 했다. ‘위안부’ 문제의 역사적 해결을 위한 1990년대의 국제연대운동은 2000년대에 들어 한·중·일 삼국에서 민간주도형 역사인식의 공유 모델을 만드는 단계로까지 발전했다. 역사화해를 위한 시민사회의 국제적 연대활동은 정부, 시민사회, 학계, 교육계가 갖자 자기 몫을 성실하게 해낼 때 동아시아의 역사분쟁이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

각국 정부는 역사분쟁에서 사회적 자원과 기회비용을 낭비하는 대신 이렇게 확대된 국제연대활동을 통해서 이룩한 상호이해의 폭을 더욱 넓히고 확산하는 데 힘을 쏟아야할 것이지만 최근 한·일 양국의 사태 전개는 양식 있는 시민들의 우려를 증폭시키고 있다. 일본과의 역사 분쟁이 좀처럼 외교적 해법을 찾지 못한 채 장기화하고 있는 이유는 과거와 달리 일본 정부가 인식 차를 좁히려는 노력을 외면한 채 오히려 주변국과의 역사분쟁을 격화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역사 문제를 국내 정치에 활용해 배외주의적이고 충동적인 감정을 고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국민들에게 역사적 기억상실증을 강요하는 그러한 현상은 한국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역으로 양국 정부의 그러한 태도가 역사적 화해를 위한 동아시아 차원의 시민연대 활동을 위축시키고 있다. 2013년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면서 일으킨 파행과 논란은 한국 사회의 역사적 기억상실증과 역사전쟁의 전개양상을 발 보여준다. 이 부실 교과서의 채택 과정에서 교육부가 헌법에도 명시된 교육의 전문성과 자주성,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했을 뿐만 아니라 절차적 정당성마저 잃었다는 점은 특기할 필요가 있다.

한·중·일 역사분쟁이 탈냉전 이후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재정립 과정에서 비롯됐다는 점을 앞에서 지적했지만 국내의 역사분쟁도 나름대로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1990년대에 김영삼 정부가 ‘역사바로세우기’를 표방하며 과거사 청산에 나서자 한국의 두 보수언론사가 이승만과 박정희 연재를 통해 현대사 재해석을 시도했다. 

특히 그들을 ‘건국’과 ‘근대화’의 주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그들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자기 부정과 혐오의 인식론’으로 매도하고, 그것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인식론을 바탕으로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틀을 세울 것을 주장했다. 보수언론의 현대사 재해석 작업은 김영삼 정부의 개혁에 공세적 비판을 가함으로써 지배층 내 수구세력의 헤게모니를 재확립하고, 수구세력의 역사적 복권과 지배이념을 재창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이용됐음을 의미한다. 

‘국정 교과서 논란’ 역사 매개로 정파적 이해 강요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논란이나 다시 점화된 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은 20년의 시차를 두고 1990년대의 현대사 인식을 둘러싼 논란을 재연하고 있다. 교학사 교과서가 근현대사 서술에서 관철하고자 했던 핵심 내용이나 여당 대표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주장하며 언급한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대우해야 한다는 발언은 모두 1990년대 두 신문사가 주장했던 내용의 판박이다. 

그 논리와 논리의 관철방식도 두 신문이 구사했던 것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우선 특정인에 대한 평가로 그들이 살았던 시대에 대한 평가를 대체하고, 이를 통해 한국 현대사 전반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다. 그리고 역사적 사실에 대한 구체적 해명을 제시하기보다는 독자들과 비판자들에게 ‘역사를 보는 눈과 틀’을 바꿀 것을 강요한다. 그러한 관점과 인식틀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이념적 차이나 정치적 견해 차이로 치환하고, 이를 좌파적 인식으로 매도한다. 

전형적인 색깔론이자 사실상 자신의 정파적 이해관계와 관점을 역사를 매개로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셈이고, 역사를 정치적 도구로 만드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역사는 탐구의 대상이지 정략과 전쟁의 대상이 결코 아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역사를 위해 해야 할 일은 역사적 정체성과 상상력의 내용을 심화하고, 그 품과 폭을 넓힐 수 있도록 장려하는 것이지 그것을 제한하거나 제약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이 국민 대다수가 동의할 수 없는 정체성을 강요하는 것을 사전적으로 정의하면 독재이고, 사상과 학문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곳에서 역사는 지혜를 길어 올리는 샘이 아니라 공동체의 무덤이 된다.

최근 사회 각 방면에서 민주주의 위기론이 날로 고조되고 있지만 역사학과 역사인식의 측면에서도 문제는 민주주의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 도정에서 역사학은 공화국의 역사적 정체성을 쇄신해왔고, 또 공동체의 역사적 상상력의 폭을 넓히는 데 기여해왔다. 그것은 동시에 대중들의 역사의식을 심화시키고 확장했다. 이 작업은 한국 사회와 역사학계가 공동으로 이룬 성과이고,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다양한 역사적 사고와 실험이 가능했기 때문에 이뤄진 성과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역사학은 상보적 관계에서 서로를 지지, 지원하면서 발전해왔다. 최근 들어 한국 사회에서 역사인식의 퇴행을 강요당하는 현상이 빈발하고 있지만 지난 역사가 그래왔듯이 그러한 반민주적 시도는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강요된 퇴행을 극복하기 위한 민주적 역량의 결집과 민주공화국 쇄신을 위한 새로운 역사적 상상력의 창출과 확충이 필요한 때다. 

정용욱 서울대·국사학과
필자는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탈냉전과 미국의 신세계질서』, 『한국현대사강의』(공저) 등이 있다. 한국역사연구회 회장으로 있다.

□ 이 글은 지난 13일(목) 서울 역사박물관 야주개홀에서 진행된 ‘해방 70주년 역사3단체 학술회의―역사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에서 정용욱 서울대 교수(한국역사연구회 회장)의 기조발제 「역사학과 민주주의, 그리고 해방」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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