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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배 경험한 엘리트들, 정신의 식민화 겪고 있다”
“식민지배 경험한 엘리트들, 정신의 식민화 겪고 있다”
  • 교수신문
  • 승인 2015.08.11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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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신간_ 『친밀한 적: 식민주의하의 자아 상실과 회복』 아시스 난디 지음|이옥순·이정진 옮김|창비|274쪽|15,000원

무력감을 선사하는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나는 언제…” 미셸 푸꼬의 『감시와 처벌』을 접했을 때처럼 이 책을 읽는 내 심정이 그랬다. 인도에서 박사학위논문 심사를 기다리며 우연히 읽은 이 책은 식민주의와 문화라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내 학위논문을 다시 쓰고 싶어질 정도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나의 귀환을 7년이나 손꼽아 기다리신 어머니를 떠올리곤 그대로 귀국길을 택했고, 곧바로(1993년) 이 책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그리고 한참 뒤에 나온 『여성적인 동양이 남성적인 서양을 만났을 때』(푸른역사 1999)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푸른역사 2002) 등의 졸저에 이르러서야 이 책의 영향을 받아 역사와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생각한 결과를 담게 됐다.

인도인 학자 아시스 난디의 『친밀한 적』은 나뿐 아니라 지구상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 ‘일가견’을 가진 책이다. 1993년에 출간된 이 책으로 저자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포스트콜로니얼 연구와 문화연구의 선구자로 여겨지게 됐고, 사회학·역사학·인류학 등 여러 학문과 소비적 세계화와 조직화한 폭력에 대한 반대운동 등 실천 분야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을 통해 비서구 출신으로 세계 지식인의 지도에서 자기만의 영토를 확보한 난디는 이후 문화이론가, 미래학자, 사상가, 정치심리학자, 인원운동가, 피억압자의 대변인 등 많은 별칭을 얻으며 인류의 미래를 위해 대안적 개념을 제시하는 이단자이자 예언자로 활약하고 있다.

심리학 학술지에 실린 두 편의 논문을 엮은 『친밀한 적』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통찰은 서문에서 호명한 ‘두 번째 식민화’라는 개념이다. 난디는 식민주의가 지구상에서 공식적으로 끝났어도 식민지배를 받은 사람들의 정신에 잔존한다는 새로운 생각을 내놓았다. 그가 사례로 제시한 인도는 1947년에 영국의 지배(첫 번째 식민화)를 벗어났으나 지배자의 가치과 규범을 내면화한 엘리트들이 포스트콜로니얼 시대에도 식민주의 여파 속에서 살아가는 곳이다. 난디는 그들에게 내재된 식민주의, 곧 서구지배자에게 봉사하거나 인정받는 서구 방식의 개념, 문화적 우선 순위, 계층화, 지배적 자아를 ‘우리 안의 적’, 곧 ‘친밀한 적’이라고 불렀다.

난디의 논리를 따르면 ‘친밀한 적’을 다정하게 껴안은, 식민지배를 경험한 나라의 엘리트들은 정신의 식민화를 겪고 있는 셈이다. 서구의 물리적 지배(첫 번째 식민화)를 거부하면서도 정신의 서구화를 부정하지 않는 그들은, 서구 방식의 사유체계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 이에 지배당하고 혼란과 자기비하를 겪으면서 진정한 탈식민화를 방해받는다.

이 책은 끊임없이 지배자를 닮아가고 그 지배자와 대등하게 서고픈 피지배자의 콤플렉스와 정치적 행동에 연계된 심리적 면모를 인도의 다양한 문화변용을 통해 추적하며, 첫 번째 식민화―정치적 지배와 경제적 이용―에 집중한 이전 연구 성과들과 확연히 구분되는 독창성을 보여준다.

 

이 글은 번역자인 이옥순 교수가 쓴 ‘개정번역판을 내며’의 일부다. 아시스 난디(Ashis Nandy)는 1937년 영국령 인도의 바갈푸르에서 태어나 히슬롭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구자라트대학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정치심리학자, 사회이론가, 비평가로 이름을 알렸다. 2007년에는 아시아 문화의 보존과 창조에 기여한 사람에게 수여되는 ‘후꾸오카아시아문화상’을 수상했다. 『친밀한 적』은 1983년 옥스퍼드대 출판사에서 초판이 나왔다. 2015년 이옥순과 이정진에 의해 ‘개정번역판’이 나왔다. 개정번역판에는 2007년 『친밀한 적』의 불어판 출간을 기념해 열린 저자의 공개강의 원고가 ‘후기’ 형태로 수록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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