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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단과학 정보 독점에 맞서는 무시못할 아마추어들
첨단과학 정보 독점에 맞서는 무시못할 아마추어들
  • 교수신문
  • 승인 2015.08.11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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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오 해커’를 주목하라

‘바이오 해커’는 말 그대로 생명체를 해킹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런데 몰래 기밀을 빼돌리거나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해커들과는 거리가 멀다. 이 단어는 ‘DIY-Bio’(생명체를 대상으로 어떤 행위를 스스로 하는 사람들)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생명체의 현상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자연과학자에 생명체를 인간이 원하는대로 변화시키고 제작하는 공학자가 더해진 것이다. 이 ‘DIY-Bio’를 하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가리켜 ‘바이오 해커’라고 부른다.

제도권 바깥에서 인류에게 유익한 유전자의 염기서열 또는 건강정보를 알아내고 사회적으로 유익한 결과물을 창출하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 유전자 구글링, 가정에서 만드는 바이러스 치료용 백신 등 하루하루 속도가 붙어가는 생명공학의 연구·실험이 일반 대중에게 전달되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샅샅이 파헤쳐가는 ‘바이오 해커’들은 첨단과학계의 이단아로 불린다. 김훈기 서울대 교수(기초교육원)의 신간 『바이오 해커가 온다』(글항아리, 2015.7)는 이들의 정체를 추적한 국내 첫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책의 일부를 발췌·요약했다.

바이오 해커의 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급속히 증가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그 첫 움직임은 2004년 MIT에서 개최된 아이젬 대회에서 가시화 됐다. 참여자들은 대부분 학부생으로, 전공이 매우 다양하다. 대회의 목표는 생명공학을 활용해 새로운 생명체(주로 미생물)를 만들어내는 데 있었다.

2008년 5월에는 스스로 바이오 해커를 표방하는 온라인 집단인 ‘DIY-Bio’가 등장했다. 이들은 일종의 연합체 조직이다. 메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에 있는 본부를 거점으로 삼아 바이오 해커를 표방하는 전 세계 집단과 연계해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다. 현 단계에서 바이오 해커의 수를 정확히 헤아리기는 어렵다. 다만 현재의 추세라면 몇 년 내 전 세계에서 바이오 해커로 활동하는 사람은 수십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최근엔 신체의 건강상태를 스스로 진단하고 몸을 변형시키려고 시도하는 바이오 해커 집단이 등장하고 있다. 미생물이나 식물을 다루는 바이오 해커 집단처럼 생명체(인간)의 유전자를 변화시키지는 않지만, 자신의 유전정보나 건강정보에 적합한 약물을 스스로 처방하려는 자가 헬스케어 프로젝트의 수가 점차 늘어나고 있다.

예컨대 이들은 디지털헬스 시대의 흐름 속에서 정량화된 자아를 실현하는 생체정보에 자신의 유전자 염기서열 정보를 접목시키고 있다. 유전정보를 통해 가족의 이력과 개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자신의 유전정보를 익명으로 웹사이트에 공개하는 데 기꺼이 동의하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공유된 개인별 유전정보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약물을 선택하는 일을 시도하고 있다.

바이오 해커들은 모두 정보의 독점에 반대하고 누구에게나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해 사용할 권리를 부여하는 오픈소스 정신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사용자가 이 정보를 바탕으로 새롭게 개발한 성과물에 대해 독점적 지식재산권을 확보하는 형태로 상업화할 수 있는 길 또한 열려 있다. 따라서 향후에도 바이오 해커들이 오픈소스 정신을 유지하면서 활동할 수 있을지 논란이 되기도 한다.

이 집단의 등장은 이제 생명체를 다루는 실험이 더 이상 제도권 전문가만이 수행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점을 알려준다. 이들은 대부분 아마추어 수준으로, 실험 과정과 결과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인류의 공익을 추구하고 생명의 본질을 탐구하는 등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연구를 수행한다고 해도 예상치 못한 결과는 늘 발생할 수 있다. 각자의 호기심과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자유롭게 연구 주제를 선정하기 때문에 스스로 연구 주제를 세상에 알리지 않는 한, 어떤 위험스런 실험들이 진행되고 있는지 누구도 감지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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