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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동향 : 영국 두 대학간의 합병 논의
해외동향 : 영국 두 대학간의 합병 논의
  • 이택광 영국통신원
  • 승인 2002.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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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1-27 23:13:37

한때 한국 대학들 간에 조심스럽게 거론되곤 했던 대학합병에 대한 논의가 지금 영국에서도 서서히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런던 대학에 속하면서도 각자 전문분야별로 자율성을 가지고 성장해왔던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이하 UCL)과 임페리얼 칼리지가 목하 합병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와중에, 맨체스터 대학과 맨체스터 과학기술 연구소 대학이 합병 위원회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총 학생 수 3만 명의 거대 대학을 탄생시키는 데에 찬성했기 때문이다. 두 대학은 이 협정을 통해 지난 1백50년간 지속돼오던 전통을 허물게 됐으며, 2004년쯤에 새로운 대학명으로 완전통합을 이루기로 하고 준비작업에 들어갔다.

한창 논의 중인 UCL과 임페리얼 칼리지의 합병 계획은 두 대학들이 영국을 대표하는 대학에 속하는 데다가 교직원들과 학생들의 반발도 심해 더 많은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게다가 만약 두 대학이 계획대로 통합에 성공한다면 규모면에서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최대의 슈퍼 대학이 탄생하는 것이기에 관계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킬만한 일이라고 하겠다. 이들 두 대학이 합병하게 될 경우 연구비 재정은 옥스퍼드대학이나 케임브리지 대학의 두 배에 달할 것이고, 이는 미 하버드 대학의 수준도 능가하는 것이라고 한다.

각각 UCL과 임페리얼 칼리지의 학장직을 맡고 있는 데릭 로버츠 경과 리처드 식스 경은 전지구화 시대에 대학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불가피하게 통합을 결심할 수밖에 없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비교적 낙관적으로 합병을 전망하면서, 인문학 중심인 UCL과 공학 중심인 임페리얼 칼리지가 서로 합쳐짐으로써, 명실상부한 전일적 종합대학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것이라는 장미빛 청사진을 제시했다. 합병 이후에 얻게 될 가장 중요한 이점으로 ‘막대한 교육재정 확보’를 거론하고 있는 이들의 성명서는 역설적으로 지금 영국 대학이 처한 위기를 적실하게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런 까닭에 대체로 영국 언론들은 대학 합병 소식에 대한 논평을 아끼는 분위기이다. 타임즈와 BBC는 두 대학의 합병 논의를 사실상 보도하면서도 별다른 의견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가디언만이 슈퍼 대학의 탄생이 야기할 문제점에 대한 런던 대학 총장의 논평을 간접적으로 인용했을 뿐이다. 정부의 교육 예산이 나날이 감소하고 있는 추세에서 살길을 찾아 합병을 모색하는 대학의 자구책에 대해 별다른 이견이 있을 리가 만무할 것이다. 다만 이런 재정 문제를 벗어나서 효율성의 측면에서, 런던 대학 총장 그레이엄 젤릭 교수는 ‘가디언’에 인용된 논평에서 이들 두 대학이 과거 런던 대학이 범했던 잘못을 다시금 범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덩치가 너무 커진 공룡이 과연 제대로 통제 될 것인지에 대해 아무도 장담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우려를 한 편으로 이들 대학이 합병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학내 구성원들을 설득해야 한다는 과제를 앞에 두고 있다. 벌써부터 영국의 교수노조 AUT는 합병 과정에서 학내 구성원들이 소외되는 일이 없어야 하며, 합병으로 불이익을 당하는 교수들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UCL의 학생회는 10월 22일 5백50명의 학생들이 모인 가운데 임페리얼 칼리지와의 합병을 반대하는 집회를 가졌다. 학생들은 이 합병 계획이 다분히 대학 경영의 차원에서만 고찰되고 있기에, 교육 수혜자인 학생의 복지나 교육 문제는 관심 밖에 놓여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반대 여론의 내용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들이 궁극적으로 반대하는 것은 합병 자체라기보다 효율적인 교육과 연구를 위한 방안을 개발하는 작업은 뒷전으로 미룬 채 오직 대학 경영의 입장에서 대학 규모만을 늘이려고 하는 대학 당국의 발상이다. 런던 대학 총장의 지적처럼 중요한 것은 덩치가 아니라 내실일지도 모를 일이지만, 영국의 대학들이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합병하려고 하는 상황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지식 기반 국가 경쟁에서 밀려날 수도 있다는 두 대학 학장들의 경고는 정부의 지원과 정책만을 믿고 있다가는 공멸할 수밖에 없다는 나름의 인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UCL과 임페리얼 대학의 합병 논의는 나날이 강화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과 전지구화의 지각변동 속에서 ‘교육재정 확보’라는 절박한 문제를 타개하기 위한 궁여지책인 셈이다. 영국 학계와 언론이 추이를 말없이 지켜보고 있는 까닭도 이런 곤혹스러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것이다. 합병 논의가 어떤 결론으로 낙착될 지는 앞으로 더 두고 봐야만 한다. 합병에 대한 두 대학의 논의는 다음달 중순경에 최종결정이 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두 대학의 합병 추이에 따라 장차 다른 영국 대학들의 합병 논의도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이택광 영국통신원·셰필드대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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