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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붕괴 막을 특단의 조치, 지금이 적기다
인문학의 붕괴 막을 특단의 조치, 지금이 적기다
  • 위행복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한양대·중국학&
  • 승인 2015.07.0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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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_ 인문학 진흥 위한 재정지원 나서라

문화산업 영역에 있어그것의 최종적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인문적 소양과 상상력이다.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늙은 사자나 병든 사자를 본 적이 있는가? 그런데 인간 세상에서는 그들 때문에 많은 사회적 비용이 지출된다.” 참으로 가증스러우면서, 인문학적 소양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를 절감케 하는 표현이었다. 인간은 짐승과 어떻게 다른가. 사고력을 갖춘 존재로서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기도 하면서, 육체적 강인함보다는 정신적 우월함에 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하고, 풍부한 경험으로 만들어진 혜안에 경의를 표한다. 그래서 사람은 선인들이 깨달음의 정수를 기록해 놓은 고전을 읽으면서 지혜와 통찰력을 배우고, 인간 존중의 원리와 사람답게 사는 도리를 닦고자 한다. 인문학은 이렇게 시작됐고, 인간세상이 ‘정글화’하는 것을 당연히 거부한다.


인문학은 그것을 공부하는 개인에게 즉각적인 물질적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고, 사회적으로도 그 효과가 비가시적이고 비물질적인 형태로 드러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삶의 저변을 맥맥이 흐르면서 그 근간을 이루고,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할 학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을 알지 못해 인문학이 ‘용잡이 공부’처럼 공허한 학문이라고 함부로 몰아 부치는 지식인이 있다면, 그는 인문학 진흥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문학은 부자들의 사치재가 아니며, 타인을 배려하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삶에 임하는 소박한 시민들을 위한 학문이고 배움이다. 우리나라의 자살률, 가계부채, 저임금 노동자 비율 등이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벗을 때도 됐다. 인문학 진흥을 통해 인류 문화의 정수를 우리 사회에 확산시켜야 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미래를 구현하기 위해서도 인문학 진흥은 필요하다. 새로운 형태의 산업이나 직업군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문학이 ‘기술’과 ‘문화’가 융합된 산업의 주요영역일 수 있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크게 공헌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하지만 좋은 붓이 있다고 해도 명화가 절로 탄생하지는 않듯이, 카메라가 정교해도 좋은 사진작품이나 영화가 절로 만들어지지는 않듯이, 문화산업 영역에 있어 그것의 최종적 수준을 결정하는 것은 인문적 소양과 상상력이다. 만화를 잘 그릴 수 있는 기능이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선도하게 하는 결정적 요소일 수는 없으며, 인문적 상상력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한 콘텐츠 창조력이 성패를 가름하는 것이다. 『해리포터』 원작소설이 있어야만 영화로도 만들고 ‘마케팅’ 기법도 적용할 것이 아닌가. 서사시 「木蘭辭」가 영화 「뮬란」으로 만들어지려면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기획’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수학이나 컴퓨터에 재능을 지닌 사람들이 철학 혹은 심리학을 공부한 후 창설한 기업들이 일군 성과를 온 세계가 화제로 삼고 있는데, 국가적으로도 인문사회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를 고루 발전시켜야만 선진국의 반열에 오르는 것으로 생각된다. 과거 소련에 대한 군사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과학기술에 집중 투자를 하고 있던 1960년대 중반 미국은 ‘국립인문재단(NEH)’을 설립함으로써 인문학의 발전을 함께 도모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일차적 목표로 하여 ‘국립학술연구원(CNRS)’을 설립했던 프랑스는, 자국의 인문사회 분야가 침체되자, 대학에 대한 교육부의 연구재정 지원 비율을 기초과학 분야 44%, 응용과학 분야 35%, 인문사회 분야 21%로 조정해서 배분하는 조치를 1980년대 후반에 취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 2015년 한국정부의 R&D 예산은 총 18.9조원인데, 인문사회 분야에는 4.2%인 7천935억 원만이 배정됐고, 나머지 18조1천296억 원은 과학기술 분야에 투입됐다. 인문사회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를 심하게 차별하고 있는 것인데, 우리도 이제는 구습을 탈피할 시기가 된 것 같다. ‘과학입국’의 구호와 시책이 국가발전에 기여해 왔음을 부정하지 않지만, 나라의 경제적 수준과 위상이 훌쩍 높아졌으니, 인문사회 분야에 대해서도 적정한 비율의 재정적 지원을 시작함으로써 선진국 진입을 도모해야 한다.
대학구조조정의 와중에서 인문학 분야의 연구와 교육 역량 위축이 급속히 진행돼 왔고, 학계는 ‘인문학 진흥 종합방안’을 6월말까지 발표하겠다던 교육부의 방침에 대해 상당한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교육부의 발표가 미뤄지고 있어, 자칫 인문학 붕괴를 막을 관건적 시기를 놓치지나 않을까 우려된다. 교육부는 ‘인문학 진흥 종합방안’을 조속히 발표함으로써 당초의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부가 ‘인문학 진흥 종합방안’을 마련한다면, 그것의 시행에 필요한 재정 확보가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할 것이니, 인문학에 대한 재정적 지원에 인색했던 구습이 반복됨으로써 어렵사리 마련된 기회가 봉쇄되는 일이 발생해서도 안 될 것이다.


인문학의 붕괴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고등교육비의 정부 부담 비율이 OECD 국가 평균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한국의 상황으로 인해 인위적 통폐합과 붕괴로 내몰리고 있는 대학 인문학을 회생시켜야 한다. 인문학에 대한 몰이해와 ‘경제적 효율’의 미망을 걷어내고, 인문학으로 하여금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과 출로 모색을 통해 국가사회에 더욱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인문사회 분야와 과학기술 분야의 고른 발전이 가능하도록 재정지원 비율을 조정해야 한다. 국가와 민족의 원대한 미래를 도모하려면 인문학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위행복 한국인문학총연합회 대표회장/한양대·중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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