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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문가에게 전문적인 말걸기
비전문가에게 전문적인 말걸기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5.07.06 11: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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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생물학 수업』이 던지는 ‘융복합’ 방법론

생물이 과학이라면 생물체인 사람이 영위하는 일상도 과학이라는 범주 안에서 해석될 수 있어야 한다. 애석하게도 과학은 수백년간 아카데미에서 갈고 다져졌지만, 오히려 이런 학문 탐구의 틀거리가 과학을 일상으로부터 분리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면서 과학은 서서히 과학자들끼리만 전유하는 학문이 된 것이다.

과학은 생물현상을 탐구하는 ‘생물학’까지도 독자적 학문체계 안에 가둬버리고 만다. 이로써 과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과학(생물학)은 그저 외우는 것, 학자들의 언어로 통용되는 어렵고 복잡한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과학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순 없는 걸까. 결국 ‘융복합’이 지향해야할 지점은 일상일 것이고, 그곳엔 비전문가들 즉 대중이 있다.

과학과 일상, 과학과 대중의 접점을 찾아내려는 시도가 아카데미 곳곳에서 기지개를 켜고 있는 가운데 지난 5월 말 휴머니스 출판사가 발간한 『아주 특별한 생물학 수업』(장수철 이재성 지음)이 ‘아주 특별하게’ 읽힌다.

이 책은 생물학자인 장수철 연세대 RC교육원장이 국어학자 이재성 서울여대 교수를 앉혀놓고 생물학을 가르친, 일종의 강의록이다. 제자역을 맡은 이 교수는 직업만 교수일 뿐 염색체, 에너지대사, DNA 같은 생물학의 기본단어조차 가물가물한 40대의 여느 일반인과 다름없다.

기초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문답식의 개인교습 형식을 차용한 건, 그만큼 생물학이 일상과 대중에게 다시 돌아가려는 시도인 듯하다. 더불어 이 교수가 틈틈이 풀어놓는 국어학 이론은 인문학이 생물학과 융복합 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되기도 하니,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명과 생물학’

이재성: 아, 참참참! 원핵생물, 원생생물처럼 생물 분류하는 것을 말씀하실 때 ‘원-’이 들어가는 게 많았는데, 용어가 헷갈렸어요. ‘원’이 무슨 뜻이에요?

장수철: 영어로 ‘프로(pro-)’ 그러니까 ‘뭐뭐가 있기 전’이라는 뜻이에요. 원핵생물은 영어로 ‘프로케리요트(prokaryote)’라고 하는데 핵이 있기 전부터 있던 세포라는 뜻이에요. ‘karyote’는 핵이라는 뜻이고…….

이재성: 지금 저 같은 경우는 그런 용어 하나하나가 다 헷갈려요. 저도 학문을 하면서 한자 용어를 많이 사용하잖아요. 그런 것들을 우리말로 풀어주면 이해하기 쉬울 거 같아요. 원핵생물, 진핵생물 하는 것은 용어 자체고, 외워야 하는 것인데 ‘원’ 혹은 ‘프로’라는 것이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나이들면 외우는 게 어려워지거든요.

장수철: 일단 이런 이야기는 중학생 정도면 다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하하하. 아니에요. 맞아요. 알아듣지 못해요. 이 교수님이 이야기한 대로 설명해 주는 게 맞아요.

‘에너지와 세포호흡’

이재성: 새는 인간보다 열등한가요?

장수철: 열등한 것이 아니죠. 인간과 새는 모두 진화를 거쳐 여태까지 살아남았잖아요. 잘 생각해보면 인간이 아니면 둥지 옆에 깡통을 준다거나 둥근 막대를 만들어 놓겠어요? 새한테는 ‘둥지 옆에 둥근 것이 있으면 안으로 넣어라’라는 프로그램만 있으면 되는 거예요.

이재성: 그런데 결과적으로 인간이 가장 우월한 거 아닌가요?

장수철: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우월하다기보다 복잡한 거죠.

이재성: 기계가 발전해 인공지능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생물도 발전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새의 예를 보니까, 생물은 그런 차원이 아니네요.

장수철: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연합적인 사고를 못하는 생물이 굉장히 많아요. 사람이 보면 어이가 없죠. 그런데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그것이 생존하는 방식으로 충분한 거예요.

이재성: 인간도 마찬가지예요. 언어가 그렇죠. 우리는 많은 색깔을 구분하잖아요. 그런데 아프리카에 있는 어떤 종족은 그냥 흑백으로만 구분해요. 검정색, 흰색, 좀 어두운 흰색… 이런 식으로 노랑, 파랑 다 볼 수 있지만 굳이 이렇게 색깔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또 어떤 언어는 과거형이 없어요. 그 종족은 과거 일을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든 표현이 현재형으로만 돼 있죠. 뭐든 환경 안에서 살아갈 때, 최적화 하는 것 같아요.

장수철: 네 맞아요. 그 이상으로 복잡한 것을 해봐야 자기한테는 에너지 낭비인 거예요. 옳은 지적입니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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