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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문화’의 벽 넘어서려는 융합 담론의 가능성
‘두 문화’의 벽 넘어서려는 융합 담론의 가능성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5.05.12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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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들의 풍경_ 통합 학문적 작업의 두 가지 사례


학문의 역사를 돌아볼 때, 위대한 도약의 계기는 기존의 분류방식에 완강히 저항하는 어떤 분류 불가능자와 마주칠 때 성립한다.

 


요 몇 년 우리 학계의 공통된 흐름이랄까 지적 경향 한 가지를 꼽는다면 ‘통합 학문적 작업’의 강세가 아닐까. 인문학자들과 과학자들, 혹은 사회과학자들과 과학자들의 협업은 그야말로 ‘두 문화’의 벽을 넘어서려는 노력으로 읽히기에 손색이 없다. 그 결과가 얼마나 심오하냐를 지금 따지는 것은 조금 인내가 필요하긴 하지만 말이다.

고등과학원 초학제연구총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상상력과 지식의 도약』(김상환·박영선·장태순 엮음, 이학사, 391쪽, 25,000원)과 ‘인간과 사회에 관한 통합 학문적 접근’이란 부제를 단 『다윈과 함께』(김세균 엮음, 사언스북스, 408쪽, 25,000원)은 책의 두께도 비슷하고, 심지어 가격도 같다.

전자는 ‘분화와 전문화의 논리에 갇힌 근대적 학문에 대한 반성’이란 깃발을 올리고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나눈 초학제적 대화의 기록이다. 후자는, 비판적 사회과학 담론 형성에 앞장서왔던 김세균 전 서울대 교수가 기획하고 엮어 낸 책으로, 자연과학, 인문과학, 사회과학, 그리고 사회적 실천의 영역을 망라하는 인적·지적 네트워크의 산물이다. 두 책은 이렇게 어떤 화학적 대화의 모색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리고 또한, 한국 학계의 ‘융합’ 담론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2012년에 출범한 고등과학원 초학제 연구 프로그램의 패러다임-독립연구단은 태생부터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를 유도하고 가급적 기초적이고 초보적인 수준에서 융합 연구의 길을 개척한다는 과제를 설정했다. 이런 과제를 위해 패러다임-독립연구단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분리되기 이전으로, 나아가 동양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가 분화되기 이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동서의 사유 패러다임이 서로 교차, 충동, 순화되는 기회를 실험해 새로운 보편성의 유형을 모색한다는 발상이다. 이 프로젝트의 주제는 ‘분류-상상-창조’로 집약됐고, 세 가지 범주 각각을 매년 초학제 연구를 이끌어갈 선도 주제로 삼았다. 지난 2014년에 ‘분류’를 주제로 한 1년차 연구 사업을 두 권의 책으로 정리한 데 이어 이번에는 ‘상상’을 화두로 지난 1년 동안 개최한 세미나, 심포지엄, 학술대회의 성과를 보충 정리한 결과물을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이렇게 해서 얼굴을 내민  『상상력과 지식의 도약』은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을 넘나드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김상환, 최문규, 오생근, 이지훈, 조민환, 김범준, 이강영, 정지훈 등)이 나눈 초학제적 대화에 바탕했으며, 넓은 관점에서 상상의 문제에 접근한 보기 드문 사례로서, 향후 국내외 초학제 연구의 밑거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번 작업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지식의 도약’이다. 아마 ‘상상력’이 이러한 지식의 도약에 지렛대가 될 수 있다는 전제에서 명명됐으리라.

학문의 역사를 돌아볼 때, 위대한 도약의 계기는 기존의 분류방식에 완강히 저항하는 어떤 분류 불가능자와 마주칠 때 성립한다. 표준의 시선으로 바라볼수록 무의미한 잔여로 나타나는 것, 삐딱하게 볼 때라야 비로소 그 정체를 조금씩 드러내는 것이 ‘분류 불가능자’라는 이상한 얼룩일 것이다. 김상환 서울대 교수는 이와 관련 “분류의 문제가 상상의 문제로 전치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상상의 문제는 창조의 문제로 이중화될 수밖에 없다”라고 말하면서, 시적 사유와 수학적 사유가 만날 수 있는 지점에 이 책이 놓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책은 제1부 동서의 상상력 이론과 실제에 8편의 논문을, 제2부 과학적 상상력과 예술적 상상력에 9편의 논문을 각각 수록했다.

정치학자가 다윈을 읽는다? 『다윈과 함께』에서 눈에 들어오는 것은 ‘함께’라는 부사다. 이것은 같이, 그러면서 동시에 넘어서서의 이중 의미를 내포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다윈과 진화론의 통찰을 사회과학으로 끌어오고, 사회과학의 통찰을 바탕으로 다위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한국 지식사회의 야심찬 흐름을 다각도에서 보여주는 책이다.

일단 참여 저자들의 전공 영역도 다채롭다. 정치학(김세균), 통계 물리학(최무영), 면역학(우희종), 과학기술사(홍성욱), 생물 인류학(박순영) 등의 이름이 보인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한국 사회 페미니즘-진화론 논의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받는 오현미, 생명 현상과 환경의 상호 작용을 복잡계 물리학으로 연구하는 김민수, 인간의 진화적 본성과 사회문화적 상황, 기술적 진보의 관계를 연구하는 이민영, 근대·탈근대 정치 문제를 비롯 정치 행태와 정치 심리를 바이오폴리틱스(생물 정치학)이라는 새로운 연구 방법론으로 접근하는 이상신, 다윈을 중심으로 19세기의 생물학자와 진화론의 관계를 탐구하는 한선희, 브뤼노 라투르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정치사상과 현대 민주주의를 심도 깊게 파헤치고 있는 홍철기 등 ‘젊은 학자’들의 참여가 신선하다.
김세균 교수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다윈의 기획이 환원주의와 결정론, 기계적 유물론의 샛길로 빠지지 않고 계속되기 위해서, 다윈의 기획이 20세기 자연과학의 성과와 사회과학의 성과를 존중하고 그 통찰들과 결합할 때 비로소 좀 더 완성된 통합 학문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복잡계 과학의 관점에서 생명과 진화를 접근하는 새로운 과학 철학 위에서 진화와 인간, 사회를 통합하는 든든한 토대가 될 것이라 기대해 본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필자들은 오늘날 존재하는 다양한 지적 태도들을 제시함으로써 “복잡한 인간과 사회의 삶에 대한 유용한 통찰”을 얻고 ‘더 나은 방법론’을 숙고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하고 있다.

책의 구성도 이러한 접근 태도를 그대로 보여준다. 1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생명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과학’, 2부 ‘우리는 무엇인가: 다윈과 인간 본성’, 3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사회를 보는 통합 학문적 접근’으로 모두 3부 9장, 보론 1편의 글로 구성돼 있다. 생명의 기원과 진화에서 출발한 물음이 최신 신경과학의 연구 성과를 거쳐 정치적 변혁 주체 형성 문제까지 이어진 것이다. 즉 복잡계 과학에서 혁명 이론까지, 통합 학문적 텍스트로 다윈을 읽어낸 셈이다. 바로 이점에서 이 책은 기존 ‘융합’ 담론과 조금 다른 자기만의 색깔을 찾은, 새로운 통합적 작업의 전례로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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